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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2 부활 팔일 축제 내 토요일 독서:사도 4,13-21 복음: 마르 16,9-15
9 예수님께서는 주간 첫날 새벽에 부활하신 뒤,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셨다. 그는 예수님께서 일곱 마귀를 쫓아 주신 여자였다. 10 그 여자는 예수님과 함께 지냈던 이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였다.
11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며 그 여자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다. 12 그 뒤 그들 가운데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가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다른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 13 그래서 그들이 돌아가 다른 제자들에게 알렸지만 제자들은 그들의 말도 믿지 않았다.
14 마침내, 열한 제자가 식탁에 앉아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셨다. 되살아난 당신을 본 이들의 말을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5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시작기도 성령님, 제가 믿음을 향해 불확실한 발걸음일지라도 내디딜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말씀 들여다보기 제자들은 예수님이 살아계시다는 마리아 막달레나와 제자 ‘두 사람’의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께서 직접 나타나시어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신다. 부활하신 당신을 만나려면 증명할 수 없는 여러 빈틈을 신앙으로 채워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께서 정당한 의심과 회의를 무작정 비난하신 건 아니다. 예수님은 상처를 보기 전에는 못 믿겠다는 토마스에게 기꺼이 당신 두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다. 물론 보지 않고도 믿는 이가 행복하다며 핀잔을 주시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의심을 품은 그의 태도를 문제 삼지는 않으셨다. 세례자 요한의 두 제자가 처음 예수님을 따라갔을 때에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은 “와서 보아라” 하셨다. 무작정 믿는 게 아니라 직접 눈으로 보고 마음을 정하라는 말씀이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맹목적 믿음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 반면 합당한 의심은 ‘무엇이 주님 마음에 드는 것인지 가려내게’(에페 5,10) 하고, 악한 영의 음험한 속내를 드러낸다. 다만 경계해야 할 것은 ‘신앙’에 이르기 위해 완전한 증거를 요구하는 태도다. 세상에 완전한 증거란 없다. 그러니 어느 정도의 비약은 어디에서나 필요하고, 예수님 부활을 믿을 때도 마찬가지다.
말씀 따라 걷기 *내가 믿고 있는 것들에 관해 충분히 성찰해 보았는가? *신앙을 향해 내가 한 걸음 더 나갈 수 없게 하는 장애물은 무엇인가?
마침기도 예수님, 제가 충분히 의심하면서 저 자신을 성찰하게 하소서. 그러면서도 당신을 향한 믿음으로 용기 있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 윤성희(구약성서학 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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