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한 마음/오 하느님

성인 - 10월 6일 성녀 마리아 프란치스카

주님의 착한 종 2018. 10. 6. 06:23


축일: 10 6           

성녀 마리아 프란치스카

Santa Maria Francesca delle Cinque Piaghe (Anna Maria Gallo) Religiosa

ST.MARY FRANCES of the Five Wounds of Jesus

Napoli, 25 marzo 1715 - Napoli, 6 ottobre 1791

Born:25 March 1715 at Naples, Italy 
Died :6 October 1791 at Naples, Italy;

buried in the church of the Alcantarines, Saint Lucia del Monte, 
Naples, Italy near the tomb of Saint John Joseph of the Cross 
Venerable:18 May 1803 by Pope Pius VII 
Beatified :12 November 1843 by Pope Gregory XVI 
Canonized :29 June 1867 by Pope Pius IX



성녀 마리아 프란치스카(Maria Francisca)는 안나 마리아 로사 니콜레트란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고, 16세 때에 부친이 어느 집안의 자제와 혼인하도록

강요하였으나 자신은 이미 하느님만 사랑하기로 결심한 후였다
그러므로 그의 부친은 그녀를 방안에 가두고 빵과 물만 주는 등

갖은 학대를 하였으나 그녀는 이것도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한 단계로

받아들이고 인내하였고어머니가 그녀를 설득하려 하자

자신은 작은 형제회 3회 회원이 되겠다는 뜻만 밝혔다.

이리하여 그녀는 1731 9 8일에 작은 형제회 3회 회원이 되었는데
그녀의 주요 신심은 주님의 수난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녀는 그 후 38년 동안이나 교구사제인 요한 페시리의 사제관에서 일하였다
마리아는 신비스런 현상들이 몸에서 일어남을 감지하기 시작했는데
십자가의 길이나 사순절의 금요일이 되면 예수 수난에 버금가는

고통을 앓기 시작하였으니
게세마니(Gethsemane) 동산의 번뇌, 매 맞음, 가시관을 쓰심, 모욕, 침 뱉음
죽음에 이르는 고통 등이었다
사실 그녀는 오상 성흔을 이미 받았던 것이다.

 

이외에도 그녀에게는 신체적인 고통이 따랐는데
그것도 모자라서 자발적인 고행까지 행하였다
한번은 연옥 영혼들의 고통을 체험하였다
성녀 마리아 프란치스카는 프랑스 혁명 초기까지 살았다
그녀는 이 혁명의 무서움을 미리 예언하였다
성녀의 유해는 나폴리의 산타 루치아 델 몬테(Santa Lucia del Monte)

성당에 묻혔고
1867
년 교황 비오 9(Pius IX)에 의해 시성되었다.

(가톨릭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