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한 마음/마음을 열고

프랑스 노인이 쓴 소책자를 읽고서

주님의 착한 종 2011. 8. 12. 12:10

 

며칠전 책을 읽었는데 제목은  분노하라! 이다.

 

앵디녜부 (분노하라)!

레지스탕스 (저항하라)!

앙가주망 (참여하라)!

정당한 분노와 참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것은 근.현대 역사가 중명한다.

 

94세 노인의 외침이 프랑스 전역을 뒤흔들고, 마침내 한국에 전파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프랑스의 한 영세 출판사에서 초판 8000부를 찍은 소책자 <분노하라>

그 뒤 7개월 만에 무려 200만부를 돌파하며 신드롬을 일으켰고, 세계 각국으로 판권이 팔려 나갔다. 

표지를 포함해 34쪽에 불과한 이 ‘팸플릿’형의 지은이  스테판 에셀.

그는 2차대전 당시 반나치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다가 붙잡혀 사형선고까지 받았으나

집행 직전 극적으로 탈출한 전력의 소유자다.

그 뒤 1948년 유엔 세계인권선언 초안 작성에 참여했으며,

유엔 주재 프랑스 대사와 유엔 인권위원회 프랑스 대표를 역임하는 등 외교관으로 활동했던

그가 10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 새삼 목소리를 높인 까닭은 무엇일까.

" 언론 매체가 부자들에게 장악된 사회”

“극빈층과 최상위 부유층의 격차가 이렇게 큰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리고 돈을 좇아 질주하는 경쟁을 사람들이 이토록 부추긴 적도 일찍이 없었다.” 

 

“레지스탕스의 기본 동기는 분노였다. 레지스탕스 운동의 백전노장이며

 ‘자유 프랑스’의 투쟁 동력이었던 우리는 젊은 세대들에게 호소한다.

 레지스탕스의 유산과 그 이상들을 부디 되살려달라고, 전파하라고.

그대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제 총대를 넘겨받으라. 분노하라!’고.” 

 

에셀이 말하는 분노는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그보다는 ‘참여의 의지’를 가리키는 것.

 “분노의 이유들은 어떤 감정에서라기 보다는  참여의 의지로부터 생겨났다.” . 

 

이렇듯 분노를 통한 참여를 강조하는 에셀이 보기에 “최악의 태도는 무관심”이다.

분노와 참여를 차단하는 무관심이야말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일이다.

그는 한국어판 출간에 즈음해 번역자와 행한 이메일 인터뷰에서도

젊은이들이 일단 지지 정당에 투표할 것과 시민단체에 참여할 것을 강조했다.

 

 그는 “폭력을 멈추게 하는 유일한 수단 또한 폭력이라는 것도 사실”이라는

선배 사르트르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하면서도

“비폭력이 폭력을 멈추게 하는 좀더 확실한 수단”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그는 넬슨 만델라와 마틴 루서 킹 같은 이들의 비폭력 저항에서 교훈을 찾고자 한다.

결국 그가 강조하는 것은 책의 마지막 장 제목이기도 한 ‘평화적 봉기’다. 

 

“오로지 대량 소비, 약자에 대한 멸시, 문화에 대한 경시, 일반화된 망각증,

만인의 만인에 대한 지나친 경쟁만을 앞날의 지평선으로 제시하는

대중 언론매체에 맞서는 진정한 평화적 봉기를....

 21세기를 만들어갈 당신들에게 우리는 애정을 다해 말한다.

‘창조, 그것은 저항이며 저항, 그것은 창조다’라고.”

 

사회현실에 관심가지고 참여하려고하면 주변의 대다수는

중립에 있어라...나선다고 무어가 변하는가...하는 식이다.

하워드 진이 말한다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존 F 케네디는 단테의 '신곡' 나름대로 해석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기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더구나 젊은이라면 지금 이 시기에 분노하여야한다.

그렇지 못하면 후세대에게, 함께하는 동시대 사람들에게 입 다물고 고개숙이고 살아야한다. 

지나온 3년..,4년...국내에서든 해외에서든 살면서 분노할 일들이 분명 있을거다...

이러한 분노는 드러내어 함께 고민하고 정당하게 분출도하여 보다 나은 사회를 이루는데 기여하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