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한 마음/오 하느님

007년 10월 29일 연중 제30주간 월요일

주님의 착한 종 2007. 10. 29. 07:40

10 29일 연중 제30주간 월요일

 

제1독서 : 로마 8,12-17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는 과연 빛을 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육체의 빚을 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는 육체를 따라 살

의무는 없습니다. 육체를 따라 살면 여러분은 죽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힘으로 육체의 악한 행실을 죽이면 삽니다.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령을 인도를 따라 사는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이 받은 성령은 여러분을 다시 노예로 만들어서 공포에 몰아

넣으시는 분이 아니라 여러분을 하느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성령에 힘입어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

라고 부릅니다. 바로 그 성령께서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명해

주십니다. 또 우리의 마음 속에도 그러한 확신이 있습니다.

자녀가 되면 또한 상속자도 되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하느님의

상속자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을 받을 사람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고 있으니

영광도 그와 함께 받을 것이 아닙니까?

 

 

 

여인아, 너는 병에서 풀려났다.

 

복음 : 루카 1310-17

예수께서 안식일에 어떤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셨는데 마침 거기에

십팔 년 동안이나 병마에 사로잡혀 허리가 굽어져서 몸을 제대로 펴지

못하는 여자가 하나 있었다. 예수께서는 그 여자를 보시고 가까이 불러

"여인아, 네 병이 이미 너에게서 떨어졌다" 하시고 그 여자에게 손을

얹어 주셨다. 그러자 그 여자는 즉시 허리를 펴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그런데 회당장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 것을 보고 분개하여

모였던 사람들에게 "일할 날이 일주일에 엿새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엿새 동안에 와서 병을 고쳐 달라 하시오.

안식일에는 안 됩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 위선자들아, 너희 가운데 누가 안식일이라 하여 자기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물을 먹이지 않느냐?

이 여자도 아브라함의 자손인데 십팔 년 동안이나 사탄에게 매여 있었다.
그런데 안식일이라 하여 이 여자를 사탄의 사슬에서 풀어 주지 말아야

한단 말이냐?" 하셨다. 이 말씀에 예수를 반대하던 자들은 모두 망신을

당하였으나 군중은 예수께서 행하시는 온갖 훌륭한 일을 보고 모두

기뻐하였다.

 

 

<사랑이 내게로 다가온 날>

 

장영희 교수님의 영미시 산책 ‘생일’을 읽고 있습니다.

주옥같은 명시들에 대한 간략한 해설을 통해 사랑, 낙관, 희망, 축복,

감동과 같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해주고 있습니다.

 

오늘의 고통은 희망의 또 다른 얼굴이며, 때로 지루해 보이는 일상들이

사실 가장 큰 축복이며, 칠흑 같은 어둠도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는

위로의 메시지들로 가득합니다.

 

‘생일’에 대해 재해석하는 표현이 너무나 아름답고 의미심장합니다.

 

“사랑이 내게 온 날 나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내 마음은 세상의 모든 것들보다 행복합니다.

 

이제야 내 삶이 시작되었으니까요.

 

내게 사랑이 찾아왔으니까요.

 

육체적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생일도 중요하지만,

사랑에 눈떠 영혼이 다시 태어나는 날이야말로 진정한 생명을 부여 받는

생일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생일은 단 한번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랑이 내게로 온 그날, 그날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생일입니다.

제대로 된 사랑을 맛본 그날에야 비로소 참 삶이 시작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 중에 정녕 중대한 과제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 누군가와 제대로 된 사랑을 한번 해보는 일입니다.

참사랑의 맛을 보는 일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여인은 어떤 면에서 참사랑을 만난 행운의

여인이었습니다.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사랑을 찾아 헤매었지만

야속하게도 그녀를 찾아온 것은 거듭되는 불운과 고통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18년이란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제대로 된

사랑을 맛보게 된 것입니다.

 

“열 여덟 해 동안이나 병마에 시달리는 여자가 있었다.

그는 허리가 굽어 조금도 펼 수가 없었다.”는 표현을 통해

그 여인의 처절한 고통을 잘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한 두 해도 아니고 18년입니다.

아이를 낳아 대학교에 진학시키기 위해 소요되는 시간이 18년이지

않습니까? 그 세월은 정말 길고도 긴 세월이었습니다.

군대 생활 2년이나 3년도 그렇게 길었는데, 18년은 군대를 6이나 7

다녀올 수 있는 기간입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그녀는 똑 바로 한번 누워보지도 못했습니다.

길을 걸어갈 때 전방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땅만 보였습니다.

식사는 어떻게 했겠습니까?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시선을 어떻게 감당했겠습니까?

 

그녀가 살아왔던 18년 세월은 죽음이었지 삶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그녀에게 사랑이 다가갑니다.

축복이 다가갑니다.

그 사랑과 축복은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날 그녀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예수님을 맞아들인 그 날은 그녀의 또 다른 생일이 되었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