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한 마음/마음을 열고

진짜와 가짜

주님의 착한 종 2016. 6. 20. 08:45



글에도 진짜와 가짜가 있을까?
물론 있다.


좋은 글과 나쁜 글, 진짜 글과 가짜 글은 어떻게 구분할까?
겉보기에는 멋있는 것 같은데

읽고 나도 아무 느낌이 남지 않는 글은 가짜글이다.
특별히 잘 쓴 것 같지도 않은데,

읽고 나면 마음에 남는 느낌이 있는 글이 진짜 글이다.


글뿐 아니다.시에도 진짜 시와 가짜 시가 있고,
그림에도 진짜 그림과 가짜 그림이 있다.

조선시대에 천하에 명화로 알려진 유명한 그림이 있었다.
소나무 아래서 선비 한사람이 뒷짐을 지고 위를 올려다 보는 그림이었다.
소나무도 잘 그렸지만 뒷짐 진 선비의 표정이 너무 너무 생생했다.
모두들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몽유도원도를 그린 유명한 화가 안견(安堅)이 이 그림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그래서 일부러 이 그림을 구경하러 갔다.
그림 주인은 훌륭한 화가가 자기 그림을 보겠다고 직접 찾아 온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그림을 펼쳤다.
이제 과연 어떤 칭찬이 쏟아질까?
주인은 설레이는 표정으로 침을 꼴깍 삼켰다.
한참 만에 안견은 실망스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잘 그리긴 했는데, 조금 아깝구려."

주인은 깜짝 놀랐다.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한번 생각해 보시오.
사람이 높은 곳을 올려다 보자면 목 뒤에 반드시 주름이 잡히게 마련이오.
그런데 고개를 젖혀 바라보는 선비의 뒷덜미에 주름을 하나도 없질 않소?"

안견은 다시 보기도 싫다는 듯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와 버렸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이 그림은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버린 그림이 되고 말았다.
소나무를 그리는 솜씨도 뛰어났고, 사람의 표정도 생생했다.

다만 화가는 소나무를 올려다 보는 선비의 목 뒤에 작은 주름을 놓치고 말았다.
그 결과 소나무의 푸르른 기상을 우러르는 선비의 마음까지 달아나버리고 말았다.

이런 그림도 있었다.
할아버지가 손주를 안고 밥을 떠먹이는 그림이었다.
천하의 명화로 이름이 높았다.
소문을 듣고 세종대왕께서 이 그림을 보았다.
왕은 한참 바라보더니 무엇이 못마땅한지 인상을 찌푸렸다.

신하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세종대왕이 말씀하셨다.

"그리긴 참 잘 그렸다.
그렇지만, 어른이 어린아이에게 밥을 먹일 때에는

저도 모르게 자기의 입이 벌어지는 법이다.
그런데 이 그림 속의 노인은 입을 다물고 있구나.
아! 아깝다."

정말 그렇다.
엄마가 어린아이에게 밥을 먹일 때를 생각해 보자.
엄마는 숟가락에 밥을 떠가지고 그 위에 반찬을 얹는다.
아이의 입 가까이에 가져간다.

"아가! 아" 하며 자기의 입을 벌린다.
아이는 엄마의 벌린 입을 보며 자기의 입을 벌려 음식을 받아 먹는다.
그런데 그림 속의 할아버지는 입을 꽉 다문 채로

마치 화가 난 사람처럼 손주에게 밥을

먹이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화가는 다 잘 그려 놓고 조그만 실수를 한 셈이다.

그렇지만 이 조그만 실수가 가장 큰 실수가 되고 말았다.
화가는 자기도 모르게 벌어진 할아버지의 입을 그리지 않았다.
이것을 놓쳤기 때문에, 손주에게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고 싶은
할아버지의 마음이 그림에서 없어져 버렸다.

화가는 그림 속에 자기의 진실한 마음을 담아야 한다.
마음이 담기지 않으면 아무리 사진처럼 똑같이 그린 그림도 죽은 그림이 되고 만다.
마음이 담기지 않은 그림은 가짜 그림이다.
화면 속에 마음을 담지 못하는 화가는 엉터리 화가다.

