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공이 아는 눈짓이라도 하더이까 ♣
혜능의 제자 혜충이 당 황제의 초청을 받아 장안에 왔다.
혜충을 초청한 황제는 그를 대하자마자 질문 공세를 펼칠 기세였다.
황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혜충의 지혜를 시험해보기 위해
안달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혜충은 황제를 보고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에 화가 난 황제가 혜충에게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짐은 대왕국의 황제요!"
그러자 혜충은 눈을 꿈벅이며 대수롭지 않은 듯 대꾸했다.
"압니다."
'안다고? 알고도 나를 모른 척 하다니, 이런 괘씸한 놈이 있나.'
황제는 붉게 상기된 얼굴로 따져 물었다.
"그런데 대사는 나를 알고도 모른 척했단 말이오?"
황제의 분개에 아랑곳하지 않고 혜충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되물었다.
"황제께서는 저 허공이 보이십니까?"
이 무슨 동문서답?
"그렇소."
황제가 무뚝뚝하게 대답하자 혜충이 다시 물었다.
"허공이 단 한 번이라도 황제께 아는 척한 적이 있습니까?"
"‥‥."
황제는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았다.
그후 오히려 혜충에게 융숭한 대접을 하고 국사로 예우했다.
무엇이 황제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허공이 눈짓이라도 하더이까?'
혜충의 가르침이다.
이 한마디에 황제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그를 시험하려 한 것을 후회하고 스승으로 섬겼다.
속세를 떠난 자에게 황제가 다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
구도자에게 황제가 따로 있고 천민이 따로 있겠냐는 것.
당 황제는 그의 자유스러움에 기가 눌렸던 것이다.
아무것에도 거리낌이 없는 행동, 곧 철저한 무애정신.
황제는 그것을 본 것이다.
허공!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
그 앞에서 황제는 한껏 초라해지고 있었다.
-출처 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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