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징의 야경
베이징의 서민 아파트 계층간의 잦은 접촉으로 인한 부작용도 한국사회는 규모가 중국 교민사회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복잡하며 중산층이 폭넓게 자리잡고 있고 그 때문에 계층간의 교류가 활발하지 않다. 쉬운 예로 평범한 자영업자가 한국 사회에서 비교적 상류층에 속한다는 변호사나 의사, 교수 등과 어울리기 쉽지 않을 뿐더러 혹은 평범한 회사의 말단사원들이 대기업 임원급들을 사석에서 만나 편하게 웃고 떠들 기회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도시 위주로 편성된 중국 교민사회는 그 규모가 작고 단순할 뿐더러 계층간의 접촉이 잦고 빈번하다. 그저 외국이라는 이유로 한국에서는 만나기도 힘든 사람들과 함께 사석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쉽게 어울릴 수도 있다. 소위 '상류층'과 자주 어울리다 보니 "나도 상류층 인가?" 하는 착각에 빠져 무의식적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부정하게 되거나 혹은 그와 반대로 열등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계층간의 잦은 접촉은 열등감, 빈곤감 혹은 허영심을 동시에 양산하기 쉽다. 이런 중국 교민사회 현상은 가볍게 넘길 수 만은 없는 문제다. 이런 구조적 특성이 많은 이들, 특히 젊은이들의 사회 의식과 생활 방식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한번은 어떤 ‘주재원’ 젊은이를 보고 씁쓸해 한적이 있었다. 한국의 어떤 학술재단의 현지 시장조사 업무를 단기간 위탁 받아 현지 채용된 어떤 젊은이가 사석에서 늘 ‘주재원’이라고 자처하고 다닌다. 본사(학술재단)가 한국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현지에서 채용된 그의 주재원 자처는 "본사에 적을 두고 해외로 파견된' 의미의 주재원과 엄밀히 말하면 사전적 의미로도 다를 것이다. 더구나 현지 중국인들보다 조금 나은 수준의 급여를 받고 있는 그가 한국 수준의 급여와 복리를 제공받는 대기업 주재원으로 보이게끔, 듣는 이로 하여금 의도적으로 혼동을 일으키게 하는 그의 공허한 과시를 보면서 필자는 교민사회에서 ‘실질’ 보다는 타이틀만이라도 ‘상류계층’에 편입되고 싶어하는 많은 젊은이들의 허영과 욕망을 느꼈다. 실제로 그런 젊은이들은 우리 주위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한국 사회 그런식으로 행세한다면 주로 사기꾼으로 치부되겠지만 중국 교민사회에서는 평범한 젊은이들 조차도 비슷한 행태를 보이는 것이 이미 하나의 병리적 현상으로 자리매김을 할 정도이다. 도로 하나 사이로 아파트 월 임대료 가격이 무려 3-4배 차이나는 사회에 살면서 중국에 '성공하러 온' 많은 한국인들은 한국에서는 예기치도 못했던 빈부의 차에 부딪치면서 극심한 정서적 혼란을 느낀다. 중국에 사는 교민 대부분이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교민사회의 중산층이다. 중산층은 우리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다수이며 우리 교민사회 경제를 지탱할 수 있는 구매력을 일으키며 끊임없는 생명력을 준다.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민생활을 하면서 한국에서 쉽게 겪지 못했을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거나 혹은 상대적 허영을 느끼는 병리적 착각에 빠지는 일이 잦다면 간과하기 쉬운 교민사회의 구조적 특징을 한번쯤 있는 그대로 자세히 관찰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특히 갓 중국 교민사회의 진입한 젊은이들이라면 이 점을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