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 22일 (토) 04:25 중앙일보 80세 소록도 할아버지 … 아주 특별한 추석
박세주(80) 할아버지는 소록도에 삽니다.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리. 육지에서 500m, 배로 5분 거리지만 뭍사람들에게는 독도보다 먼 섬이지요.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산다고 뭍사람들이 꺼리기 때문입니다. 병균보다 떨치기 어려운 게 편견인가 봅니다. 할아버지는 스물일곱에 섬으로 들어왔습니다. 병에 걸린 사실을 가족에게 숨기고 몰래 집을 떠났습니다. 큰아들을 찾아 헤매던 어머니가 7년 만에 섬으로 찾아왔습니다. 손발이 뭉개진 아들을 보며 철조망 너머의 어머니는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아들이 그리워 마을에 숨어들어 와 2년 반 동안 머물던 어머니는 중풍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섬에서는 화장이 원칙이었습니다. 병원균이 섬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환자가 아닌 어머니를 그리할 수는 없었습니다. 어머니를 들쳐 업고 밤배를 몰았습니다. 어머니를 섬 밖에 모시는 일이 '나쁜 병'에 걸려 불효만 한 아들의 마지막 효도라고 여겼습니다. 섬에 사는 한센인은 645명입니다. 평균 73세입니다. 짧게는 30년, 길게는 60여 년을 여기서 보낸 이들입니다. 완치됐거나 증세가 심하지 않은 이들은 마을에 살고, 간호가 필요한 100여 명은 국립 소록도 병원에 있습니다. 대부분의 주민이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명절이 돼도 가족을 만나러 섬을 나가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여기서 두 번 결혼했지만 할아버지는 자식이 없습니다. 병원에서 아이를 낳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입니다(이 정책은 1980년대까지 계속됐습니다). 마을에 사는 할아버지는 요즘 하루 세 번씩 병원에 갑니다. 15년 전에 만나 서로 의지하며 사는 김옥순(83) 할머니를 돌보기 위해서입니다. 2년째 입원해 있는 아내의 병세가 점점 깊어가 걱정입니다. 2월 병원장이 퇴직한 뒤로 더 그렇습니다. 아직 후임을 찾지 못했습니다. 모두들 실력 있는 의사 선생님이 빨리 오기를 기다립니다. 아내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지만 추석을 기다리며 설렙니다. 육지와 섬을 잇는 다리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공사 중이지만 추석 연휴 며칠간 걸어 건널 수 있게 해 준답니다. 새 다리를 건너 보성(고흥 위쪽)에 모신 어머니 산소에 갈 생각입니다. 달리 찾아갈 데도 없습니다. 신산스럽던 지난날이 스쳐갑니다. 편견에 서럽던 기억들이 흘러갑니다. 몇 개 남지 않은 발가락으로 걸어 건너기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죽기 전에 어머니를 뵐 수 있어 여간 고맙지 않습니다. 운동화를 꺼냅니다. 살며시 안아 봅니다. 53년 전 배 타고 들어온 길, 내일은 걸어서 나갑니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 소록도 글=이영희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소록대교=전남 고흥군 도양읍 녹동항에서 소록도를 잇는 길이 1160m의 현수교다. 2001년 6월 착공, 현재 공정률은 92%다. 12개의 교각 중앙에 87.5m 높이의 다이아몬드 모양 주탑 2개를 세워 케이블로 연결했다. 난간 등 안전시설과 연결 도로공사를 마무리한 뒤 내년 6월 정식 개통한다. ◆한센병=균의 감염 경로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대개 호흡기로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면역력이 적은 극히 일부 사람에게만 발병한다. 환자의 경우에도 약을 먹으면 하루 만에 전염력이 없어진다. 올 5월 기준으로 국내 활동성 한센병 환자는 388명이며 지난해 발병한 환자는 56명이다. ▶기자 블로그 http://blog.joins.com/center/journalist.as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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