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창업을 준비하며/중국무역·사업 경험기

베이징이서 무일푼 창업일화

주님의 착한 종 2010. 5. 19. 13:36

작 성 : KOTRA 고객센터 중화권전문 상담역 이송,

이 글은 모 중국 사업가의 창업실화를 이송 상담역께서 정리한 것임)

 

2003 6 10일 사스가 아직 완전하게 물러가지 않은 때

이전 장사에 실패한 나의 주머니 속에는 인민폐 700 元 밖에 없었다.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베이징으로 올라왔다.

난생 처음 대형의 높은 버스를 타보았다. 베이징의 수많은 고층빌딩들을

창 밖으로 내다보자 비참한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내가 자리 잡을 곳이 있을까 ?


차에서 내리자 마중 나온 친구가

나를 시웬 西苑 이라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그 곳은 고층건물 뒤에 숨겨진 보통의 창고였다.

친구는 일인용 침대 하나를 가리키며

누추하고 불편하겠지만 우리 둘이 함께 잘 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

라며 미안해했다.

나는 쓴 웃음을 지었지만 내 형편에 무엇을 더 요구할 것인가 ?


날짜는 빠르게 지나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2 주가 흘렀고 인력시장에 여러 번 가 보았지만

갈 때마다 더욱 실망스럽기만 했다.

표준어가 서툴렀고 전문대학을 나온 학력인데다 영양부족으로

얼굴색까지 노랗게 되어 면접에서 매번 탈락하였다.

일자리 찾는 동안에도 책보는 습관은 계속 유지하였다.

한번은 면접 기다리는 틈새를 이용하여 잡지 1권을 샀다.


잡지 표면에 한 광고가 눈에 띄었는데

꽝시 난닝시 广西 南宁市의 상인이 특수한 기능을 가진 수건을

판다는 내용이었다.

그 수건은 젖은 머리의 물기를 흡수할 뿐만 아니라

헤어 드라이기로 말릴 필요가 없어

머리 결을 상하게 만들지도 않는다고 선전했다.

나는 광고를 보자마자 신기한 생각이 들어 잡지사로 전화를 걸어

그 수건의 생산 공장을 찾아냈고 그 기능에 대해 여러 가지를 물어 보았다.



내가 이 소식을 비교적 일찍 접한 덕분에

이 제품이 베이징에는 아직 대리인이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대리를 할 생각이라고 말하자 공장 측은 곧바로 OK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약 1 주일 뒤에 그 수건들을 받자마자

먼저 내 머리결을 가지고 시험해 보았다.

효과가 정말 좋았다.

나는 수건을 가지고 깐찌아커우 甘家口 大厦, 시딴 西單, 베이천 北辰

왕푸찡 王府井 길거리를 다니며 상담을 시도했다.


바로 몇 개의 점포들이 관심을 보였으나

한 장에 인민폐 30 (한국돈 3,000 원 상당)이라는 말에

모두 너무 비싸서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수건을 받아 팔아볼 엄두를 내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또 한 달이 지나갔다.

이웃집에서 몇 장 달라고 해 거저 준 이외에 한 장도 팔지 못했다.

내 주머니에는 라면 한 봉지 사먹을 돈 마저 남지 않았다.

그래서 앞으로 보름 동안 팔지 못하면 차라리 쓰레기를 주우러 가겠다고

결심을 했다.



결심을 하고 11일이 지났어도 한 장조차 팔지 못했다.

당시 8월 이어 베이징이 가장 더운 시기였지만

내 몸에서는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정말 전문대학 교육까지 받은 내가 쓰레기를 주어야 한단 말인가 ?

 

아마 하느님이 나를 살려 주신 것 같았다.

그날 오후 나는 다시 시웬 西苑으로 돌아가려고 버스를 탔는데

깜박 실수로 엉뚱한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내리고 보니 정류장 옆에 야외 운동용품을 파는 상점이 있었다.

진열장 안으로 각종 운동용품들이 빽빽하게 차 있었다.

나는 이 진열대 안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기뻐서 나오는 웃음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쓴 웃음이었다.


나는 이상한 호기심을 느껴 상점 안으로 들어갔다.

상점 안은 의외로 고급스러웠다.

옷 한 벌이 인민폐 수천元씩 엄청나게 비쌌다.

배낭 하나도 천元이 넘었다.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흔히 쓰는 손전등 하나가 400 여 元 이었다.

그러나 장사가 아주 잘되는 것 같았다.

상점 안의 면적이 300 여 평방미터 정도였는데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고

계산대 앞에는 돈을 내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나는 멍청하게 이 모습을 보다가

내 수건을 이 상점에서 팔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이제는 나도 시간이 없다.

