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한 마음/오 하느님

[스크랩] 2009년 10월 28일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주님의 착한 종 2009. 10. 28. 17:01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9년 10월 28일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제1독서 에페소서 2,19-22

형제 여러분, 19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20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21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22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


복음 루카 6,12-19

12 그 무렵에,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13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
그들을 사도라고도 부르셨는데, 14 그들은 베드로라고 이름을 지어 주신 시몬,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15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 또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17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18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더러운 영들에게 시달리는 이들도 낫게 되었다.
19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 동창신부 모임이 있었습니다. 다음 달에 함께 갈 성지순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뒤, 저희는 저녁식사를 함께 하러 어느 음식점에 갔지요. 맛있게 식사를 하던 중에 문득 고추를 너무나 맛있게 먹는 동창신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물었습니다.

“그 고추 안 매워?”

사실 고추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매운 고추는 정말로 싫거든요. 그래서 고추를 먹을 때면 살짝 먹어보거나 아니면 이렇게 물어서 고추를 먹습니다. 저의 질문에 동창신부는 이렇게 말해요.

“이 고추 전혀 안 매워. 조금 싱거운 것 같은데?”

저는 안심하고 고추를 한입 물었습니다. 그 순간, 손에 들고 있던 고추를 내려놓아야만 했습니다. 그 고추는 생각보다 너무 매웠습니다. 그래서 그 신부에게 항의를 했지요. 이 고추가 어떻게 싱겁냐고 말입니다. 그러자 그 신부는 고개를 갸웃 거리며 말합니다.

“글쎄, 이 고추는 안 매운데?”

고추를 워낙 잘 먹는 그래서 그렇게 청양고추까지도 거침없이 잘 먹는 그 신부에게는 이 고추 맛이 싱거웠나 봅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너무나도 매운 고추였습니다.

이렇게 음식 맛에 대해서 서로 차이를 보입니다. 그리고 그 차이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며, 그 차이를 우리는 인정해야만 합니다. 이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안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서로간의 차이점은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할 때가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판단하고, 미워하며 단죄하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 성 시몬과 성 유다 사도 축일을 맞이해서, 복음은 예수님께서 뽑으신 12명의 사도를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그들의 이름을 보면서, 동시에 그들의 부르심에 대해 떠올리게 됩니다. 다양한 삶을 가진 이들, 그러다보니 하던 일도 또 성격도 다를 수밖에 없지요.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부르셨고, 당신 뜻에 획일적으로 따르라 하지 않고 그 다양함을 인정해주셨습니다.

이 부르심은 2000년 전에만 있었던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우리 각자에게도 똑같이 주어집니다. 그때보다도 더 다양한 삶을 가진 사람들을 예수님께서는 그들 삶에 맞게 부르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나와 다른 너를 잘 인정하지 못합니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판단과 단죄를 했었는지요?

천덕꾸러기 같이 못난 나까지도 불러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이제는 내 곁에 있는 다양한 이웃들을 받아들이겠다는 다짐을 감히 해봅니다.




수확의 기쁨은 흘린 땀에 정비례한다(윌리엄 블레이크).



비우는 만큼 채워지고(‘가난한 마음의 행복’ 중에서)

마음이든, 물건이든
남에게 주어 나를 비우면
그 비운 만큼 반드시 채워집니다.

남에게 좋은 것을 주면
준 만큼 더 좋은 것이
나에게 채워집니다.

좋은 말을 하면 할수록
더 좋은 말이 떠오릅니다.
좋은 글을 쓰면 쓸수록
그만큼 더 좋은 글이 나옵니다.

그러나 눈앞의 아쉬움 때문에
그냥 쌓아 두었다가는
상하거나 쓸 시기를 놓쳐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좋은 말이 있어도 쓰지 않으면
그 말은 망각 속으로 사라지고
더 이상 좋은 말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나중에 할 말이 없어 질까 두려워 말을 아끼고
참으면 점점 벙어리가 됩니다.

우리의 마음은
샘물과 같아서 퍼내면 퍼낸 만큼
고이게 마련입니다.

나쁜 것을 퍼서 남에게 주면
더 나쁜 것이 쌓이고,
좋은 것을 퍼서 남에게 주면
더 좋은 것이 쌓입니다.

참 신기합니다.
그냥 쌓이는 게 아니라 샘솟듯 솟아 나서
우리 마음을 가득 채우니 말입니다.

가난이 두렵다고
과도한 재물을 탐하지 말 것이며,
부자의 있음을 비방하여
자신의 무능을 비호하지
말아야 합니다.

차고 넘치면,
비우면 가득하다는 진실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출처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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