시인도 마찬가지다.시인은 눈 앞에 보이는 사물을 노래한다.

그런데 그 속에 시인의 마음이 담기지 않으면

아무리 표현이 아름다워도 읽는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다.


살아있는 시는 어떤 시일까?
한시를 한 수 살펴 보자.고려 때 시인 고조기가 지은 작품이다.

 

- 山莊夜雨 [산장야우] 산장의 밤비 - 

 

  昨夜松堂雨 [작야송당우] 어젯밤 송당에 비가 왔는지          

  溪聲一枕西 [계성일침서] 베갯머리 서편에선 시냇물 소리. 

  平明看庭樹 [평명간정수] 새벽녘 뜨락의 나무를 보니              

  宿鳥未離棲 [숙조미리서] 자던 새는 둥지를 아직 떠나지 않았네.

내용만 보면 단순하기 짝이 없다.
간밤 잠결에 시냇물 소리를 들은 것도 같다.
간밤에 비라도 온걸까?
새벽에 방문을 열고 내다 보았다.
마당 나무 위 새 둥지에 새가 아직도 그대로 있다.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이 시의 내용은 별것이 아니다.
이 시에서 중요한 것은 시인의 마음이다.


시인은 어째서 나무 위의 자던 새가 여태까지 둥지를 떠나지 않은 것을 말했을까?
산 속 집의 아침은 먼동이 트기가 무섭게 노래하는 산새들의 합창으로 시작된다.
보통 때 같으면 새소리에 늦잠을 자고 싶어도 잘 수가 없었다.
오늘은 어쩐 일인지 날이 훤히 밝았는데도 밖이 거짓말처럼 조용하다.


시인은 처음에
"어? 오늘은 왠일로 요놈들이 이렇게 조용하지?" 하고 생각했다.
그는 궁금해서 방문을 활짝 열어 보았다.
처음에는 새들이 울지 않길래 아직도 날이 새지 않은 줄로 알았다.
설핏 깬 잠을 뒤척이며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문을 열고 보니, 새들은 포근한 제 보금자리를 나올 생각이 없다는 듯이
둥지 속에다 제 몸을 파묻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시인은 모든 사실을 다 알아차렸다.
그래 어제 밤 꿈결에 시냇물 소리가 들려왔었지.

간밤에 산 속에 비가 많이 왔었구나.
그 비에 시냇물이 불어났던 게로군.

숲이 온통 젖어 먹이를 찾을 수가 없으니까
저 녀석들이 둥지에 틀어 박혀 있는게로구나.

시인은 배를 깔고 두 손으로 턱을 괴고 둥지 속의 새를 쳐다 본다.
둥지 속의 새도 말똥말똥 주인을 바라본다.
오늘 아침은 이렇게 말없이 놀자고 한다.
가만히 이 시 속의 정경을 그림으로 옮겨 보면 참 재미가 있다.

숲 속에 작은 오두막집이 있다.

오두막집의 방문은 열려 있다.
주인은 턱 괴고 누워 창밖을 바라본다.

숲속 둥지에선 새가 주인을 마주 보고 있다.
마당은 젖었다.

나무에선 아직도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것만 같다.
이 가운데 주인과 둥지 속의 새 사이에 오고 가는 말없는 대화가
귀에 쟁글쟁글 들리는 것만 같다.


 

자연을 아끼고 생명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시인의 따뜻한 마음씨가 그대로 전해져 온다.
아무리 기교가 뛰어나도 입을 꽉 다문 할아버지의 그림은 가짜 그림일 뿐이다.
비록 덤덤하지만 그 속에 시인의 투명한 정신이 담겨져 있을 때 진짜 시가 된다.
겉만의 꾸밈만으로는 안된다.
참된 마음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

어디 진짜와 가짜가 시와 그림뿐이겠는가.


사고파는 물건도,
주고 받는 말도,
주고 받는 글도..
주고 받는 마음도

진짜가 있고 가짜가 있다.

한번쯤은 자신을 되돌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진짜처럼 위장된 가짜는 없었는지 되새겨 볼 일이다.


- 옮겨온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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