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주일 복음 묵상
2016-05-08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독서:사도 1,1-11 독서2:에페 1,17-23
복음: 루카 24,46ㄴ-5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46 이르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47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48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49 그리고 보라,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내가 너희에게 보내 주겠다. 그러니 너희는 높은 데에서 오는 힘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라.”
50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베타니아 근처까지 데리고 나가신 다음, 손을 드시어 그들에게 강복하셨다. 51 이렇게 강복하시며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 52 그들은 예수님께 경배하고 나서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53 그리고 줄곧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지냈다.

시작기도
높은 데서 오시는 힘이신 성령님, 우리 마음을 여시어 주님 말씀을 깨닫게 하소서.
세밀한 독서
예수님 승천에 대한 루카복음의 보도(24,50-53)는 그가 쓴 사도행전(1,6-11)의 승천 보도보다 짧고 단순하다. 물론 루카는 복음서와 사도행전 양쪽 모두, 이 승천 보도에 앞서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 곧 성령을 기다리라’는 예수님 말씀을 반복해서 전해준다. 하지만 사도행전에서 언급한 ‘이스라엘의 재건 시기’에 대한 질문과 승천하신 주님의 다시 오심을 알려주는 흰옷 입은 두 사람의 출현은 복음에 등장하지 않는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승천까지의 일정이다. 사도행전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십 일 동안 여러 번 발현한 후에 승천하신다. 반면에 복음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모인 제자들에게 나타나 짧게 만난 그날에 승천하신다.
승천 대축일 복음의 바로 앞 구절(루카 24,45)에서 예수님은 성경 말씀을 깨닫도록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다음 두 가지 사실에 마음을 모으게 하신다.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46-47절) 제자들은 이 두 본질적인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충격적이고 굴욕적인 스승의 죽음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고, 이제 그들이 수행해야 할 직무는 무엇인지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수다. 주님 죽으심과 부활의 의미 그리고 그분이 부여하신 직무에 대한 이해는 제자들이 앞으로 ‘이 모든 일의 증인’이 되기 위한 결정적인 준비라고 하겠다. 바로 이런 준비과정에서 높은 데서 오는 힘, 곧 성령에 대한 약속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상기시켜 주신다.
사도행전과 달리 복음에서 예수님은 손을 들고 제자들을 강복하며 하늘에 오르신다. 분량으로는 짧은 보도지만 이어지는 맥락 안에서 본문 내용은 매우 느린 속도로 진행된다고 하겠다. 그만큼 제자들의 마음에는 주님과 헤어지는 아쉬움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제자들을 베타니아 근처로 “데리고 가신” 예수님, 제자들에게 “손을 드시어 강복하시는” 예수님, 제자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시는” 예수님. 동사 형태는 승천하시는 순간에 모아지고 있다. 예수님은 이렇게 하늘에 오르심으로써 영광 속에 계심이 분명하다. 하늘에 오르신 주님을 보고 제자들이 경배를 드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활기에 넘치는 찬미를 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묵상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 ‘자비의 해’를 보내고 있지만 이 말씀처럼 자비를 살아가는 것이 그리 녹록하지는 않다.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라는 보험회사 광고 문구처럼 무조건 용서하는 것이 자비의 본질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세상 주님의 마지막 모습, 하늘로 오르시기 전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과 행동은 자비를 살아가는 데 큰 지침이 된다고 하겠다.
예수께서 누구를 위해서 고난을 몸소 겪고 무엇을 위해서 비참한 십자가 죽음을 받아들이셨는지를 깨친다면 죄의 용서와 회개에 대한 선포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을까. 달리 말해서 주님에 대한 모든 일의 증인이 된다 함은 자비에 대한 증인이 되라는 말일 것이다. 나는 오늘도 자비의 증인으로 살아가는가? 옆에 있는 이에게 격려와 축복의 말 한마디 먼저 건네 보면 알 것이다.
마침기도
하늘에 오르신 주님, 같은 모습으로 다시 오실 때까지 당신이 직접 주신 강복을 거두지 마소서. 아멘.
- 박기석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