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23 대림 제4주간 수요일
독서:말라 3,1-4.23-24
복음: 루카 1,57-66
57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58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59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60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61 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하며, 62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63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64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65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66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시작기도
성령님, 제게 열린 마음을 주시어 뜻하지 않게 찾아오는 하느님 은혜를 기쁘게 맞이하게 하소서.
말씀 들여다보기
구약성경에는 출생 직후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지만, 신약성경에서는 아들의 경우 8일을 기다렸다가 할례 때에 그렇게 한다. 오늘 복음도 세례자 요한이 태어난 지 8일째 되는 날 할례를 베풀고 그에게 이름을 준다. 모든 게 관습에 따라 이루어진 듯한 이 사건에서 눈여겨봐야 할 두 가지 특이한 사실이 있다.
첫째, 히브리말로 대략 ‘하느님이 은혜를 베푸셨다’라는 뜻을 지닌 ‘요한’이라는 이름에 내포된 의미다. 고대에 이름은 단순히 누군가를 부르는 데 쓰였을 뿐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준다.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러 온 요한에게 ‘하느님의 은혜’를 강조하는 이름이 주어진 것은 구원이 그 준비 단계부터 오로지 하느님 은혜로 말미암았음을 강조한다. 예수님 시대 많은 이가 경건한 삶만이 하느님의 구원을 가져다줄 것이라 믿었지만, 요한의 이름은 하느님 은혜 없이는 그 어떤 것도 불가능함을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둘째, 가브리엘 천사가 알려준 ‘요한’이라는 이름은 관습대로 아버지나 친척의 이름을 따른 게 아니다. 이는 ‘하느님의 은혜’가 익숙하고 편안한 것들을 통해서 내리는 게 아님을 상징한다. 특히 삶을 완전히 바꾸는 구원의 은혜일수록 그러하다. 실제로 하느님은 당신 아들을 통해 세상을 새로 창조하시는 길에 성자의 강생, 동정녀 잉태와 같이 철저히 낯선 방법을 택하셨다. 요한의 이름도 그런 하느님의 생각을 담고 있다.
말씀 따라 걷기
*나의 기도나 선행에 하느님을 내 뜻대로 움직이고픈 욕심이 담겨있지는 않는가?
*낯선 사람들 또는 낯선 생각에 얼마나 마음을 열고 살아가는가?
마침기도
하느님, 아무리 노력해도 완벽하게 살 수 없는 당신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시어 구원의 새 삶을 허락하셨으니, 저도 늘 마음을 열고 당신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 윤성희(구약성서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