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한 마음/오 하느님

성당에서 쫓겨난 하느님

주님의 착한 종 2006. 9. 13. 14:08

이야기 하나, <성당에서 쫓겨난 간디>

 

   마하트마 간디의 자서전에 따르면, 남아프리카 학창시절에 그는 성경 특히 산상설교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교 정신이야말로 수세기에 걸쳐 인도를 괴롭혀 온 카스트 제도에 대한 답이라고

   확신하고서 그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을 진지하게 생각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미사에 참석해 설교를 들으려고 어떤 성당에 갔다가 입구에서 제지

당했습니다.

문지기는 그에게, 미사에 참석하고 싶으면 흑인들을 위해 따로 마련된 성당이 있으니

그리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점잖게 말해 주었다.

그는 떠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무척 좋아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그 정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중 상당수가 예수님을 닮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야기 둘, <성당에 못 들어가시는 하느님>

 

어느 죄인이 파문을 당해 성당출입이 엄금되었습니다.

그는 하느님께 신세타령을 했습니다.
  

"저들이 저를 못 들어가게 합니다. 주님, 죄인이라서요."  

"뭘 그런걸 가지고 투덜대느냐?"

하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저들은 나도 못 들어가게 하려 하는데!"

 

  우리는 그리스도를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모범과 가르침에 따라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다?  말 안 해도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요즈음 시대는 지극히 당연한 말을 하면 바보 취급을 당하는 시대인가 봅니다.

 

  웃기는 소리 좀 하고, 희귀한 소리 좀 하면,

 "야 그 사람 말 잘한다." 하면서도 지극히 옳은 소리라도 할라치면

 "이미 다 알고 있는 소리다" 하면서 웃어넘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는 더 이상 가르치지 않아도

 이미 다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정치가는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정치이며,

 부모와 자식간에는 어찌해야 하는지, 이웃과는 어떠한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모두가 불을 보듯이 환하게 알고 있습니다.

 다만, 이것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어려운 일입니다.  

 

 예수님은 누구 하나 차별대우 받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분명 보잘 것없는 사람들, 힘없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소외 받는 사람들이

 대접 받는 사랑의 공동체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재력과 명성이 뒷받침되는 튼튼한 공동체를 만들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루어진 다음에 소외 받는 이들을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될까요?

 그 때문에 우리는 지극히 당연한 것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