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한 마음/오 하느님

판공성사와 고해성사의 역사

주님의 착한 종 2019. 3. 6. 11:03



판공성사와 고해성사의 역사

 

오늘은 재의 수요일이며,

오늘부터 사순 시기가 시작됩니다.


사순 시기는 참회의 시기이며

부활을 준비하는 희망의 시기입니다.


사순 시기는 회개하며

자비와 은총을 구하는 시기이기에

특별히 '은총의 사순 시기'라 불립니다.

 


판공성사 


사순 시기를 맞으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바로 판공성사입니다.





원래 판공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사제가 공소를 방문한다는 뜻이었다고 합니다.

 

조선조에 신앙의 탄압이 극심했을 때

절대적으로 사제가 부족했고

교우들은 산골로 숨어들어

신앙생활을 유지했습니다.


따라서 사제는 성사,

특히 성세성사나 견진성사는 물론

고해성사와 성체성사를

교우들에게 늘 행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성탄절과 부활절을 맞기 위해서는

죽음을 무릅쓰고 공소를 찾아

성사의 의무를 다했습니다.

이것이 판공성사의 유래입니다.

 


고해성사의 역사


하지만, 요즘 우리가 판공.. 하면 떠올리는 것은

바로 고해성사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고해성사의 역사를

이완희 신부님의 글을 읽으며

함께 공부해 보겠습니다.

 


(이완희 스테파노 신부님은

전례학 박사이시며

한국 주교회의 전례분과에서 활동하셨으며

인천가톨릭대 교수와

대건 고등학교 교장직을 수행하시고

2019년 현재는 인천교구 서운동 성당의

주임사제로 봉직하고 계십니다.

저희 인천교구 연령회 연합회에서 발간한

선종봉사자 지침서

이완희 신부님의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다음은 이완희 신부님의 기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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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세례를 통하여 새로이 태어난다.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죄를 용서받고

생명의 길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네 사람은

삶 속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역경과 유혹의 고비를 넘지 못하고

넘어질 때도 있다.

이렇게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

생명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고해성사이다.

 

복음서에서 우리는

간접적이든(마태 16,18-19; 18,18),

접적이든 (요한 20,21-23)

죄의 용서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죄를 용서해줄

권한을 나눠주신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서간 여러 곳에서

초대교회의 화해 성사를 가늠하게 해주는 언급을 한다.

음행, 탐욕, 우상숭배 등의 중죄를 범한 이들은

공적으로 교회에서 추방을 당한다(1코린 5,13 2테살 3,14).

그리고 또 다시 그들을 교회가 용서한다(2코린5,7-10).

 

사도 바오로의 서간을 정리해보면

초대교회의 화해예절의 윤곽을 그려볼 수 있겠다.

중죄(살인, 간음, 배교 등)를 지은 죄인은

공개적으로 교회로부터 추방당했다가

일정한 기간이 경과한 후에

다시 공적으로 용서를 받음으로써

죄의 용서가 이뤄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2세기경의 문헌인 <디다케>,

로마의 클레멘스의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

헤르마스의 <목자>등의 글에서

단편적으로 확인된다.

 

이들의 증언을 정리하면,

죄를 범한 사람은 용서를 받기 위해

교회에서 죄를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추방당한다.

그리고 일정한 보속과 회개의 기간을 보낸 후에

다시 공적으로 교회에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이 예절은 일생에 있어서

오직 한 번만 받을 수 있었다.

 

초대교회가 박해를 통해서 단련된 신앙의 시대였기에

신자들의 열성은 참으로 대단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죄를 지은 사람이 있었기에

매우 가혹하고 힘들기는 했지만

다시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던 것이다.

 

초대교회의 참회예식은

그 공개적인 성격으로 인하여

죄를 지은 신자들에게 용서를 기피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커다란 죄를 범하지 않은

수도자들과 신자들도

자신들을 위한 참회가 필요함을 느끼게 되었다.

 

7세기경 켈트지역(아일랜드)

수도회와 지역교회를 중심으로

반복가능하고 비밀리에 거행되는

새로운 참회예식이 생겨났으며

이는 곧바로 전 교회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당대의 참회예식은 목록에 정해진 대로

죄에 따라 보속을 주었다.

사제들은 고해자의 죄를 듣고 보속을 주는데

일정하게 정해진 보속목록에 따라서 보속을 주었고

이를 수락하면 사죄를 해주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같은 죄를 범한 사람들의 보속은

목록에 따라서 모두 같은 보속을 해야했으며

여러 가지 죄를 지은 사람은

그에 해당하는 보속을 모두 수락해야 사죄를 받을 수 있었다.

 

중세 때에 잠시 공개참회로

복귀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으나

12세기까지는 드물지만 공적인 참회예절이 거행되는 등

개별적인 화해예절과 공적인 화해예절이 공존하였다.

 

12세기 이후에는 개별적인 화해예절이 더욱 발전하여

죄를 고백할 때는 사제의 귀에

귓속말로 고백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이러한 귓속말 고백에 의해

고해의 비밀을 지켜야 할 사제들의 의무가 규정되었으며

이는 1215년 라테란 공의회 규정 21항에 의해

처음으로 입법화되기에 이르며

이 예식이 트리엔트공의회 예식서(1614)에서

외적인 보완을 거친 뒤

2차 바티칸공의회예식서(1975)로 승계되어

오늘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