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창업을 준비하며/중국무역·사업 경험기

中 경영계 3인방이 말하는 '혁신 기업의 조건'

주님의 착한 종 2011. 6. 20. 10:07

"중국 기업들, 가격 경쟁서 가치 경쟁으로 옮겨가야 할 시점"

▲ 류저우웨이

▲ 류저우웨이 '21세기경제보도' 사장

중국의 혁신에 대한 서구 학계의 논의와는 별개로 중국 경영계에서는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해 내는 의미로서 혁신이 화두다. 홈페이지에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제창한 '자주창신(自主創新·독자적 혁신)'을 내건 국영기업뿐만 아니라 국제무대에서 해외 기업과 맞붙고 있는 민영기업도 중국제조(中國製造)에서 중국창조(中國創造)로 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Weekly BIZ는 혁신을 주제로 중국 경영계의 3인방을 연쇄 인터뷰했다. 중국 최대 경제지(발행 부수 기준) '21세기경제보도'의 류저우웨이(劉洲衛) 사장, 중국 내 대표적인 경영학자인 청쿵경영대학원의 샹빙(項兵) 원장, 중국 5대 자동차회사인 베이징자동차(北京汽車) 그룹의 쉬허이(徐和誼) 회장이다.

세 사람은 중국 기업에서 혁신이 시급하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했지만 중국에서 구글이나 애플·도요타를 뛰어넘는 혁신 기업이 나오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나 시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중국 기업, 왜 혁신인가?

중국 기업에 혁신이 시급한 이유는 달라진 경영 환경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 10년간 중국은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해왔지만 최근 임금이 오르고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더이상 가격 경쟁이 먹히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 기업에 로열티(기술사용료)를 주고 매출액의 1~2%를 '얄팍한 이윤'으로 남기는 방식으로는 생존 자체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류저우웨이 사장은 2004년 IBM의 PC부문을 인수하며 중국 최대의 민영기업에 올라섰던 레노버(렌샹·聯想)의 예를 들었다. 한때 애플과 슬림노트북(두께가 얇은 노트북) 경쟁을 펼쳤던 레노버의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5년 전 3.8%에서 최근 1%대까지 떨어졌다는 것이다. 정확히 지난해 레노버의 영업이익률은 1.7%, 애플은 28%였다.

▲ 샹빙 청쿵경영대학원 원장
▲ 샹빙 청쿵경영대학원 원장
샹빙 원장은 "중국 기업들이 가격 경쟁에서 '가치 경쟁'으로 옮겨가야 하는 시점"이라며 "전 세계 소비자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는, 구글·페이스북·스타벅스 같은 기업이 중국에서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쉬허이 회장은 "현재 중국 자동차 회사들이 품고 있는 가장 중요한 화두는 중국에서 차세대 도요타가 나올 수 있느냐는 문제의식"이라며 "자동차 대국에서 자동차 강국으로 가기 위한 핵심 기술을 어떻게 하면 확보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자동차그룹은 2015년 이전에 글로벌 15대 자동차 회사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문제는 중국 기업의 혁신 체질이 아직은 허약하다는 점이다. 류저우웨이 사장은 "알리바바(기업 간 상거래 사이트)는 아마존(미국), 텅쉰(騰訊·포털사이트와 메신저 운영 기업)은 ICQ(이스라엘·미국)의 사업 모델을 가져온 것처럼 중국 기업은 C2C(Copy to China·해외 업체의 제품이나 사업모델을 그대로 중국에 들여오는 것)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미국 기업의 경쟁력을 100으로 봤을 때 중국 기업은 여전히 60 정도"라고 말했다. 다만 C2C를 익히는 과정에서 기술격차를 빠르게 줄이고 있다는 것이 류 사장의 분석이다. 쉬허이 회장은 "자동차의 경우 세계 톱(최고)을 100이라고 했을 때 이제 50 정도이고, 친환경자동차 분야에서는 70~80 정도"라고 말했다.

샹빙 교수는 현재 중국에서 그나마 혁신에 가까운 기업으로 태양광 업체인 썬텍, LDK, 통신기기 업체인 화웨이(華爲)를 꼽았다. 다국적 경영진이 세계 시장에서 자본을 조달하고, 세계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는 이유다. 류저우웨이 사장은 "한약을 넣은 피로회복 음료를 만들어 중국 내 판매량에서 코카콜라를 앞선 음료 브랜드 왕라오지(王老吉) 같은 서비스 산업이나 IT 산업이 그나마 혁신 기업에 근접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의 혁신 드라이브. 그 결과는?

