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08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독서:창세 3,9-15.20 독서2:에페 1,3-6.11-12
복음: 루카 1,26-38
그때에 26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27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28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29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30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31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32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33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35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36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37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38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시작기도
성령님, 잠시 저를 온갖 상념에서 떼어내시어 하느님 말씀에 온전히 귀 기울이게 하소서.
말씀 들여다보기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는 성모님의 응답은 순명의 모범으로 여겨진다. 때로 성모님의 이러한 ‘순명’은 무조건적 순종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이것저것 따져봤다면 어떻게 남자를 알지 못하는 여인이 성령으로 잉태될 것을 믿고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또한 고대 사회에서 미혼 여성의 임신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생각해 본다면 어떻게 ‘그대로 저에게 이루어지소서’ 하고 대답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성모님의 위대한 순명에는 망설임과 고민이 없지 않다. 이는 천사가 마리아의 집을 찾아왔을 때 그녀가 보인 반응에서 잘 드러난다. 복음서는 천사가 인사말을 전하자 마리아가 그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였다’고 전하는데, 여기에서 ‘곰곰이 생각하였다’라고 번역된 그리스 단어는 ‘이성적으로 이리저리 따져본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많은 경우, 어제 복음 속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처럼 의심이 섞인 채 속으로 질문을 던지는 모습을 가리킬 때 쓰인다.
결국 천사의 인사말을 들은 성모님의 첫 응답이 ‘곰곰이 생각’하는 것이라는 말은 그분의 순명이 다소 불편한 마음에서 시작되었음을 전해준다. 그런 불편한 마음은 식별과정을 거쳤고 마침내 ‘순명’이라는 능동적 선택에 이르렀다. 모든 신앙인이 본받아야 할 순명도 이런 것이다. 무조건적 복종이 아니라, 식별과 내적 대화에 따른 선택의 결과가 참 순명이다.
말씀 따라 걷기
*순명이 필요한 순간들로 어떤 경우가 있었는가, 나는 어떻게 순명했는가?
*순명이 그저 참고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능동적 선택의 결과라는 것에 머물러 보자.
마침기도
당신 백성에게 무조건적 순종보다는 자유로운 선택을 기대하신 하느님, 제가 예수님과 성모님처럼 당신의 뜻을 깊이 이해하여 당신께서 하시는 일에 능동적으로 협조하게 하소서. 아멘.
- 윤성희(구약성서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