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한 마음/오 하느님

묵상 - 2015-12-07

주님의 착한 종 2015. 12. 7. 07:55

 




2015-12-07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독서:이사 35,1-10 복음: 루카 5,17-26

17 하루는 예수님께서 가르치고 계셨는데, 갈릴래아와 유다의 모든 마을과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도 앉아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힘으로 병을 고쳐 주기도 하셨다. 18 그때에 남자 몇이 중풍에 걸린 어떤 사람을 평상에 누인 채 들고 와서, 예수님 앞으로 들여다 놓으려고 하였다. 19 그러나 군중 때문에 그를 안으로 들일 길이 없어 지붕으로 올라가 기와를 벗겨 내고, 평상에 누인 그 환자를 예수님 앞 한가운데로 내려보냈다. 20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사람아,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21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의아하게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저 사람은 누구인데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가?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22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대답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23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24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에 걸린 이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거라.”

25 그러자 그는 그들 앞에서 즉시 일어나 자기가 누워 있던 것을 들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26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두려움에 차서 “우리가 오늘 신기한 일을 보았다.” 하고 말하였다.

 

 


시작기도
성령님, 제 마음을 비우시어 말씀이 저를 뜨겁게 달구게 하소서.

말씀 들여다보기
‘중풍에 걸린’ 이는 ‘군중 때문에’ 예수님이 계신 곳에 들어갈 수 없다. 이것은 예수님을 찾아온 이들이 너무 많아 그 틈을 뚫고 들어갈 수 없음을 의미한다. 여기엔 상징적 의미도 있다. 예수님을 만나는 길에 나선 이들에게 ‘군중’은 때로 걸림돌이 된다. ‘남들 하는 대로 따라 하는 게’ 세상살이하는 데는 가장 안전하고 성공 확률이 높은 길일지 모르겠지만, 예수님을 만나는 데는 그렇지 않다. ‘남들’은 종종 앞을 가리고, 더 나아갈 수 없게 한다.

복음에서 ‘군중 때문에’ 예수께 다가가지 못한 ‘중풍에 걸린’ 이는 위를 향한다. 이 말은 예수님이 가르치고 계시던 건물 위쪽으로 올라갔음을 뜻하지만, 여기에도 상징적 의미가 있다. 예수님을 만나려는 이는 먼저 사람들이 몰려있는 그곳에서 물러나 모든 게 좀 더 잘 보이는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러면서 이제까지 자신이 온 길도 되짚어 보고,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도 보아야 한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어디 계신지 확인해야 한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만나러 가는 여정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남들보다 위에 올라 예수님을 부른다고 해도 그분을 만날 수 없다. 모든 걸 초월한 도인처럼 세상사에 무관심한 채 살아간다고 예수님을 깊이 만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분을 만나려면 ‘기와를 벗겨 내고’, ‘예수님 앞 한가운데로’ 내려가야 한다. 예수님을 불러내는 게 아니라, 그분이 계신 곳으로 내려가야만 한다.

말씀 따라 걷기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세상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이 복잡한 세상 가운데, 예수님은 어디 계시는가? 그분을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가?

마침기도
예수님, 바쁘고 때로는 무섭게 돌아가는 세상에서도 늘 사람들을 만나며 가르치시는 당신을 본받아 저도 주님 계신 곳을 바로 보고 망설임 없이 찾아 나서게 하소서. 아멘.

- 윤성희(구약성서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