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한 마음/오 하느님

2009년 3월 17일 사순 제3주간 화요일

주님의 착한 종 2009. 3. 17. 09:48

2009년 3월 17일 사순 제3주간 화요일

제1독서 다니엘 3,25.34-43

그 무렵 25 아자르야는 불 한가운데에 우뚝 서서 입을 열어 이렇게 기도하였다.
34 “당신의 이름을 생각하시어 저희를 끝까지 저버리지 마시고, 당신의 계약을 폐기하지 마소서. 35 당신의 벗 아브라함, 당신의 종 이사악, 당신의 거룩한 사람 이스라엘을 보시어 저희에게서 당신의 자비를 거두지 마소서. 36 당신께서는 그들의 자손들을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37 주님, 저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민족이 되었습니다. 저희의 죄 때문에 저희는 오늘 온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백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38 지금 저희에게는 제후도 예언자도 지도자도 없고, 번제물도 희생 제물도 예물도 분향도 없으며, 당신께 제물을 바쳐 자비를 얻을 곳도 없습니다.
39 그렇지만 저희의 부서진 영혼과 겸손해진 정신을 보시어, 저희를 숫양과 황소의 번제물로, 수만 마리의 살진 양으로 받아 주소서. 40 이것이 오늘 저희가 당신께 바치는 희생 제물이 되어, 당신을 온전히 따를 수 있게 하소서. 정녕 당신을 신뢰하는 이들은 수치를 당하지 않습니다.
41 이제 저희는 마음을 다하여 당신을 따르렵니다. 당신을 경외하고, 당신의 얼굴을 찾으렵니다. 저희가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해 주소서. 42 당신의 호의에 따라, 당신의 크신 자비에 따라 저희를 대해 주소서. 43 당신의 놀라운 업적에 따라 저희를 구하시어, 주님, 당신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소서.”


복음 마태오 18,21-35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23 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24 임금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왔다. 25 그런데 그가 빚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아내와 자식과 그 밖에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26 그러자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제발 참아 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7 그 종의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
28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다. 그러자 그를 붙들어 멱살을 잡고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말하였다. 29 그의 동료는 엎드려서, ‘제발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하고 청하였다. 30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서 그 동료가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31 동료들이 그렇게 벌어진 일을 보고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죄다 일렀다.
32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들여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33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34 그러고 나서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
35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1969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 유대인 6백만 명을 살해한 독일의 아이히만이 사형선고를 받고 조용히 마지막 날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사형선고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지요. 그런데 영국에 사는 유대인 꼴란즈가 아이히만 석방운동을 대대적으로 일으키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가 자기 민족의 원수라고 할 수 있는 아이히만을 용서하자는 이유는 다음의 다섯 가지였습니다.

1) 아이히만을 사형한다고 해서 이미 죽은 유대인이 살아나는 것이 아니다.

2) 육신을 사형시키지 안 해도 오래 살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사람이란 다 죽게 마련이니까.

3) 하느님은 그의 영혼을 심판하셨을 테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4) 동생을 죽인 카인도 하느님께서는 용서하셨다.

5) 사랑이 식어진 세상에 사랑을 심자.

사람들은 특별히 마지막 이유인 ‘사랑이 식어진 세상에 사랑을 심자’는 호소에 공감해서 그의 석방운동에 동참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용서할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많이 만납니다. 또한 매스컴을 통해서도 용서해서는 안 된다고 말을 듣는 악한 사람들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과연 용서하고 안 하고를 결정할 수 있느냐 라는 생각을 해보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나 역시도 끊임없이 죄를 짓고 있으며, 끊임없이 주님으로부터 따뜻한 용서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느님께서 나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시고 곧바로 벌을 내리신다면 어떨까요? 이러한 생각을 해 보니, 지금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그 사실 만으로도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라는 베드로의 질문에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결국 무조건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성경 안에서 ‘7’이 완전수인 것을 기억할 때, 그 수가 일흔일곱 번 반복된다는 것은 무조건적인 용서, 완전한 용서를 뜻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주인으로부터 받은 용서는 기억하지 않으면서, 다른 동료를 용서하지 않는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비유 말씀을 통해서 가르쳐주십니다. 즉, 그 주인이 바로 하느님이시며 그 용서를 받는 사람은 바로 우리인데, 계속해서 큰 용서를 받고 있는 우리는 당연히 나의 이웃의 잘못에 대해서도 용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이 말씀을 잊지 않는 오늘이 되시길 바랍니다.



남을 따르는 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없다.(아리스토텔레스)



비가 올 때까지 춤을 춥니다(‘행복한 동행’ 중에서)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을 아보리진이라 한다. 아보리진 중에 언제든지 비를 내리게 하는 능력을 지닌 부족이 있었다. 가뭄으로 어려움에 처하면 백인들조차 이들 부족을 불러 기우 춤을 추게 할 정도였다. 어느 날, 백인 마을 지도자가 족장을 찾아가 이렇게 물었다.

“도대체 당신들이 춤을 추기만 하면 비가 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족장은 대답했다.

“간단합니다. 우리는 비가 올 때까지 춤을 춥니다.”

뜻을 이룰 때까지 참고 견디며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바로 비를 내리게 한 비결이었던 것이다. 성공도 마찬가지다. 오직 한 가지에 집중해 끈기 있게 인내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랴말로 성공을 이루는 최고의 전략이다. 실패란 없다. 단지 포기의 순간만 있을 뿐이다.

지금 이 순간, 그만두고 싶다는 나약함이 마음을 흔들고 있는가? 비가 올 때까지 춤을 췄던 아보리진의 이야기를 떠올려 보라. 그리고 마음속에 이 한마디를 새겨라.

“나는 어떠한 경우에도 끝까지 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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