'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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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
미사 때 성찬의 전례 때마다
사제는
“스스로 원하신 수난이 다가오자
예수께서는 …” 하며
기꺼이 제물이 되신 예수님을 돌이키게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에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라고 외치셨습니다.
그것이 의아합니다.
스스로 원하신 수난이었는데
버리셨습니까 라고 묻는 것이…
또한 예수님은
과연 버림받았다고 생각하셨는지요.
이 말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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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
미국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은 자신의 저서
“고독한 군중 (The Lonely Crowd)”에서
'군중 속의 고독'을 말했습니다.
차이코프스키는 단조 음률로
"오로지 고독한 자만이 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노래했다고 합니다.
또 미국 켄사스의 한 신문에는 언젠가
다음과 같은 광고가 실렸다고 합니다.
"나에게 5달러만 주면 30분 동안
내 생각은 얘기하지 않고
당신이 하는 말을 다 들어드리겠습니다."
외로움이라고 하는 것은
나와 공감하는 사람이 없다는 느낌일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외면 당하고 버림받았다는
느낌이기도 할 것입니다.
인류 역사 가운데 그 외로움의 극치에 빠졌었던,
절대적 외로움 그 자체였던 분이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의 조소와 희롱과 비난 가운데
옷은 다 벗겨진 채 십자가에 매달리셨습니다.
제자들도 도망갔습니다.
그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습니다.
머리와 옆구리에는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절대적 고독과 고통, 그 절정에서 절규가 터져나옵니다.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마르 15,34)
아람어(예수님의 모국어)인 이 말을 풀이하면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 나를 버리시나이까"라는 뜻입니다.
우린 이 말에서 인간을 위해 처절한 고통을 받으신
예수님의 절대적 고독을 읽을 수 있습니다.
차마 그 고독과 고통의 깊이는 감히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고통은 끝나갑니다.
인류를 위한 위대한 고통의 끝자락에서
당신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다 이루었다"(요한 19,30).
<자문=서울대교구 교회법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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