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다녔던 직장에서 은퇴하여,
평생 다녔던 직장에서 은퇴하여, 집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마음에 공허감이 들고,
아무 이유 없이 아내와도 다투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직업이라는 것은 단지 일자리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누구인가(정체성)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지요.
따라서 직장을 그만둔다는 것은 나의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을 상실한 것이기에
공허함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역할과 직업을 가지며 정체성을 만들어 갑니다.
집에서는 아내나 어머니로, 남편이나 아버지로, 딸이나 아들로, 직장에서 사장이나
직원으로, 의사로, 간호사로, 선생님으로 살아갑니다.
성당에서는 여러 가지 단체의 회원이나 간부로 봉사를 합니다.
심리학자에 따르면 하나의 역할만을 집착하는 사람은 위기 상황에 쉽게 무너지는
건강하지 못한 자아를 형성한다고 말합니다.
직장의 일이 전부인 사람에게 직장에 문제가 생기면 쉽게 절망하지만,
직장뿐 아니라 가정과 성당이나 다른 공동체 안에 다양한 역할들을 만들어 간
사람은 타격을 덜 받습니다.
아무튼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의 역할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가 사별을 하면 아내로서 남편으로서의
역할도 끝이 납니다.
자녀들을 출가시키면 어머니로서 아버지로서 역할도 끝이 납니다.
직장을 잃으면 선생님으로서, 직원으로서의 역할도 없어지지요.
그리고 우리는 정체성에 대해 다시 묻게 됩니다.
내가 더 이상 어머니도 아버지도, 선생님도, 의사도 사장도 아니면 나는 누구인가?
하지만 우리의 모든 역할과 기능이 다 사라져도 하나의 정체성은 남습니다.
바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직장을 잃고 공허감을 느낀다면 이제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느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찾을 기회인 것입니다.
- 권순호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