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한 마음/오 하느님

기도로 무엇이 이루어지는가?

주님의 착한 종 2016. 8. 27. 09:40



 


<클레멘스와 함께 묵상해요>


기도로 무엇이 이루어지는가?




어떤 젊은이가 기도를 매일 바치다가

"아, 하느님은 나의 청을 하나도 안 들어주신다."

하고 탄식하였다.


그는 기도를 잘 가르친다는

광야의 은수자에 대한 소문을 듣고 찾아갔다.


"스승이여, 나의 기도가 헛되지 않게

가르쳐 주십시오."


그 은수자는 젊은이에게

문 앞에 놓인 더러운 광주리로

물을 길어오라고 하였다.


젊은이는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시키는 대로 물을 길어 돌아오자

물은 다 빠져 버렸다.


은수자는 또 한 번 가서

그 광주리로 물을 길어오라고 했다.


젊은이는 다시 갔다 왔지만

은수자는 자꾸만 보내는 것이었다.


마침내 젊은이는

"왜 쓸데없는 일을 시키십니까?"

하고 화를 냈다.

은수자는 "보라, 젊은이여,

기도하는 것도 그와 같은 것이다.

너는 물을 길어오지는 못하였지만

더러운 광주리는 조금씩 깨끗해지고 있지 않느냐?"


"너는 기도하면서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불평하지만

이 기도를 통해서 너 자신이

좀 더 깨끗해지고 있지 않느냐?"

하고 말하였다.


- 작자 미상



♣ 하느님께서 당신의 가련한 피조물들에게

베푸시는 자비, 즉 피조물들에게

심중을 털어놓으시려는 하느님의 의도를 안다면,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기꺼이 주고 싶어 하시는 좋은 것을

얻으리라는 희망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 김홍언 신부님 글에서 옮겨왔습니다. -






 


인간적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그분의 부르심과 그분과의 환영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간은 여기서 자신의 총체적 빈곤과 그를 초월성에서 갈라 놓는 심연, 그리고 절대로 하느님을 획득해 소유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기다림에는 침묵만이 존재합니다. 침묵은 기도의 새로운 차원으로서 기도의 다른 차원들을 초월하며 하느님을 기쁘게 영접할 수 있기 위해 더 이상 창조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시는 그분의 '말씀'을 통해 고통스럽고 메마르고 십자가에 못박힌 침묵이 됩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당신에 대해 하실 참된 계시는 사막의 메마름으로 상징되는 인간의 이 같은 절대적 빈곤과 무능력의 틀 안에서 일어납니다. 사실, 인간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에게 말은 탄식으로 변할 것이고, 앞서 그토록 활기차고 깊이 있던 묵상 자체는 절대적 무능상태로 침묵하고 말 것입니다. 인간에게 하느님의 참된 계시가 시작되는 것은 바로 이때입니다. 인간은 절대적 빈곤과 메마름의 격렬한 고통을 체험한 후에야 습기 가득한 밤에 피어나는 꽃처럼 하느님 앞에 자신을 열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때 비로소 인간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고 열어 보이고 일러 주십니다. 그러나 그 계시는 인간의 개념과 인간적 표상이 아니라 개념없는 개념, 표상 없는 표상, 모든 상징을 뛰어넘는 상징들로 이루어집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차원자체에서 이루어지는 계시이고 초자연적 계시라고 불립니다. 사실 관상은 '하느님의 신속하고 눈에 띄지 않는 초자연적 계시'라고 정의됩니다. 주부적(注賦的)관상은 영혼이 지상에서 하느님의 빛을 받아 최고로 성숙한 때에 시작되어 영원히 지속될 것이며 하느님과 우리의 결합을 충만케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