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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3월17일)

주님의 착한 종 2022. 3. 17.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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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3월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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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수도 기이우(키에프)의

주교좌 성당에 모셔져 있던 성체를

작은 자동차에 모시고 피난을 떠납니다.

 

포격이 계속되는 상황인데도

길거리로 나온 시민들이 무릎을 꿇고

눈물로 경배를 하고 있습니다.

언제 돌아오실지…

 

우크라이나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모금에도 참여해 주시고.

 

 

 오늘 복음은 루카 16,19-31 입니다.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로 잘 알려진 이야기이지요.

 

비유의 핵심은 어디에 있을까요?

우선, 이 세상 것이 그대로 저 세상 것이

되는 건 아니라는 데 있겠습니다.

이 세상의 부자가 저 세상에서도

부자는 아니라는 말이지요.

 

저는 죽음을 자주 접하는 사람 중의 하나지만

재산을 싸 들고 관에 들어가는 사람 못 봤습니다.

죽을 때까지 손에 끼고 있던 반지도

누가 다 빼버렸던 걸요.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부자였던 그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마찬가지로 저 세상의 라자로는

이 세상의 거지 라자로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에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부자가 어떤 큰 잘못을 저질러

벌을 받는 곳에 간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그런 기록이 없습니다.

 

단지 자신의 재산으로

화려하고 값진 옷을 입고 다니며

날마다 즐겁고 호화로운 삶을 살았을 뿐입니다.

라자로가 대문 앞에서 음식을

주워 먹으려 했음을 알았지만

못살게 학대한 사실도 없습니다.

 

라자로 역시 선행을 많이 했기에

천국에 간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그러한 기록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두 사람의 삶이

극명하게 달랐습니다만

저 세상에서는 정확하게 역전되어 있네요.

이 완벽한 대비를 보여 주려는 것이

오늘 복음의 가르침인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부자는

불행한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더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은

바로 이 부자의 모습을 통하여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이 아닐까요?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회개하고 새로운 삶으로 나갈

가능성을 지니고 있음에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모습에서 이 부자의

탐욕스러운 모습을 전혀 볼 수 없는 사람은

오늘의 복음 말씀이 그저 남의 이야기로만

여겨질 것이 틀림 없을 것이므로

삶의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정말 이 부자와 같은 사람이 아닐까요?

 

 

이 부자가 잘못한 일이 있다면,

재산을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만 사용한 것과,

집 앞에 있는 불쌍한 라자로에게

전혀 관심을 쏟지 않은 것이지요.


그렇군요. 죄를 구체적으로 범하는 것보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은 사랑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게으름과 무관심일 것입니다.

 

지금 자신의 모습 속에서

이 부자의 탐욕과 이기심과

이웃에 대한 무관심을 찾아볼 수 있는 사람만이

하느님 앞에서 후회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에서 좋은 것을 많이 받은 사람은

더 많이 감사하고 나누어야 하겠습니다.

남모르게 나누는 꾸준한 연습을 해야만 합니다.

오늘 복음의 또 다른 가르침입니다.

 

나눔은 내 마음에 주님의 평화를 가져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