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인심
이 글은 제가 존경하는 어느 선배님의 글입니다.
그 분은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나 사환으로 시작을 해서 검정고시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공무원 생활을 하셨습니다.
이후 야간으로 대학을 나오고, 대학원은 아들보다 후배가 되셨지요.
그 후, 워낙 열심히 근무하시다 보니 고위직까지 승진을 하셨고
은퇴를 하셔서는 공인중계사 자격증 따신 후 잠시 부동산 업을 하셨고
지금은 중국 무역 쪽 일을 하고 계십니다.
긍정적 사고와 왕성한 활동, 게다가 박학다식함에 겸손을 갖추신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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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전날 밤부터 야간근무를 마친 아들놈이 퇴근을 해 집에 도착했는데
기분이 썩 안 좋다.
아들 아이는 공익근무를 하고 있는데 근무지는 서울4호선 전철역이다.
훈련소 기간까지 26개월의 복무기간이라 내년 1월 9일에 소집해제가
되지만 근무 시 개인적으로 신청 할 수 있는 연가 등을 행사하여
어제 아침이 마지막 근무가 된 것 같다.
소집해제 증명은 당연히 1월 9일에 수령을 하게 되는 것이고..
그런데 골이 난 이유는 마지막 날인데도 불구하고
별도의 행사(송별식 같은 것을 말함)가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이 아침에 출근한 역장 등에게 고별인사를 하는데도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가볍게 “그러냐?” 하는 정도로 응대한 것에
화가 좀 난 것 같다.
사실 잘은 모르지만 사회 경험이 없는 놈이
그래도 2년 넘게 애환이 깃든 장소를 떠난 다는 것이 시원섭섭하며
또 나름대로 아쉬움이 있었지 않았겠나..
그런데 그 감정이 상대에 의해 무시된 것에 대한 나름대로의
섭섭함이라고 생각했다.
뭐 그 쪽에서도 잘한 것은 아니나 살아 가면서 이 아이가 느껴야 할
하나의 명제이기도 하다.
사람이 살다 보면 참 섭섭한 경우가 많기도 하고
아쉬운 감정이 들 때도 많다.
이런 것을 거듭하면 “아!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형성되고
나중에는 당연히 그러려니 하는 마음이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솔직히 섭섭한 것은 분명히 있다.
사람이니까 그렇겠지
며칠 전 기사를 잠깐 보니 511일간이나 벌어졌던 이랜드 사태가
합의를 보았다고 한다.
비정규직 문제로 야기된 이 투쟁은 사회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장기간에 걸친 분쟁으로 민주노총이나 기타 사법기관에서 까지
개입한 좋지 않은 일이었다.
얼핏 피부로 느끼는 것은
“있는 사람들인 사측에서 좀 양보를 했어야 하지 않느냐?”
하는 마음도 들었고, 사주가 독실한 기독교신자라는데
“좀 심하구나!!”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뭐 자세한 내용은 파악할 수 없었고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비 정규직들이 이번에 복직이 되고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된다니 정말 다행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번 파업을 주도했던 12명의 노조간부에 대해
복직불허조건이란다.
당연히 긴 시간 동안 자신들을 괴롭혔고 복직을 시키는 경우
또 다시 노동운동을 할 거라는 짐작으로 사측이 조건을 건 것 같은데
이를 12명이 수용을 했다니 정말 살신성인의 마음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이 찡해온다.
이런 결과에 대해 복직하는 조합원들은 12명의 탈락이 가슴 아프고
"절반의 승리"라고 했지만 이제 직장에서 근무하면서 차차 그들이
잊혀지게 되어있다. 그게 인생이다.
자 그런데 회사측의 조건이 가소롭다.
왜냐면 그 유명한 "파레토의 법칙"에서 주장한 이론 중
“일하는 개미가 20%에 불과한데 그들을 제거하니까
다시 20%의 일개미가 생긴다는 거”다.
즉 회사에서 두려워하는 노동활등이 이들 12명을 제외했다고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시간적인 지연은 충분히 달성 되겠지만
글자 그대로 시간문제다.
