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 중앙 방송국을 통해 방영된 ‘신수호전(新水滸傳)’이 86회의 방영을 마치고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해당 연속극은 지난 90년대 후반에 제작된 ‘원 수호전’와 비교해 똑같은 스토리이지만
흥미진진한 내용 각색이나 화면 구성의 섬세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충분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동원된 인력과 소품, 촬영기술의 발전 등으로 차별화에 성공했다.
첫 회를 보고 나서부터 86회 마지막 회가 끝날 때까지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재미있었는데,
한마디로 중국의 고전이지만 보는 즐거움을 만끽 할 수 있는 수작(秀作)이다.
수호전은 중국의 4대 기서 중 하나로서, 송나라 휘종 시대에 중앙정부 일부 고관들의 부정부패,
그리고 피폐된 민심의 고난 속에서 관료와 일반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108명의 영웅호걸 들이
산동의 양산박에서 형제의 의리로서 뭉쳐 탐관오리들을 통쾌하게 혼내주다가 정부에 귀순한다는
얘기다.
극중에서는 108명의 큰형으로서 형제들의 애환을 보듬어 주며 자상하게 보살펴 주는 큰형님 ‘송강’ ,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사나이 중의 사나이 스님 ‘노지심’, 술에 만취하고도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 잡는 천하장사 ‘무송’, 장창 하나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울린 영웅이지만 억울하게 쓰러져간
아내를 못 잊어서 피눈물을 흘린 심약한 남자 ‘임충 등 108명 영웅호걸 들의 일거수 일투족은 보는
이로 하여금 양산박이라는 밀림 속으로 유인하고 있다.
중국의 속담에는 젊어서는 ‘수호전’을 읽어서는 안되고, 나이 들어서는 ‘삼국지’를 읽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젊은 혈기에 사회의 부조리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반골기질로 변하는 것이 두려워 한 말이다.
그러나 어쨌든 수호전은 비록 가슴속에 호연지기가 부족한 심약한 남자에게도 영웅호걸들이 외치는
거침없는 "다거(大哥, 형님), 슝디(兄弟, 형제)" 한마디 속에서 웃고 울며 통쾌하게 술을 마시는
장면은 진정한 남자들의 의리를 엿 볼 수 있다.
펑요우(朋友, 친구)란 무엇인가?
먼저 생각나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삶의 애환을 나눈 죽마고우가 머리 속에 떠오르나, 꼭 동년배의
끼리끼리 관계만이 아니라도 자기를 알아주고 진심으로 이해해 주는 사람들이면 나이를 떠나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
혹자는 주변에서 가까이 해야 하는 사람들의 부류를 무엇인가 잘 해주는 사람, 의사,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였으며, 반면에 멀리해야 할 사람으로는 신분이 높고 고귀한 사람, 무병으로 늘 건강한
사람, 용감한 무사, 거짓말을 하는 사람,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인생을 살면서 혼자만의 기준으로 좋은 것만을 취할 수 있는 선택도 한계는 있을 것이다.
즉 “나무는 가만히 있는데 바람이 흔든다” 라고 하지 않은가?
중국 역사 속에 친구로서 얽힌 인연과 악연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도록 하겠다.
관중과 포숙의 영원한 우정 ‘管包之交’
지금껏 우리는 친구의 소중함과 의리, 그리고 진정한 우정이란 무엇인가를 논하게 된다면
제일 먼저 ‘관포지교’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관중과 포숙은 어렸을 때부터 친구 사이였으나, 제 나라 시기에 각각의 주군을 군주로 옹립하는 과정
중 적으로 바뀌게 된다.
즉 관중은 공자 규를 추대하였으며, 반면에 포숙은 공자 소백을 추대하였다.
추대 과정에 관중은 공자 소백을 화살로 저격하였으나, 결국 포숙이 모신 소백이 제 나라의 군주로
부임하니, 이 사람이 바로 역사상 유명한 제 환공 이다.
