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안식/소록도의 별

[* 슬픔 *] 소록도의 별 < 제 1 부 >

주님의 착한 종 2007. 9. 5. 07:38

 

 소록도의 별 < 제 1 부 >

 

어릴 때 만화 속에서 아주 슬픈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장편으로 연재 되었던 소설이었지요.

그때 소록도가 어떤 곳인지 알고 있었는데

한번은 꼭 가보고 싶던 곳이었답니다.

그리고 보리피리의 시인 한하운씨의 일대기를 그린

가도 가도 황토 길에서 나환우들의 서럽고 질긴 인생여정을 보며

너무나 가슴이 아파 많이 울었었지요


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에 직장이 되었는데

황토 길에서 부산 용호동에 상애원이라는 나환우

국립병원이 있던 것을 기억하고 찾아 보았읍니다.

우리병원에 근무하는 보건간호원에게 물었더니

"아니 왜?"

"거기 한번 가보고 싶어서요."

그러면…

하고 길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하도 오래전 일이라 지금 그때의 상황을 이야기 하면

믿을 사람도 없지 않을까 싶네요.

그곳이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서서 확 바뀌었거든요.


부산 대연동에서 용호동으로 들어가는 길은

황토 길에 1차선 도로였고 길 양옆으로는 허허벌판에

일명 문촌이라 부르면서 사람들이 접근을 꺼려하는 곳이었읍니다.

나는 그 눈물의 황토 길을 혼자 걸으며

한하운씨가 이 길을 걸을 때

비온 뒤 질퍽거리는 황토에 이리저리 미끌릴 때

힘주어 몸을 가누다 발가락이 하나 뚝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며

스며 올라오는 눈물 속에 허탈해 하던 마음을 생각하였읍니다.

" 또 이렇게 하나가 떨어져 나가는구나! "하면서 떨어진 발가락을

숲속 멀리 멀리로 던져 버리면서 말입니다.


육신이 일그러지고 썩어

몸뚱이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이 처음이 아니였고,

그냥 세월 속에 떠밀리어 구름처럼 떠다니는 신세가 되다보니

허기진 배를 채우고

비바람 막아주는 잠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녹아내리는 육신을 이끌고 그곳을 찾아가던 그분

아무도 반겨 줄이 없고 기다려주는 사람도 없는데

스산한 바람결에 갈대나마 손짓하듯 소리 없이 흔들리던 이 길을

그는 혼자서 슬프게  슬프게 시를 쓰며 걸었었지요.


한 시간쯤 황토 길을 걸어서 들어가면

오른쪽은 천주교 묘지동산이 있고

왼쪽으로 들어가면 국립용호병원 상애원이라는 간판이 보였습니다.

황토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는 숲으로 우거진 자연 터널을 걷게 되는데

산딸기가 빨갛게 물들어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안에 있는 환우들은 맘대로 나올 수가 없고

외부에서는 걸어서 들어가는 사람이 별로 없었으니까

아주 음산하고 기분이 묘했답니다.


병원 안으로 들어가서 예배당을 찾아갔더니

함께 근무하는 보건간호원이 허름한 한복을 입고(마당쇠 엄마의 모습)

부엌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환우들이 그 여인을 보고 사모님이라고 불렀는데

그 교회 목사 사모였답니다.

우리 직원들이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었습니다.


상애원은

일제 때 지어진 건물인데 옛날 초등학교건물처럼 흙벽에 판자를 아래서부터

위로 포개서 이어 붙혀 놓은 건물 안에 국방색 누비이불을 하나씩 덥고

가운데 통로를 비워둔 채 양옆으로 쭉 누워 있더군요.

거기서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룬 사람들은 하꼬방을 하나씩 어게붙혀서

살림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양계를 하면서 말입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성가대원들은 시커먼 안경들을 하나씩 덮어쓰고

검정색 성가대 가운을 하나씩 입었는데

저의 시야에 비춰진 그 상황은

오늘 나를 장사 지내고 하느님 당신께로 희망을 가지고 귀의 합니다.

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이 부르는 찬송가는 애원의 비가였고

간절한 소망이 연기처럼 하늘로 오르는 듯 느껴졌으니까요.


마을 앞에 펼쳐진 전경은 오륙도가 한눈에 보이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자갈밭에 인적은 없고

어린아이가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가까이 가서보니

아이는 감아였읍니다. 부모로부터 전염을 받은 모양입니다.

대를 이어 병마를 지고 살아야 하는 이 현실을

누구에게 원망인들 할 수가 있겠는지요?


자식을 떼어내기가 아퍼서 품에 끼고 살다가

아이의 인생을 이렇게 어둠속으로 몰아 넣었으니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입니까?

상애원을 그렇게 접한 뒤 언젠가는 보리피리의 여운을 따라

소록도엘 꼭 한번 가 봤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엔 소록도가 봉쇄구역이어서 직원이 아니면 들어갈 수가

없었답니다.

군정이 끝나고 어느 대통령이

일년에 한번 5월에 가족을 만날 수 있는 면회일이 정해졌다고 합니다.


우연히

소록도병원에 근무하는 형제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해서 소록도행 소망이 이루어졌습니다.

녹동에서 배를 타고 5분정도 건너는데 빤히 시야에 보이는 섬

통한의 서러움을 끌어안고 지금도 아파하는 소록도!

그곳에 발을 디디게 되었답니다.

 

< 제2부에 계속 >

 

출처 : 가톨릭인터넷  - 아그마(요안나)

 

고향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