그래서 차라리 이번 조치에 이 12명도 같이 허용했다면
‘좀 큰 회사다’ 라는 인식이 있었을 텐데 참 아쉽다.
다시 돌아가서..
이 남은 12명에 대한 조합원들의 인식은 재빠르게 사라지게 되어있다.
왜? 이제 그들은 자신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범위를 벗어난
"무능력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 새로운 능력자를 필요로 하고 그 능력자의 관심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잔인하지만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뭐 개인적인 이야기라 자세한 내용은 쑥스럽지만
감히 두려워 나서지 못하는 상황에서 선뜻 나서 공직을 걸고
일을 추진한 적이 있다.
그런데 결과는 그 쪽에서 내 의사를 못 들어 준다는 이야기다.
안 들어주면 사표를 내겠다고 서신을 보낸 상황이고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단 1명(내가 부재 시 직무대행을 해야 하니까)..
그를 불러 이야기를 했다
약속을 지켜야 할 사항이 생겼다고(사표를 내겠다고)
일을 원만하게 추진 못해 미안하다는 말도 하고..
그런데 기적이 생겼다.
발표 하루 전에 내 말대로 못 들어줘 미안하다는 통보를 받았는데
다음날 발표에는 무려 120%이상의 성과가 나온 거다.
장관 특별지시로 발표 전에 바꿨단다.
이런 결과에 대해 알고 있던 그 사람이 소문을 냈다.
이번 조치는 우리 과장님 덕이다. 목을 걸고 어쩌구.....
가정이 어렵고 힘들게 사는 사람 정규직 시키고
개인적인 애로사항을 들어주고 밥 사주고 술 사주고
징계를 받을 번한 친구를 쫓아가서 막아주고
다른 곳에 발령 나니 전화 한번 없다.
다 내 부덕의 탓이겠지..
더욱이 퇴직을 하면 아예 기대를 말아야 한다.
퇴직 초기 아니 이놈은 나한테 술 한잔 꼭 사야 할 놈인데 하던
사람이 한 3명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그들에 대해 무능력자이다.
그것을 깨우치는데 몇 년 걸렸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지만
자 여러분들도 타인에 대한 기대를 접어라.
여러분이 그들에게 존경을 받는 순간은 여러분들이 능력자일 때뿐이다.
만약 능력을 잃었다면 그들에 대한 바람도 접어야 한다.
이런 것들이 우리 아들이 배워야 하는 미션이다.
예전에 제가 신입사원 시절,
서울역 앞 대우센터 빌딩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옆 부서에 참 좋으신 과장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커피도, 복사도, 자기 책상 청소도 손수 하셨습니다.
그분을 본받아 나도 그렇게 했고
나중에는 직원들 책상까지 닦아주었지요. ㅎㅎ
그 과장님은 참 관대하기도 해서
잘못한 직원들에게 야단 대신 말씀으로 타이르고,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저녁에 술까지 사주면서 위안도 하시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누구도 다 좋아했지요.
그런데 그 부서 부장님이 급작스레 두 분의 과장님에게
과제를 주셨습니다.
당시는 전산 초창기라 PC가 뭔지도 모를 때고,
웬만한 건 타이피스트가 타이핑을 했습니다.
두 과장님들이 미스 김에게 타이핑을 부탁했습니다.
내일 몇 시까지 부탁한다고..
결과는 못된 과장님의 서류는 완벽하게 끝났는데,
사람 좋은 과장님의 서류는 시작도 안 했더라는.
그분 화난 모습, 아니 허탈해 하는 처음 보았습니다.
그 XX 같은 여직원의 마음 다 아시죠?
저도 가끔 이런 경우를 많이 당했습니다.
징계받을 걸 막고, 승급 누락된 걸 사정하고,
퇴출될 걸 제 잘못이라고.. 해서 무마하고..
그런데.. 사 선배님이 저 위에 기술하신 그대로였습니다..
그래도 지금의 저를 그리워하는 직원들이 몇 명 있고,
그때 ‘을’의 입장이었던 거래처 사장님들 몇 분은
이곳 청도까지 일부러 손님으로 오셔서 도와주시기도 하시니..
그래도 인생을 헛 살지는 않았구나.. 하는 위안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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