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한 마음/오 하느님

2009년 4월 7일 성주간 화요일

주님의 착한 종 2009. 4. 7. 13:48

2009년 4월 7일 성주간 화요일

제1독서 이사야 49,1-6

1 섬들아, 내 말을 들어라. 먼 곳에 사는 민족들아, 귀를 기울여라. 주님께서 나를 모태에서부터 부르시고,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 2 그분께서 내 입을 날카로운 칼처럼 만드시고, 당신의 손 그늘에 나를 숨겨 주셨다. 나를 날카로운 화살처럼 만드시어, 당신의 화살 통 속에 감추셨다.
3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4 그러나 나는 말하였다.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였다. 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 버렸다. 그러나 내 권리는 나의 주님께 있고, 내 보상은 나의 하느님께 있다.”
5 이제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분께서는 야곱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고, 이스라엘이 당신께 모여들게 하시려고, 나를 모태에서부터 당신 종으로 빚어 만드셨다. 나는 주님의 눈에 소중하게 여겨졌고,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셨다. 6 그분께서 말씀하신다.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고, 이스라엘의 생존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의 구원이 땅 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복음 요한 13,21-33.36-3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셔서] 21 마음이 산란하시어 드러내 놓고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22 제자들은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몰라 어리둥절하여 서로 바라보기만 하였다.
23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 품에 기대어 앉아 있었는데, 그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였다. 24 그래서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고갯짓을 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람이 누구인지 여쭈어 보게 하였다. 25 그 제자가 예수님께 더 다가가, “주님, 그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다.
26 예수님께서는 “내가 빵을 적셔서 주는 자가 바로 그 사람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리고 빵을 적신 다음 그것을 들어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다. 27 유다가 그 빵을 받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 28 식탁에 함께 앉은 이들은 예수님께서 그에게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아무도 몰랐다. 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주머니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예수님께서 그에게 축제에 필요한 것을 사라고 하셨거나, 또는 가난한 이들에게 무엇을 주라고 말씀하신 것이려니 생각하였다. 30 유다는 빵을 받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때는 밤이었다.
31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32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33 얘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너희는 나를 찾을 터인데, 내가 유다인들에게 말한 것처럼 이제 너희에게도 말한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36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37 베드로가 다시 “주님, 어찌하여 지금은 주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까?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 하자, 38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나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겠다는 말이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지금 영국에서는 어떤 라디오 프로그램이 사람들에게 커다란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 이 프로그램에서도 일주일에 한번 청취자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시간이 있는데, 너무나도 재치 있게 해결하여 매주 수천 명의 청취자들이 자신의 고민을 이 프로그램에 보낸다고 합니다. 어떻게 고민을 해결해주는지 한 번 보지요.

‘나의 23살 남동생이 너무 게을러서 씻지 않아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사연에 대해서 그 해결책을 이렇게 제시합니다.

“그에게 일자리를 찾고 TV속 여자들을 그만 보라고 말하고 싶네요. 여자들은 지저분하고 더러운 남자들을 싫어해요. 계속 그런다면 여자 친구가 절대 생기지 않을 거라고 충고하고 싶어요.”

어때요? 적절한 대답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렇게 고민 상담을 들어주고 해결해주는 카운슬러의 나이입니다. 글쎄 이 카운슬러는 엘라이나 스미스(Elaina Smith)라는 7살 먹은 소녀라는 것입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고민 상담을 하려면 인생을 어느 정도 산 사람, 즉 지긋한 나이를 가진 사람만이 고민 상담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7살짜리 꼬마 아이의 고민 상담을 통해서 나이 역시 우리들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이 아닐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연세 지긋하신 분들을 통해서 아니라, 이 어린 꼬마 아이를 통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물론 큰 힘을 얻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은 이 어린 꼬마 아이가 카운슬러의 역할을 잘 해나가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바로 순수한 마음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순수한 마음 때문에 걱정과 고민의 본질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고통과 시련이라는 것에 대한 문제 해결은 이 세상의 지식을 통해서 아님을, 그리고 세상의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을 통해서도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사심 없는 순수한 마음이 문제 해결의 비결이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선 예수님의 모습도 이렇지 않을까요?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랑 가득한 진실된 마음으로 인해서 우리가 고통과 시련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을 통해서만 나의 문제점을 극복해주시길 원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마음이 결국 예수님을 배반하고 예수님 곁을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도 그랬으며,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말했던 베드로 역시 그랬습니다. 그런데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 역시 그런 것이 아닐까요?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기준으로만 주님을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주님의 사랑을 보아야 합니다. 그때 더 크고 더 좋은 것을 주님으로부터 얻게 될 것입니다.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다. 무사 안일하게 사는 것보다는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인가를 이루기 위한 모험을 시도하는 것이 우리 인생에 걸맞는 일이다.(프랭클린 루즈벨트)



서로를 격려하는 삶을 살아가자(‘좋은 글’ 중에서)

인생이란 나그네가 걷는
마음의 여행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길에서 잠시 머무는 것뿐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지향하며 굳건히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의 여행은 어둠이 아닌 밝은 여행이 되어야 합니다.
들을 귀가 없는 사람에게는 어떤 말을 해도 반발할 뿐입니다.

남모르게 그분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러는 사이에 서로의 마음이 통하게 되어
상대방의 마음이 부드럽게 변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의 비판에 동요하는 사람은
완성의 길에서 멀리 있는 사람입니다.
서로 맞지 않은 사람과 일치할 수 있는 방법은
내가 먼저 마음을 바꾸는 일입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은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자신의 내면을 바르게 하려고 애쓰지 않는다면
사람들과 진정한 일치를 이룰 수 없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한다면
그 관계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서로 존중해야 합니다.

다섯 손가락의 역할이 서로 다른 것과 같이
사람이 지니고 있는 특성도 다릅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의 장점을 살려주도록 하십시오.
그것이 곧 상대방을 응달에서 햇볕으로 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따뜻한 격려의 말은
사람들을 강인하게 하고 자신감을 줍니다.
누군가를 인정해 주는 것은
그를 살려주는 것이며 삶의 윤활유가 됩니다.

반대로 자만하고 자랑하는 것은 마찰의 요인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에게 무언가를 주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주는가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에만 관심을 둔다면
그 사람은 점점 왜소해지고 맙니다.
그러나 이웃의 도움에 마음을 쓰는 사람은
반드시 성장할 것입니다.

시기하거나 미워하는 것은
이웃으로부터 나를 멀어지게 하고
불안과 초조함을 더해줄 뿐입니다.

있는 그대로 자신이 있는 곳에서
온전히 피어나도록 하십시오.
주변 환경을 나에게 맞추려 하지 말고
나를 주변 환경에 맞추도록 하십시오.

남을 꾸짖는 것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일 뿐
나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전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당신의 인생을 실패로 이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는 날까지
누군가의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겠습니다.

거센 태풍은 하룻밤에 모든 것을 휩쓸어 가지만
잔잔한 미풍은 마음을 평화롭고 기쁘게 합니다.
태풍과 같은 삶이 아니라
산들바람과 같은 부드러운 마음으로 살아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