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3라인 건설 지시 불구 경기 상황 나쁘자 '거짓말'
공사 진행되던 1987년 반도체 경기 상승세로 급반전
1987년 삼성 임원들이 이병철 회장의 지시를 거부하고 거짓말까지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회장은 그해 2월 기흥에 반도체 3라인을 건설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일본에 머물다 7월 귀국해 임원들에게 3라인 진척 상황을 물었다. 그러나 공장 착공은커녕 아직도 사업계획서를 검토하고 있었다. 삼성 임원들이 이 회장의 지시를 어긴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일부 임원들은 "공장건설 준비가 완료됐다"는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임원들이 3라인 건설을 반대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1985년부터 진행된 일본 업체들의 저가 공세에 반도체 가격이 급락했고 1986년에는 불황까지 닥쳤다. 이 여파로 반도체 시장을 지배해온 미국 업체들의 D램 생산 중단이 속출했다. 미국 언론은 이를 '제2의 진주만 습격'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후발 주자인 삼성전자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1,2라인 투자 회수는 엄두도 못 내는 상황에서 누적 적자는 2000억원에 달했다. 반도체 때문에 삼성그룹이 위험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임원들이 회장 지시를 어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였다.
이 회장은 다시 한번 "도대체 왜 늦느냐.빨리 추진해라.최고의 기회가 오고 있다"고 재촉했다. 결국 지시를 내린 지 6개월이 지나 공장은 착공에 들어갔다.
한창 공사가 진행되던 1987년 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반도체 경기가 상승세로 급반전하기 시작한 것.불황으로 일본 반도체 업체들이 투자를 중단했고 미국 D램 업체들은 이미 사업에서 손을 떼 공백이 생겼다. 삼성전자는 1,2라인을 완전 가동해도 주문량을 소화하지 못할 정도였다.
1988년 10월 3라인이 완공됐다. 당초 예정보다 6개월 늦어진 것으로 삼성전자는 그만큼 기회손실을 본 셈이었다. 이 회장은 반도체 호황을 보지 못한 채 1987년 12월 별세했다.
그렇다면 그가 불황기에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얘기는 1986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회장은 어느 날 반도체 3라인 투자를 검토하던 팀과 만나 "돈 걱정 말고 서둘러라.미국의 보복이 생각보다 빨라질 것 같아"라고 말했다. 당시 팀원들은 수수께끼 같은 말에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그리고 몇 개월 후 이 회장은 3라인 팀과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그는 "오늘 신문 봤습니까. 미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데 일본에 대한 무역제재가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팀원들은 그제야 '미국의 보복'이란 회장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미국과 일본의 무역마찰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고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전략을 세웠던 것이다. 이 회장은 이미 몇 년 전 일본 기업이 소련 잠수함에 컴퓨터 프로그램을 팔아먹은 사건이 터지자 이를 활용할 방안을 고민해왔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 하나에서도 사업의 기회를 찾은 것이다.
이 회장 사후 세간의 예상과 달리 삼성의 반도체 사업은 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새롭게 삼성을 맡은 이건희 회장은 "더 이상 방어에 급급하지 말고 남보다 앞서가야 한다"며 반도체 시장 공략에 앞장섰다. 이건희 회장이 1985년부터 3라인 건설의 밑그림을 그리고 아버지를 설득한 주인공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세계 반도체 역사를 바꾼 3라인은 아버지와 아들의 합작품이었다.
1988년 이들의 예견은 꽃을 피웠다. 1987년 2달러에 미치지 못했던 256K D램 가격은 4달러를 넘어섰다. 미국의 압력으로 일본 반도체 기업들이 메모리 반도체 생산량을 25% 감축한 것이 결정적 요인이 됐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 반도체를 들고 시장을 떠돌던 삼성전자 영업맨들에게 브로커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삼성에 "얼마면 됩니까. 가격은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대신 원하는 수량만큼 팔아야 합니다"라고 제안했다.
결국 삼성은 1988년 그동안 투자한 비용과 설비에 대한 감가상각을 처리하고도 3200억원의 흑자를 기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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