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도 밑천 … 서비스로 … 가격으로 … "꿈을 다시 찾았습니다" | |||
[중앙일보 정선구.이현상.심재우.김필규.임미진] 자영업자들의 한숨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던 지난 4계절. 어려움 속에서도 숨을 고르고 다시 일어선 자영업자들도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왜 실패했나'를 곰곰이 들여다 봤더니 성공의 실마리가 보였다"고 했다. 또 "욕심을 버리고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도 했다. '대박'을 터뜨린 건 아니지만 매달 안정적 수입이 유지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자영업자 세 명의 고난 극복기를 들어봤다.
특별한 서비스로 승부
# 1 서울 상도동의 미용실 '김원식 헤어리더'를 운영하는 김원식(46).최금숙(42)씨 부부는 곧 다가올 추석이 새롭다. '한국에서 지내는 마지막 차례'라고 생각했던 지난해 추석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부부가 함께 19년간 꾸려왔던 미용실은 2000년 들어서부터 주변에 생긴 저가 미용실 체인점 때문에 통 장사가 되지 않았다. 남자 커트 5000원, 파마 3만원…. 하루종일 일해도 남는 게 없었다. 가게를 숭실대 앞에서 상도동으로 옮겨봤으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종업원 월급 주기도 벅차게 되자 부부는 호주 이민을 결심했다.
지난해 간소한 차례상을 앞에 두고 부부는 목이 메었다. 그러나 이들의 이민 결심은 실행되지 못했다. "호주에 답사까지 갔다 왔는데 막판에 고교생이던 큰아들이 안 가겠다고 버티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그래, 여기서 더 잃을 것도 없는데…'하는 생각이 퍼뜩 들더군요." 우선 가게를 절반(10평)으로 줄여 다시 열었다. 지금까지 일해 본 가게 중 가장 작았다. 종업원도 두지 않았다. 전략도 지금까지와는 반대로 갔다.
가게는 작았지만 출혈경쟁을 피했다. 대신 고급 파마약과 모발보호제 등을 거울 옆에 진열해 놓고 비싼 제품은 뭐가 좋은지, 왜 비싼지를 손님에게 설명했다. 차별화를 위해 컴퓨터를 이용한 탈모관리 서비스도 시작했다. 피부관리실 근무경력이 있는 부인 최씨는 탈모 관리 기술을 배웠다. 골목 미장원에서는 보기 힘든 서비스에 단골이 늘었다. 최씨는"여전히 힘들지만 두 아들 학원비는 걱정 없을 정도가 됐다"고 했다.
공부하는 사람이 성공
# 2 경기도 안산시 고잔동에서 복집을 운영하는 이준호(46)씨는 '학구파 자영업자'다. 대기업 연구원으로 12년간 일했던 경험 때문에 사업도 늘 연구한다. 이씨는 외환위기 때 직장을 잃고는 그동안 모은 돈 4000만원을 털어 안산에 작은 횟집을 냈다. 이때부터 자영업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음식업을 하던 친지로부터 회 뜨는 법을 배웠지만 서투른 '칼 솜씨'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 저녁엔 횟집을 하면서도 낮에는 서울 유명 일식집의 주방 보조로 일하며 요리를 배웠다.
2001년 경기도 시흥 시화공단 앞에 일식집을 냈을 때는 당당히 주방장까지 겸할 수 있었다. 처음에 순탄하던 일식집은 불경기로 공단 입주 회사들이 차례로 문을 닫는 바람에 어려움에 빠졌다. 손님이 없어 한가한 날이 이어지자 그는 다시 혼자서 복어 조리 공부를 했다. '언젠가 쓸모가 있겠지'하는 생각에 따놓은 복어조리사 자격증은 요긴한 무기가 됐다.
지난해 여름 공단 앞 가게를 포기하고 시내로 옮겨 복집을 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비싸서 쉽게 접할 수 없는 복요리 가격을 낮춘 것이 주효했다. '팔천복집'이라는 가게 상호처럼 1인분에 8000원으로 가격을 낮춰 가족 손님들을 끌어들였다. 복어는 가정에서 쉽게 먹을 수 없는 메뉴라 외식 수요가 꾸준한 아이템이다. 그의 연구는 메뉴 다양화로 이어졌다. 생참복 등 고급 재료를 쓴 고가 메뉴를 추가하고, 복어와 삼겹살을 볶은 복삼불고기를 개발했다.
그는"가게가 잘되든 못되든 공부하면서 변화를 줘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시행착오 소중한 경험
# 3 10년 전 자신이 다니던 중소기업이 쓰러지면서 자영업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강명구(45)씨의 꿈은 컸다. 인기있는 외식 아이템을 개발해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도와 실패가 꼬리를 물고 반복됐다. 파스타 전문점, 태국요리 식당, 닭갈비 집, 프라이드 치킨집을 차례로 열었지만 1년 남짓 만에 번번이 고배를 들었다. 경험 부족(입지 선정 잘못)에 조류독감 파동 등 운까지 나빴다. 강씨는 실패의 원인을 꼼꼼히 기록했다. 10년간 시행착오만 하자 가족의 생계를 위해 부인은 학습지 교사로 나섰다. "제발 음식점을 그만 접고 직장을 알아보라"고 온 가족이 애원하기도 했다.
강씨는 지난해 5월 남아 있는 창업자금 3000만원을 탈탈 털어 두 달간 준비 끝에 경기도 분당에 서양식 돼지등갈비 구이를 파는 맥줏집('비비큐 폭립과 시원한 맥주')을 열었다. 그의 다섯 번째 가게였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차렸다. 그동안의 실패 경험이 힘이 된 덕일까. 사업을 하면서 쌓은 인맥을 통해 등갈비 재료를 유리한 조건으로 공급받을 수 있었다. 인기있는 가족 레스토랑을 돌아다니며 소스를 개발한 것도 경험이 없으면 안 될 일이었다.
지금 하루 70만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며 순항하고 있다. "아직 부족하지만, 이나마 성공했으니 감사할 뿐"이라는 강씨. 강씨는 그러나 그의 성공이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식'은 아니라고 말한다. 외식업이란 한 우물을 파며 쌓은 노하우와 인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믿는다. 그는 "시행착오의 경험을 잘 살리면 결국 성공의 밑거름이 되더라"며 웃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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