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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신자는 왜 성체를 영할 수 없나요?
Q. 안녕하세요, 괜찮아 신부님. 저는 신자가 아닌 남편을 주일마다 성당에 함께 데리고 가는 서울대교구 신자 ‘잘몰라 모니카’입니다.
남편을 데리고 주일미사에 참례한 지 3주째예요. 성호 긋기부터 앉았다 일어서는 동작까지, 전례를 설명하는 재미로 시간가는 줄을 모릅니다.
그런데, 2주 전부터 당황스런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남편이 영성체를 하겠다는 거예요. 저는 “이건 신자들만 모실 수 있어. 자기는 세례를 받아야해”라고 하면, “자비의 예수님께서 치사하게 신자들에게만 좋은 것을 주실 리가 없다”며 생떼를 부리는 거예요.
영성체 줄에 자꾸 서려는 남편을 잡아 앉히길 수차례, 문득 저도 궁금해졌습니다. 솔직히 영성체가 중요한 순간인 것은 알겠는데, 저를 어떻게 도와주는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렇게 좋은 것을 왜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겐 허락하지 않는 걸까요? 남편에게 신앙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창피한 신자이지만 용기 내 여쭤요. 괜찮아 신부님~ 도와주세요!

A. 안녕하세요? 잘몰라 모니카님! 괜찮아 신부님입니다.
많이 당황하셨겠어요? 신자가 아닌 남편과 함께 미사에 참례하셨다니, 참 대단하십니다. 미사 중 다른 예식은 괜찮은데 영성체는 신자들만 하니 신자가 아닌 분들은 조금 불편할 수 있지요. 제사에 참석했는데 어떤 사람들은 음식을 먹고 어떤 사람들은 못 먹게 하면 이해가 잘 안게 마련이니까요. 그러나 성체를 영할 자격이 있다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니 자매님께서 남편분께 잘 설명해주셔야겠네요.
‘영성체’하면, 예전에 제가 혼인미사를 주례했을 때 벌어졌던 일이 생각납니다. 모니카 자매님처럼 남편이 영세를 받지 않은 신자분이 남편과 함께 혼인미사에 참석하셨죠. 자매님이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사람들이 줄을 서서 나오니까 그 남편분도 나왔다가 신부가 주는 성체를 받아들게 된 거예요. 그 형제님이 쩔쩔매고 계시는데, 저쪽 뒤에서 부인이 그 광경을 보고 깜짝 놀라 소리치셨죠. “여보! 안 돼~~~!”
자매님이 성당 중앙으로 뛰어오자 영성체 줄은 홍해바다가 갈리듯 두 갈래로 갈라졌습니다. 신자들 사이를 헤치고 뛰어 오는 부인을 보고 형제님은 놀란 나머지 성체를 들고 성전 뒤편으로 도망을 쳤어요. 갑자기 성당에서 추격전이 벌어졌죠. 이윽고 그 형제님은 더 이상 도망치지 못하고 코너에 멈추어 서있었어요. 헐레벌떡 뒤쫓아 온 부인께서 “그 성체 먹으면(?) 안 돼! 이리 내놔!”하면서 달려들었죠.
그래서 어떻게 됐느냐구요? 형제님은 엉겁결에 그만 손에 들고 있던 성체를 입에 넣어버렸습니다. 그 광경을 본 신자들은 영문을 몰라 웅성거렸고, 미사는 중단되고 말았지요. 믿지 못하시겠지만, 실화랍니다. 요즘도 영성체 시간이면 이 일이 생각나 웃음이 피식 나옵니다.
가톨릭교회에는 일곱성사가 있습니다. 성체성사는 가장 중요한 성사이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핵심입니다. 사제는 최후의 만찬 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다시 반복하는데, 이로써 제대 위의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몸과 피로 축성되어 성체성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때 축성된 빵과 포도주의 외적 형태는 그대로 남아 있지만 그 실체는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인 성체와 성혈로 변화된다고 교회는 가르칩니다. 신자들은 한 분이신 예수님의 몸을 영함(영성체)으로써 그리스도와 일치하고 교회 안에서 모든 형제자매와 서로 일치하게 됩니다.
성체성사의 신비를 설명하는 좋은 말씀이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개종 때 하신 말씀이에요. “나는 하늘로부터 다음과 같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나는 강한 이들을 위한 음식이다. 그러니 나를 먹고 자라거라. 하지만 너는 육신을 위한 음식처럼 나를 너로 변화시키지는 못하며, 오히려 네가 나로 변화될 것이다.’”
그리스도는 성체성사 안에 신비로운 방식으로, 그러나 실제로 현존하십니다. 그리스도는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시고, 우리는 정말로 그분의 일부를 우리 안에 ‘모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성체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더 깊이 결합되고 그리스도의 몸의 살아 있는 일부가 됩니다. 세례성사와 견진성사 때 받은 은총이 새로워지며, 죄에 맞서 싸우는 힘이 강해집니다. 이것이 우리 가톨릭교회가 믿는 교리이며 우리 신앙의 핵심이지요.
그리스도의 희생 안에 우리 삶 전체를 위한 자리가 존재하기에 우리는 우리의 일과 고통, 기쁨 등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희생과 결합할 수 있습니다. 매일같이 신비로운 방식으로 제단에서 생성되는 교회 안에서 우리는 언제나 새롭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웃들을 위해 우리 스스로도 유익한 빵이 되어 하나 되길 주님께서 바라십니다.
이러한 교회의 신앙과 삶을 공유한 사람만이 영성체에 초대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성체 안에 그리스도가 현존하신다는 완전한 믿음을 가져야하지요. 또한 모니카 자매님과 자매님 곁에 계신 이웃들 한 분 한 분이 ‘교회’임을 남편께서 이해하고 믿게 되셨을 때, 남편 분은 세례 받으실 수 있으며 이로써 영성체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 '창피해도 괜찮아'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