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꿇는 아버지
IMF 시절 가을 어느 날.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만 택시를 탔습니다.
윈도우 너머로 팔짱을 끼고 걷는 연인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아이들,
재잘대고 웃으며 지나가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
엄마의 손을 꼭 잡고 뒤뚱뒤뚱 걷는 작은아이.
그런 것들이 윈도우란 작은 스크린을 통해 지나쳐 갔습니다.
모든 것들이 행복해 보입니다...
끼익~!
머리가 허옇게 센 기사 아저씨가 급브레이크를 밟았습니다.
그러고 차를 인도 쪽으로 대자 의경 한 명이 택시로 다가왔습니다.
경찰 : "면허증 좀 보여주시죠..."
기사 아저씨가 무얼 잘못한 모양입니다.
기사 아저씨가 차에서 내리더니 경찰에게 조릅니다.
기사 : "한번만 봐주게......IMF라 벌이도 시원찮아..."
경찰 : "안됩니다..면허증 보여주십쇼..."
기사 아저씨는 봐달라는 말을 경찰의 팔을 잡으며 하고
완고한 의경은 안 된다는 말만을 되풀이하고...
기사 아저씨가 경찰에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기사 : "한 번만 봐주게.... 정말.. 벌이가 시원찮아......봐주게.."
놀란 의경도 무릎을 꿇고 기사 아저씨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경찰 : "아저씨.. 이러시면 어떻게 합니까...? 일어나요....."
기사 : "한번만 봐주게.. 다신 안 그럼세......미안허이..."
경찰 : "그렇다고 그러시면 어떻게 합니까?
저도 당신 같은 아버지가 있습니다.
아들 뻘 되는 사람에게 이러시면 어떻게 합니까?
죄송합니다. 그냥 가세요.“
기사 : "고맙네.. 고마워........"
택시는 출발했습니다. 윈도우 너머로 보이는 세상이 끔찍했습니다.
팔짱을 끼고 걷는 연인들의 아버지도 어디선가 가족들을 위해 무릎을 꿇을 것이고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의 아버지도 어디선가 가족들을 위해 무릎을 꿇을 것이고
웃으며 재잘대는 아이들의 아버지도 어디선가 가족들을 위해 무릎 꿇을 것이고
엄마의 손을 잡고 뛰뚱 뒤뚱 걷는 아이의 아버지도 어디선가 그 아이와 그의
아내를 위해 무릎을 꿇고 있을 것입니다.
고개 숙인 우리의 아버지들은 내일도 모레도 어디선가
오늘처럼 무릎을 꿇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릎꿇는 아버지의 모습을 아내와 아이들이 절대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몇년 전인가 신문에 "대통령직 못해 먹겠다"는 기사를 읽고 두 가지 생각이 교차되었습니다.
어찌 한 나라의 어른이 이렇게까지 경솔하게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와 함께,
오죽 답답하고 힘에 겨웠으면 그렇게까지 말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었습니다.
지금은 웬만한 건물에 현수막은 한 두개씩 다 걸려있고
모였다하면 파업이고 투쟁입니다.
머리에 띠만 두르고 손들면 비켜주고
누구든지 목소리만 크게 하면 안 되는 것이 없는
이상한 마법의 나라가 되 가고 있습니다.
이제 이 나라에는 더 이상 법(法)도 어른도 스승도 아버지도 없습니다.
절대적인 권위 대신 자식들의 힘만 있는 젊은이들의 세대가 되었습니다.
굉장히 합리적이고 민주적이고 시대의 어쩔 수 없는 물결 같지만
그러나 그렇게 살아본 결과가 무엇인가를 지금 우리는 두 눈 똑똑히 보고 있습니다.
뿌리도 없고 위아래 질서도 없는 어른이 없는 세상이 되어 버린 탓입니다.
우리 나라가 최근 이렇게 국가적으로 어려워하는 것도
어쩌면 아버지 부재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몇 년 전에 「고개 숙인 아버지」라는 이야기가 장안의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동정 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원래 모습이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왜 '아버지'라고 부릅니까?
그것은 아버지는 삶의 원천이요 지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변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생각도 달라져가고 있습니다.
과거에 아버지란 권력과 지배의 상징이었습니다.
그 당시 아버지에 대한 절대적 영향은 가부장제도와 군사부일체라는 말속에
다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보화시대가 되면서 여성주의라는 거대한 바람 앞에서
아버지는 점점 더 무력해질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소외되거나 실종되는 일까지 빈번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어찌할 도리가 없는 오늘의 아버지는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무력감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배고프고 어려운 시절에 이 땅에 태어나 주린 배를 움켜쥐고
오직 처자식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이 시대의 아버지들...
새벽 별을 보고 출근해서 밤별을 보고 퇴근하는 것은 당연했고
철야에 휴일 근무도 서슴지 않고 땀흘리며 윤택한 기반을 마련하는 동안
가정은 엄마의 것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오직 엄마의 뜻만을 압니다.
경제권이 없는 아버지,
매일 같이 피로에 젖은 아버지의 쇠락한 모습은
아이들에게 따분한 존재일 뿐입니다.
아이들이 밖에서 집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아버지가 받으면. 다짜고짜 하는 말이, "엄마 바꿔주세요." 랍니다.
아이들은 매사를 엄마와만 의논합니다.
어쩌다가 아버지가 아이들을 야단이라도 칠 양이면
아내가 먼저 아이들을 두둔하고 나섭니다.
감히 내 아이에게 야단을 치다니...
아버지가 잘못 했다는 것입니다.
최소한 아버지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것입니다.
일주일 내내 혹사를 당하고 맞는 휴일에도 쉴 수 없이
남편과 아버지 몫으로 남겨진 집안 일을 하거나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 봉사를 해야만 합니다.
아버지는 머슴이요 종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이전에 아버지는 '아버지'라는 그 자리만 갖고도 가장(家長)으로 존경받고 살았는데,
지금은 철저히 경제적인 능력과 비례하여 위상과 역할이 결정되기 때문에
아버지는 더욱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엔 아버지가 출퇴근할 때도 아내나 자녀들도 인사도 안하고
그저 자신들의 일만 합니다.
이미 모든 초점이 오직 자식에게 향하는 자식상위문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비극은 바로 이렇게 아버지를 잃어버리고 스승을 잃어버린 것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말하면 억지라고 말할까요?
주님, 이 시대 자녀들이 아버지를 찾게 하소서.
성공한 아버지가 아니라 제사장으로서의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아버지를 찾게 하소서.
그래야 우리 가정이 바로 서고 이 나라가 바로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여, 이 종도 집에서나 교회에서나 진정한 스승이요 아버지가 되게 하소서.
(세상의 아버지 여러분, 용기를 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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