중국 정부는 제11·12차 5개년 계획에서 자립 혁신을 강조하며 막대한 예산을 쏟고 있다. 중국 연구개발 예산은 지난 10년간 7배 가까이 늘어났다. 중국의 혁신을 둘러싼 최대 논쟁은 여기서 비롯된다. "중국의 하향식 구조에서도 혁신이 가능한가?"이다.


서구에서는 개방성과 다양성이 혁신을 꽃피우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씨앗'으로 여겨왔다. 미국 내 혁신 이론가이자 실리콘밸리의 SRI인터내셔널 대표인 커티스 칼슨(Carlson)은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혁신은 혼란스럽지만 똑똑하다. 위에서 내려오는 혁신은 질서정연하지만 멍청하다"고 주장했다. 중국 혁신에 대한 회의론의 주된 근거다. 중국 경영인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류저우웨이 사장은 현재처럼 중앙정부가 자원을 동원하는 방식은 자원의 낭비가 생겨 "근본적으로 성공하기 어렵다"고 했다. 시장에 대응하기도 어렵고 결국 거대한 낭비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다. "과연 이런 정책이 지속성이 있는지 경영대학원에서도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는 대신 벤처캐피탈이나 사모펀드를 통해 개별 기업에 지원하는 지방정부의 방식을 참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샹빙 교수는 혁신을 주창하는 정부의 톱다운식 개입이 있더라도 자원 배분의 왜곡은 크지 않고, 그런 왜곡이 생기더라도 빨리 개선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에서 민영기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0%입니다. 고용창출의 90%도 민영기업에서 나옵니다. 에너지 등 몇 가지 분야는 국영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공이 이미 민간으로 넘어와 있는 상황에서 크게 우려할 상황은 아닙니다."

◆언제 중국에서 차세대 구글이 나올 수 있나?

언제쯤 중국에서 한국의 삼성을 위협할 수 있는 '차세대 애플', '차세대 구글'이 나올 수 있을까?

샹빙 원장은 중국 기업이 삼성을 포함해 세계 최고의 기업을 따라잡는 데 필요한 시간이 "길어야 10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불과 3년 전에는 중국 기업의 경영진 수준에서는 혁신 기업이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었다.

"(그때와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최근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세계 시장에서 에너지, 풍력, 바이오산업, 노령화 관련 산업의 중요성이 커졌습니다." 선진국에도 비교적 신흥 분야인데다, 거대한 시장이 선 상황에서 중국 기업들도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 쉬허이 베이징자동차그룹 회장

▲ 쉬허이 베이징자동차그룹 회장

쉬허이 회장은 "중국이 자동차 산업에서 혁신을 이뤄 대국(大國)에서 강국(强國)으로 갈 수 있을지는 3~4년 안에 결론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인재양성, 상품개발, 기업의 내부관리라는 3가지 문제를 극복하는 속도를 보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그는 중국의 자동차 산업이 선진국의 기술 수준에 올라서는 일은 "내 대(代)에서는 안 되고 다음 대 정도에서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자동차그룹은 그 시작으로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연구개발인력 20명을 스카우트하고 있다. 올 3월에는 독일 뮌헨·슈투트가르트에서 채용박람회를 열었다. 500명 가까운 독일인이 지원했다.

류저우웨이 사장은 '넥스트 구글' 출현 시기는 교육에 달렸다고 봤다. "중국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하지 마'입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잡스(애플 창업자), 주커버그(페이스북 창업자) 같은 사람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지금 상태로는 10년 안에 중국에서 차세대 구글이 나올 수 있을지 비관적입니다." 그런 점에서 혁신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노력뿐만 아니라 미국처럼 학생들의 창의성과 상상력을 강조하는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이 소니를 추월했을 때 저는 흥분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애플과 힘겹게 싸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물질적인 것은 빨리 사라지고 또 초월당합니다. 중요한 것은 혁신적인 제품 자체보다 그런 제품과 기업이 나올 수 있는 사회적 기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