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한 마음/오 하느님

춤추시는 하느님

주님의 착한 종 2016. 11. 11. 08:33



하느님이 만지시면 고난이 환희의 춤으로 변합니다.



어떤 방식으로 고난을 겪든,

당신의 고난을 통해 하느님이 일하시도록 하라.


하느님의 은혜 안에서

그 고난은 한 동작 한 동작

환희의 춤으로 변할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마태 5,4)


예수님은 우리의 슬픔으로 들어와

우리 손을 부드럽게 잡아 일으키며

춤을 청하신다.


우리가 겪는 모든 고난에는

물론 말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영적인 말이라도 그렇다.

우리의 사무친 아픔은

화려한 언변으로 달랠 수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고난을 통과하도록

우리를 인도하고 이끌어 주는 것이 있다.


우리 귀에 초청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애통이 변하여 치유의 터가 되게 하고,

슬픔이 변하여 고난에서

춤으로 가는 길이 되게 하라는 초청이다.


우리는 상실을 피하진 않고

온전히 들여다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부정(否定)이 아닌 다른 것으로

삶의 고통을 맞이할 때

우리는 뜻밖의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하느님을 내 곤경 ‘속에’ 모셔들일 때

우리 삶은 슬픈 순간일지라도,

기쁨과 희망을 딛고 선다.



-헨리 나웬,<춤추시는 하느님 -서문>에서




♣ 삶을 움켜쥐려는 자세를 버리면

결국 스스로 움켜쥘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더 깊이 사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고통을 벗어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우리 대다수를 유혹합니다.


그러나 고난을 피하지 않고

‘통과’하는 법을 배우면

고난을 다르게 맞이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더 큰 목표를 위해

고난을 사용하실 수 있다는

차원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고난은 사력을 다해 피해야 할

불청객이나 저주가 아니라

더 깊은 온전함으로 나아가는 길이 됩니다.


궁극적으로 슬픔이란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에 부딪치되

치유자이신 하느님의 현존(임재) 가운데

부딪친다는 뜻입니다.


절망을 견디면서

치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얻은 치유는

우리의 상한 영혼이 다시금 춤추게 하는 치유,


영원한 소망을 품고 사는 법을 알기에

고난과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고

춤추게 하는 치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