제 환공은 군주로 취임 후 본인의 정적인 형과 관중을 우선적으로 처벌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포숙은 군주에게 이르기를, “군주께서 제나라의 군주로만 만족 하려면 포숙 본인으로
충분하나, 천하를 넘보려는 야심이 있다면 관중을 취해야 한다”고 관중의 사면을 강력히 요청한다.
그리고 관중은 제 나라의 중부(仲父)로서의 지위를 누리게 되며, 포숙은 기꺼이 2인자로서 낮은
자리에 임하게 된다. 이후 제 나라는 관중의 탁월한 정치력과 능력을 바탕으로 춘추전국 시대의
5대 패자 중 첫 번째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우정은 아마 포숙의 관중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관용과 이해 때문에 이루어진 듯하다.
즉 그들이 젊었을 때 동업으로 장사를 하였는데, 관중이 일방적으로 많은 돈을 챙겼을 때도 포숙은
관중의 가정이 가난하기 때문이라고 너그럽게 이해해 주고, 이후 많은 사고로 인한 뒤 처리 등에도
포숙은 항상 관중의 입장에서 포용하곤 하였다.
그러나 관중은 임종 시점에 본인의 후임으로 누가 적합하냐는 제 환공의 질문에 포숙을 추천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포숙은 지나치게 결벽하여 너그러움이 부족하기 때문에 재상으로는 부적합하다는
얘기다.
이 얘기를 전해 들은 포숙은 “자기를 본인보다 잘아는 사람은 관중이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글쎄 보통 사람으로서는 쉽게 이해 할 수 없는 우정이다.
그 누구라도 권력, 부귀, 명예 앞에서 본인보다 친구의 우정을 중시하는 사람이 있을까?
부러운 일이다.
그러나 긴 역사의 과정 중 포숙과 같은 현인이 있었기 때문에 친구의 능력을 단순히 개인의 인연으로
치부하지 않고, 관중의 능력으로 나라를 발전시켜 백성 들의 고충을 덜어주게 되었으니,
결국 역사의 진정한 승자는 포숙이 아닌가 생각한다.
합종연횡(合從連衡)의 주역, 소진과 장의
백화쟁명(百花爭鳴)이 만발한 춘추전국 시대의 외교정책의 핵심인 합종연횡은 현 시대에도 종종
정치인 및 사업가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M&A전략인 듯 하다.
당시 진,초,제,조,한,위,연 7개국 중 가장 강력한 국가인 진(秦) 에 대항하기 위해 나머지 6개 국가가
다같이 뭉쳐서 대응하자는 전략이 ‘합종’이다.
이 전략은 주나라 출신의 소진이 각국을 유세하러 다니면서 왕들을 설득하여 이루어 낸 결과물
이었다. 물론 진나라는 이로 인해 이웃나라를 쉽게 침략할 수 없는 어려움에 봉착하였으나,
각개격파를 위한 타개책을 부심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 시점에 소진은 동문인 장의를 생각하고 전략을 짜게 된다.
소진은 장의의 출중한 능력을 알고 있는지라, 일시적으로 어려움에 처해있는 장의를 본인의 재상
부에 초대한다.
기대에 찬 장의에게 소진은 첫날을 제외하고 연일 푸대접을 하며 일부 도적의 누명까지 씌워서
곤경에 처하게 한다.
결국 장의는 피눈물을 흘리며 소진에 대한 복수심으로 치를 떨게 되며 재상 부의 일부 인사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진나라로 향하게 된다.
그곳에서 장의는 적절한 황금의 활용과 뛰어난 언변 술로 진나라 왕의 총애를 받는 중신이 된다.
이제 도와준 이에게는 화려한 영화를 나눠주고, 소진에게는 통쾌한 복수의 빛을 갚아야 할 시점이다.
그런데 도움을 준 인사는 소진이 보낸 사자이며, 소진은 장의의 능력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격장지계 (激將之計)’에 의한 방법으로 오늘날이 있게 하였다는 것이다.
그럼 소진의 목적은 무엇인가?
장의의 힘으로 진나라가 당분간 6국 침략을 보류해서 본인의 입지강화를 도와 달라는 것이다.
