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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캄보디아서 시집와 경찰관 된 "라포마라" |

주님의 착한 종 2011. 1. 18. 11:37





캄보디아서 시집와 경찰관 된 "라포마라" 


"사람은 자기가 선택해서 태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아이가 따돌림받지 않을까 가장 걱정이 됩니다.
 제가 경찰이 되려 한 것도 아이 때문에, 어떻게 말해야 될까, 
아이가 혼혈이고 엄마가 이주여성이라 무시 안 당하려면 
제가 열심히 노력해 무엇을 해야겠다고 항상 생각했습니다."
충주에 있는 중앙경찰학교의 창밖으로 수북이 쌓인 하얀 눈이 보였다. 
까무잡잡한 여성의 경찰 제복에는 '264기 라포마라' 명찰이 달려 있었다. 
캄보디아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라포마라(29)씨는 
작년 말 경찰 외사요원 특별채용시험에 합격했다. 
여섯달간 합숙교육을 받고 있는 중이다. 
그녀는 솔직하고 쾌활했다. 
한국어 대화는 거의 막히지 않았다.
"올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다른 아이들이 
'네 엄마 외국인이네' 하겠지요. 제 이름에서도 당장 드러나죠. 
당초 귀화할 때 개명(改名)까지 고민했어요. 
라포마라에서 한 자를 빼고 '라마라'로 할까. 하지만 
이는 현실이고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대신 제가 인정받게 되면 아이도 자신있게 자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이번 시험에서 캄보디아어(語)를 전공한 
한국인 응시자들과 경쟁했다. 번역, 회화, 구두면접, 서류심사, 
체력심사 등을 거쳤다. 7대1의 경쟁률이었다.
"시댁에서는 '가문의 영광'이라고 했어요. 
여기서는 6시에 기상해 운동장 세 바퀴를 달리고 
오후 다섯시까지 교육이 있습니다. 
경례하는 법과 '차렷, 열중쉬어'도 배웠어요. 
좀 힘들지만 너무나 재미있어요. 
방과 후에 저는 따로 한국어 공부를 합니다. 
가족과는 떨어져 지냅니다. 
아이가 보고 싶죠. 주말에 집에 가면 남편이 
'똑똑한 여자와 살면 남자가 힘들다'고 농담합니다."
그녀는 2003년 한국으로 시집왔다. 
그전까지 수도 프놈펜에서 살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한국인 사업가들에게 
월 50달러를 받으며 캄보디아어를 가르쳤다. 
그녀가 영어를 구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전을 겪었던 나라에서 고등학교를 마칠 수 있었던 것은, 
공무원인 그녀 아버지의 학구열 때문이었다. 
당시 지금의 시아주버니가 캄보디아에 놀러 왔고, 
그녀를 보고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처남이 있는데" 하며 
의사를 물어왔다고 한다. 
아직 국제결혼정보업체를 통해 '캄보디아 신부'가 
들어오지 않을 때였다.
"그전에는 한국이 북한인 줄 알았어요. 
하지만 2002년 월드컵 때 한국은 우리에게 인기 최고였어요. 
그때부터 꼭 한국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때마침 그런 제안이 왔습니다. 
이건 기회다, 많은 걸 배울 수 있고 제 꿈을 
이룰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출처 : 바람에 띄운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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