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처럼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는
큼지막한 우산 하나 들고 길을 나서고 싶다.
일단은 동행할 그 누가 없어도 기쁘리라.
가다가 우산 없이 길을 가는 사람에겐
말없이 조용히 우산을 머리 위에 올려주고 싶다.
시장 터에서 꾸부정히 굽은 몸을 이끌고 어디 가는지도 모르는 듯
고개 숙이고 걸어 나오는 할머니에게도,
초등학교를 나서는 개구쟁이들의 머리 위에도,
혼자 걷는 여자에게도......
비가 오는 날은 어쩔 수 없이 자기만의 경계가 만들어지는 날이다.
우산을 쓰면 그 우산이 받쳐내는 빈 공간 아래로 사람들은 축소된다.
비를 긋는 우산 아래로 축소되는 영역을 떨쳐내는 건
다른 이들을 내 우산 속에 받아들이는 것밖에 없으리라.
그러므로 비가 오는 날은 우산 없는 이들을 위해
가야 할 목적지를 정해놓지 않은 채 우산을 들고 나가고 싶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는
산이 보이는 널따란 창문 가에 다정한 사람과 앉아
안개 피어 오르는 산 등선을 바라보고 싶다.
따스한 차 한잔에서 피어 오르는 안개처럼 서로의 그리움을 이야기하고 싶다.
비에 젖은 산 속으로 날아가는 새들을 바라보며
내 잃어버린 안식처를 그윽한 눈동자로 추억하고 싶다.
비에 젖은 날개 퍼덕이며 날아가는 새들은 안식처로 날아가
날개를 파르르 덜며 물을 털어내리라.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는
나 또한 가녀리게 떨며 추위에 지친 그대처럼 따스한 마음이 그립다고
조용히, 아주 조용히, 들릴 듯 말 듯, 그리고 부끄럽게 속삭이고 싶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는
묵은 때 벗겨내는 들판으로 걸어가고 싶다.
빗방울들이 하얗게 매달린 앙상한 나뭇가지 아래 멈춰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하늘과 땅이 이렇게 서로 맞닿아 있는 날에는 혼자라도 외롭지 않으리라.
언제나 나와 함께 있는 길, 길은 나를 버리지 않는다.
내가 머물고 떠나는 발길마다에 한없이 뻗어있는 길로 영원히 흐르고 싶다.
길이 있으니 나는 언제나 외롭지 않으리라.
언제나...
오늘처럼 토요일 주말 저녁에는 마주 앉아
허심탄회하게 술 한잔 하며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옆에 있었음 좋겠다^^
그러면 나 외롭지 않겠는데......
결혼 후, 오늘 같은 10월의 마지막 밤에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실비아와 조용한 카페에서 함께 지냈습니다.
물론 어떤 날은 단 둘만이 아닐 경우도 있었지요.
어쩌다 그렇게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어요.
벌써 두 번의 10월의 마지막 밤을 혼자 보냅니다.
실비아도 쓸쓸해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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