결국 장의는 소진이 죽고 나서야 ‘연횡책’( 6국이 각각 진나라와 협력하여 친구가 되었을 때 평화가
유지된다는 전략) 으로 ‘종횡책’을 무산 시킨다.
소진의 친구 사귀기는 너무 이기적이지 않은가 생각된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소진은 친구인 장의의 능력과 성격을 정확히 파악하여 서로 대적하기 보다는
상호 보완적인 입장에서 활용하였으니, 그래도 불행한 친구 사이는 아닌 듯 하다.
이제 친구가 얼마나 무섭고 악랄한 지를 두고 이야기를 풀어보자.
불행한 친구의 대명사 손빈과 방연
각종 영화 및 역사소설 속에 등장하는 전국시대의 무용담은 2400여 년 전의 까마득히 먼 과거이지만
우리를 설레게 한다.
특히 역사 속의 인물 중 갖은 고초와 어려움 속에서도 재기에 성공하고 복수에 성공한다는 얘기는
굳이 무협지가 아니더라도 우리를 통쾌하게 만든다.
여기 전국시대의 역사 파노라마 중 ‘손빈’과 방연 의 고사만큼 극적인 것도 없을 것이다.
손빈과 방연은 귀곡자를 스승으로 모신 동문 친구다.
방연은 먼저 하산하여 위나라의 대장군이 되어 천하를 호령하게 된다.
그의 성공은 귀곡자 선생으로부터 배운 병법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성공하면 할수록 한편으로 불안해 지곤 한다.
오늘의 영광이 손빈 이라는 천재가 이 전쟁 판에 등장하는 순간,본인은 하루아침에 2류로 전락 할 것
같아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연은 손빈을 위나라로 부르게 된다.
동문의 부름에 기쁜 마음으로 달려간 손빈, 그러나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방연의 모략과 음해 일 뿐이다. 애당초 방연에게 필요했던 것은 스승께서 손빈에게만 물려 준 병법서이다.
방연은 손빈에게 온갖 감언 이설로 병법서를 전수하게 하고, 한편으로는 모략에 의해 간첩죄라는
중죄를 범하게 하여 다리의 근육 관절을 제거하는 형으로 평생 병신으로 만든다.
그것도 모르고 죽을 죄에서 방연의 도움으로 살아난 것만으로 고마워 했던 손빈,
그는 결국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유명한 미친 행세를 가장하여 방연의 마수를 피하고
제나라로 망명하게 된다.
이제 손빈의 활약과 방연 과의 대결, 통쾌한 복수의 장만이 남아있다.
다리가 불구인 손빈은 제나라에서 군사의 직위로 탁월한 군사전략을 수립한다.
이제 방연의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은 듯 하다.
결국 손빈은 유명한 “마릉전투” 에서 병사들의 솥가마 수를 줄여가는 기책으로 방연을 유도하고,
“이곳이 방연의 무덤이다” 라는 표말 아래서 방연을 전사 시킨다.
역사서에는 “ 내가 더벅머리 손빈을 영웅으로 만들었구나!” 라고 한탄하였다고 한다.
친구의 악연이다.
“모르는 사람보다 주변의 지인이 훨씬 무서운 적이 된다” 라는 속담에 딱 맞는 말인 지 모른다.
주변의 친구 중 우리가 밀어 줄 사람 없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라고 설파 하였다.
이 복잡한 사회 속에서 혼자 힘으로 살기에는 너무 벅찬 일이다. 그래서 친구가 필요하다.
그런데 어디 나는 별 볼일 없고 주변에 무관심 하지만, 나를 인정 해주고 무조건 도와주는 친구는
없을까? 글쎄 그러한 요행수를 찾기 보다는 포숙처럼 내가 먼저 주변의 친구 중에 쓸만한 놈(?)을
찾아서 그를 이해하고 밀어주어서 서로의 기쁨을 누려보는 것이 빠르지 않겠는가?
즉 세상의 일을 괜찮은 친구와 함께 나눠서 해 보는 것도 즐거운 일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jgkim122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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