팔 수 있으면 가장 좋고 팔지 못해도 손해 볼 것은 없었다.

최악의 상황이라도 내 수건을 거절하는 수준이 아니겠는가?

시험 삼아 시도해 본다는 마음으로 나는 판매 책임자인

경리의 사무실로 걸어들어 갔다.


몇 마디 인사말을 한 다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나는 이 수건이 가진 과학적 기능과 소재,

그리고 간단한 사용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아직까지 보지 못했던 패션상품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 상점에서 판다면 확실히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30 여세의 경리는 여직원을 불러 시험해 보라고 했다.

시험 결과가 판매 경리의 마음을 붙잡았는지

그는 그 자리에서 100 장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나는 걱정이 되었다.

주머니 속에 인민폐 100 元도 없는데

어떻게 수건을 100 장씩 사온단 말인가?

그러나 나는 OK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며칠 내에 수건을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그날로 차를 타고 시웬 西苑의 숙소로 다시 돌아왔다.

또 다시 걱정이 시작되었고 생각해 보아도 한심스런 웃음만 나왔다.

팔지 못해서 걱정, 팔게 되어도 걱정이었다.

내가 돈을 빌리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은 농촌이었고 이웃에 갚아야 할 빚이 많았다.
그날 밤 나는 몸을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이 판매를 성사시킬 수 있을 것인가를 밤새도록 고민했다.

다음 날 태양은 내가 밤새도록 잠을 자지 못했다고 달라지지 않았다.

보아하니 산을 가리키며 절구를 파는 指山磨 방식 밖에 없었다.

나는 친구의 샴푸로 머리를 깨끗이 감고 단정한 차림을 했다.

그리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다시 그 상점을 찾아갔다. 모험을 해야만 했다.


다행히도 판매 경리는 어제 만났던 그 사람이었다.

이미 안면을 튼 사이가 되어 말하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나는 판매 경리에게 

" 이 수건은 신상품이고 우리는 예약제로 파는데

당신이 요구한 수량은 겨우 100 장으로 너무 작다.

우리의 발송 비용이 꽤 들지만 베이징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사소한 것을 많이 따지지는 않겠다.

그러나 절반 값은 반드시 현금으로 먼저 받아야 한다. " 라고 말했다.


그리고 판매 경리에게 공장이 보내준

아주 보기 좋은 샘플 수건을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그의 여자 친구에게 시험해 보라고 권유했다.

그 경리는 아주 기쁘게 받은 다음 전화로

주인의 허락을 받은 후에 선금을 주겠다고 말했다.

책임자는 사무실로 들어가 전화한 뒤에 미소를 지으며 나왔다.

나는 승낙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판매경리는 " 절반을 미리 선금으로 주겠다.

단 물건은 4일 내 도착시키라" 라고 요구했다.


판매 경리가 선금을 줄 때 나는 핸드폰 번호를 남겨 주었다.

그러나 나는 핸드폰이 없었기 때문에 같은 방 친구의 번호를 알려 줄

수밖에 없었다.

절반의 선금을 받고 나니 점심 12시가 다 되었다.

나는 일각의 시간도 지체할 수 없었다.

상점 문을 나오자마자 공장으로 전화를 걸어 구좌번호를 물어본 다음

지금 즉시 송금할 테니 항공으로 물건을 부쳐 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러나 공장 측은 항공으로 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대답했다.

억지로 한참 동안 설복한 다음에야 항공으로 부치도록 동의를 받을 수 있었다.

나는 다시 이번 납품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공장은 내 전화를 귀찮아하며 끊어 버렸다.

하기야 공장 측은 나의 생명을 건져 준 이번 장사가

어떻게 성사된 것인지 알 턱이 없었을 것이다.


별이 뜨고 달이 뜨기를 기다렸던 것처럼 3일 째 오후 물건이 도착했다.

나는 뜨거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숫자를 세어본 다음

박스 위에 붙은 항공 표지를 뜯어내고 상점을 찾아 갔다.

정말 운이 좋게도 그 젊은 경리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반갑게 경리에게 인사를 하였고

경리도 내가 시간을 정확히 지킨 것에 대해 매우 기뻐했다.

나는 상점 영업원들을 위해 제품을 분류해 주고

그들이 손님들을 설복할 수 있도록 공장에서 배운 지식도 전수해 주었다.


나는 1 시간여 동안에 그 상점의 영업원들과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번 오다를 위해 영업원들과 끈끈한 우의를 다져놓자

판매경리가 나머지 절반의 금액을 가지고 다가왔다.

