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꿔 가진 십자가
남들은 모두 하는 일마다 잘도 풀려지고,
별난 불행도 당하지 않고 잘도 살아가는데
유독 자기 자신만은 못 당할, 못 견딜 일만 당하면서
제일 불행스럽고 억울하게 산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지는 불운만이 자기의 것이라고
탄식한 이 사람은 하느님을 찾아가서 불평을 했다.
자신에게 지워진 삶의 십자가가 너무 무거워
도저히 감당해 낼 수 없으니 남들의 십자가처럼
가볍고 덜 힘든 것으로 바꾸어 달라고...
"저어기, 여러 가지 십자가가 있으니, 원하는 것으로 바꾸어 가라"고
하시면서 하느님께선 쾌히 허락하셨다.
그 사람은 많은 사람들의 십자가가 있는 곳, 즉 큰 것, 작은 것,
무거운 것, 가벼운 것, 험악한 것, 보드라운 것 등
여러 가지 십자가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는 그들 중에서 가장 작으면서 가장 가볍고
그리고 가장 보드라운 십자가 하나를 골라 들고
이것을 가지겠다고 하느님께 아뢰었다. 하느님께선 쾌히 허락하셨다.
그 사람이 자신이 골라 든 가장 견디기 쉬운 십자가를 들고 보니,
거기에 바로 자신의 이름이 씌어 있더라고.
자신이 지고 사는 십자가가 가장 견디기 쉬운 것인지도 모르고
오히려 불평과 원망만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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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누구나 자신의 짐이
가장 힘겹고 가장 고통스럽고 불행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의 생애야말로
제일 비극적이며, 한 권의 소설 속의 주인공보다도
더 기막힌 비극의 주인공으로 자기가 살고 있다고
아파하며 절망하며 자신을 원망하리라.
아마도 가장 가볍고 견디기 쉬운 십자가를 지고서도
그걸 깨닫지 못하는지도 모르는 일. 그렇다.
그 누구도 자신의 십자가가
자신의 능력보다 가볍다고는 생각지 않으리라.
그래서 그 누구도 하느님께 좀 더 무거운
좀 더 고통스러운 불행의 십자가로 바꾸어 달라고는 하지 않으리라.
이겨 낼 수 없을 만큼 무거운
고통과 역경에는 처하도록 하시지 않으신다는
신의 자비를 나도 너무 오랫동안 잊고 살아온 것 같다.
-유안진-《우리를 영원케 하는 것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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