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의 기억과 발자취/청도 이야기

비오는 10월의 마지막 밤에..

주님의 착한 종 2009. 10. 31. 18:20

 

오늘처럼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는

큼지막한 우산 하나 들고 길을 나서고 싶다.
일단은 동행할 그 누가 없어도 기쁘리라
.
가다가 우산 없이 길을 가는 사람에겐

말없이 조용히 우산을 머리 위에 올려주고 싶다.

시장 터에서 꾸부정히 굽은 몸을 이끌고 어디 가는지도 모르는 듯

고개 숙이고 걸어 나오는 할머니에게도,

초등학교를 나서는 개구쟁이들의 머리 위에도,

혼자 걷는 여자에게도......

비가 오는 날은 어쩔 수 없이 자기만의 경계가 만들어지는 날이다
.
우산을 쓰면 그 우산이 받쳐내는 빈 공간 아래로 사람들은 축소된다
.
비를 긋는 우산 아래로 축소되는 영역을 떨쳐내는 건

다른 이들을 내 우산 속에 받아들이는 것밖에 없으리라.
그러므로 비가 오는 날은 우산 없는 이들을 위해

가야 할 목적지를 정해놓지 않은 채 우산을 들고 나가고 싶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는

산이 보이는 널따란 창문 가에 다정한 사람과 앉아

안개 피어 오르는 산 등선을 바라보고 싶다.
따스한 차 한잔에서 피어 오르는 안개처럼 서로의 그리움을 이야기하고 싶다
.
비에 젖은 산 속으로 날아가는 새들을 바라보며

내 잃어버린 안식처를 그윽한 눈동자로 추억하고 싶다.
비에 젖은 날개 퍼덕이며 날아가는 새들은 안식처로 날아가

날개를 파르르 덜며 물을 털어내리라.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는

나 또한 가녀리게 떨며 추위에 지친 그대처럼 따스한 마음이 그립다고

조용히, 아주 조용히, 들릴 듯 말 듯, 그리고 부끄럽게 속삭이고 싶다
.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는

묵은 때 벗겨내는 들판으로 걸어가고 싶다
.
빗방울들이 하얗게 매달린 앙상한 나뭇가지 아래 멈춰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
하늘과 땅이 이렇게 서로 맞닿아 있는 날에는 혼자라도 외롭지 않으리라
.
언제나 나와 함께 있는 길, 길은 나를 버리지 않는다
.
내가 머물고 떠나는 발길마다에 한없이 뻗어있는 길로 영원히 흐르고 싶다
.
길이 있으니 나는 언제나 외롭지 않으리라
.
언제나...

 

오늘처럼 토요일 주말 저녁에는 마주 앉아

허심탄회하게 술 한잔 하며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옆에 있었음 좋겠다^^
그러면 나 외롭지 않겠는데......

 

결혼 후, 오늘 같은 10월의 마지막 밤에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실비아와 조용한 카페에서 함께 지냈습니다.

물론 어떤 날은 단 둘만이 아닐 경우도 있었지요.

어쩌다 그렇게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어요.

 

벌써 두 번의 10월의 마지막 밤을 혼자 보냅니다.

실비아도 쓸쓸해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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