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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1월21일)

주님의 착한 종 2022. 1. 21. 06:39

오늘의 묵상(2022년01월21일)

 

 

오늘은 동정 순교자

아네스 성녀의 축일입니다.

먼저 아네스 세례명을 가진 모든 자매님들께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성녀 아녜스는 로마의 순교자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성인 중 한 분입니다.

로마의 어느 부유한 가정 출신으로

뛰어난 미모를 지녔던 그녀는

평소 늘 순결한 생활을 희구하며

하느님께 동정을 바칠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그녀가 소녀 티를 벗자마자 많은 젊은이가

그녀에게 관심을 표명했는데.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일어나자

성녀는 집을 떠나 순교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녀는 어느 청혼자의 고발로 신자임이 드러나

총독 앞으로 끌려갔는데 총독에게 정면으로 맞서자

격노한 총독은 그녀를 로마의 한 매음굴로 보냈지만

성녀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자신의 정결을

지킬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후 성녀는 참수형을 받아 순교를 했습니다.


성녀 아네스는 순결과 순수함을 추구하는

동정녀(소녀)의 수호성인이 되었고,

예술가들은 그녀의 순결과 순교를 표현하기 위해

'어린 양'(Agnus 아뉴스; Agnes 아네스)과 함께

종려 나뭇가지를 든 모습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성녀 아녜스는 고대부터 로마 미사경본

감사기도 제1양식(로마 전문)에서 기억하는

7명의 성녀 중 한 명으로 공경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오늘 묵상은 마르코 3,13-19입니다.

 

때때로 저는 한국인이란 사실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은 나라, 게다가 반 토막 난 나라.

식민지, 동족상쟁의 전쟁,

기아에 허덕이는 가난하고 절망적인 나라.

이런 나라였던 이 나라가

세계 10대 교역국이 되었으며

첨단 반도체를 비롯한 IT 산업의 종주국이고

최고의 가전제품, 자동차를 생산하고

자유 민주주의를 향유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 동안 훌륭한 지도자들이 주연 배우로

이 나라를 이끌어 왔다면

묵묵히 열심히 일한 우리의 부모님 세대들과

또한 우리 세대들은 조연의 임무를 다하여.

이 찬란한 결과를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기생충, 미나리, 오징어 게임으로

세계 영화계의 찬탄도 받고 있는데

이 영화들을 빛낸 사람들은 주연 배우가 아니라

오히려 조연의 역할이 크게 작용했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물론 주연이 빛을 보고 영광을 차지하고

조연은 빛에 가려지어 기억 저편에 서기 일쑤이지만

조연의 도움 없이 완성되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섭섭해 하지 맙시다.

내가 주연이어야 하는데

겨우 조연으로 살고 있다고 불평하지 맙시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열두 사도 역시

모두 조연들입니다.

예수님을 돕기 위해 선택된 분들이지요.

물론 그분들도 언젠가는 주연이 될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그들의 영적 능력을

강화시켜 주시고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까지 주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자신들의 능력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주신 능력이지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진실입니다.

열두 제자들은 본분을 기억하고 살았기에

사도가 되었고, 초대 교회의 지도자들이 되었습니다.

 

우리 주위엔 조연인데 주연인 듯 행동하고,

주연인데 조연처럼 처신하는 이들이

늘어 가고 있습니다.

불만과 착각을 깨지 못한 결과가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는 열두 사도들을 뽑으셨습니다.

열두 사도를 뽑으신 이유는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의 옛 열두 지파를

신약의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으로 모으시려는

의지를 드러내시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하느님과 맞서 세상의 온갖 죄악과 유혹의

근원이 되는 마귀를 쫓아내는 권한이

조연인 사도들에게 그런 이유로 주어졌습니다.

 

 

현실의 질병과 고통에 맞서야 하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소명을 묵상합시다.

 

병자들을 돌보고 치유하는

많은 의료 시설과 제도가 있음에도

우리 주변에서는 여전히 병원에서 치료도

제대로 받아 보지 못하고

죽어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에 대한 연민은 단순히 마음으로

함께 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고통 받는 이들의

현실을 외면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애절한 손을 붙잡고 참된 치유로

이끌어 주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자기 교회만을 챙기는

이기적 관심에서 벗어나 서로를 형제자매로 여기며

고통 받는 이들에게 참된 치유와 위로를 선사하는

치유 공동체로 성장할 때,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일치가 시작되지 않겠습니까?

“하느님, 질병과 고통 속에서

주님께 부르짖는 이들의 소리를 들어주소서.

건강한 이들이 그들의 행복에 감사드리며,

사랑하는 마음과 펼친 손으로

병자들을 돌보게 하소서.

하느님, 저희가 모두

하느님의 은총과 섭리 안에서 살아가게 하시며,

저희가 참으로 치유 공동체가 되어

다 함께 하느님을 찬미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