그는 영수증을 요구하지 않았으나

나는 영수증이 절대로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 다음 번 거래를 위해 그에게 영수증을 끊어 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판매 책임자는 다음에 대량으로 구입할 때 같이 끊어 달라며

영수증을 거절했다.

나는그러면 다음에 같이 끊어 드리지요라고 말하며 상점을 나왔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쉬었다.

만일 그가 영수증을 정말 끊어 달라고 했으면 어떻게 할 뻔 했는가 ?


어쨌든 이번 거래로 나는 약간의 돈을 벌었고

주머니 안에 들어온 돈으로

내일 한 끼의 고기국수를 사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라면아 ! 라면아 !

내 입안에 생긴 2 개의 물집은 모두 네가 만들어 준 상처란다 !


이번 거래를 성사시킨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PC 방에서 베이징에 있는 유사한 전문 판매점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운동이라는 글자가 있는 상점들을 모두 베껴놓고

그 다음날 상점을 찾아가 영업을 했다.

당시 나의 모습은 그야말로 미친 개처럼 돌아 다녔다.

눈이 빨갛게 충혈된 채 배낭 하나를 배고 사방을 헤메고 다녔다.

오다 받고, 물건 보내고, 또 판매하는 과정을 되풀이 하며

1년 반을 돌아다니자 내 손 안에는 인민폐 수만元의 자금이 모아졌다.

소 상인의 고통과 쾌락을 충분히 맛보았다.


이 장사를 하면서 나는 하나의 문제점을 발견했다.

잘 파는 상점일 수록 두 번째 오다를 나에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박스 위의 주소와 전화를 보고 공장으로 직접 오다해서

나보다 더 싸게 샀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공장에 몇 차례 항의하였으나 전혀 성과가 없었다.

나는 이 상황을 엄중하다고 판단하고

만일 공장이 이 처럼 신용을 지키지 않는다면 나의 판매 고객은

모두 공장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심하였다.

해결할 능력도 가지고 있었다.


공장이 신용을 지키지 않아 일어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고민하던 중 인터넷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게 되었다.

하루는 인터넷에 들어갔는데 우연히 百度 사이트에서

같은 종류의 상품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제품은 베이징에서 더 가까운 공장에서 만들고 있었다.

나는 인터넷상의 전화로 연락을 했다.

상대방은 바로 샘플을 보내왔다.

베이징에서 멀지 않았던 관계로 3일 만에 샘플이 도착했다.


박스를 뜯어보니 전체적인 품질과 디자인, 촉감, 색깔 등이

이전 공장 것 보다 훨씬 좋았다.

그리고 가격은 30 % 정도 더 쌌다.

나는 이전 공장 제품을 취급하지 않기로 하고

红门 근처의 조그만 인쇄공장을 찾아갔다.


그들에게 내가 난닝 南宁의 포장을 참고로 보여주면서

나의 독창적인 포장으로 인쇄하여 달라고 하였다.

1만개 포장에 인민폐 6,000 元을 주었다.

그리고도 약간의 돈이 남아서 새 수건을 받아와

그 날 즉시로 100 장을 포장해서 고객 상점들에게 돌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수건으로 얼굴을 감싸고 눈물을 흘렸다.

700장 째부터 드디어 나의 브랜드 제품으로 공급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포장을 한 다음날 나는 이전의 고객 상점들을 다시 찾아갔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제는 내 공장을 가지고 제품을 생산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품질도 좋아졌을 뿐 아니라 가격도 이전보다 싸다고 설명해 주었다.

이런 방식으로 이전의 고객들을 다시 회복해 올 수 있었다.


10
1일 시작되는 장기간의 연휴시기를 맞아

실외 운동용품이 아주 잘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이 시기를 이용하여 나의 영업 범위를 전국으로 확대시켰다.

广州、深、成都、西安、州、州、杭州、 新疆 등에

모두 나의 판매점을 두게 되었다. 업무도 이전에 비해 엄청나게 확대 되었다.


2004
3월 나는 드디어 영업허가증을 받았다.

그리고 디스크 보관 창고에서 이사 나와

직원 3명의 소규모 무역회사를 설립하였다.

손가락을 꼽아 계산해 보니 무일푼에서 회사설립까지 불과 8 개월이 걸렸다.

( 나는 익명으로 사용했음을 양해 바랍니다 )

 

(작 성 : KOTRA 고객센터 중화권전문 상담역 이송,

상기 글은 모 중국 사업가의 창업실화를 이송 상담역께서 정리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