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2021년09월15일)
聖 김 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
당신이 천주교인이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
오늘 말씀을 묵상하기에 앞서
잠시 함께 알아볼 것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한자 교육이 사라진 후
요즈음 젊은이들이 단어나 숙어를
전혀 모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가 성모님의 통고인데
痛苦 라는 한자를 모르면
뜻을 알려고 사전을 찾기 마련인데
사전에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범칙금을 납부하라고 서면으로 알려주는
것과 같은 행위들 말한다’ 라고 써있습니다.
성모님의 고통은
예수님 때문에 받았던
슬픔과 고통을 말합니다.
성모 통고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성모 통고에 대한 신심은
마리아가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러 갔을 때
예언자 시메온이
'날카로운 칼에 찔리듯
성모님의 마음이 괴로움을 받게 되리라'는
예언에 근거하며
또한 성모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
서 있었다는 사실에 근거합니다.
오늘 우리가 묵상할 단어 통고는
‘슬픔과 고통’을 말하는 것이라 알려주십시오.
고통의 성모 마리아 또는 통고의 성모,
슬픔에 잠긴 성모, 칠고의 성모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호칭들 중 하나로,
성모님이 일생 중에 슬프거나 고통스러웠던
일들과 관련이 있는 호칭입니다.
가톨릭교회의 성모 예술에서 다루는
주제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지요.
특히 성모 칠고는 가톨릭교회의 대중적인 신심입니다.
일반적으로 가톨릭 미술계에서는
고통의 성모를 묘사할 때,
마리아의 심장에 일곱 자루의 단검이
박혀 있어 피를 흘리는 가운데,
얼굴은 비탄에 빠져 눈물을 흘리는 모습으로
그려지곤 합니다.
(위의 사진을 보세요)
이와 관련하여 랍비 시메온의 예언을 근거로 하여,
마리아의 일곱 가지 슬픔 또는 고통을
묵상하는 기도가 발전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기도로는 성모 칠고 묵주 기도가 있고요.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은 전례력으로
매년 오늘인 9월 15일에 거행되고 있습니다.
성모 칠고의 각 사건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시메온이 아기 예수를 보면서
훗날 마리아가 예리한 칼에 찔리듯
마음이 아플 것이라고 예언한 일
2. 헤로데의 눈을 피해 온갖 고생을 하며
이집트로 피난 간 일
3. 파스카 축제를 지내러 예루살렘에 갔다가
소년 예수를 잃어버린 일
4. 십자가 지고 가는 예수를 만난 고통
5. 예수가 십자가상에서 숨을 거둔 것을 본 고통
6. 예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린 고통
7. 아들 예수를 무덤에 묻은 고통
이것들을 이해한 후
묵상에 임하면 좋겠습니다.
제1독서는 히브리서 5,7-9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고통스러운 기도를 바치셨습니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겟세마니에서의 기도입니다.
그만큼 고뇌에 차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분의 순종입니다.
“순종을 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다.”라고
독서는 알려줍니다..
복음은 요한 19,25-27입니다.
성모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통 속에서도
어머니를 위로하십니다.
제자에게 부탁하신 것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이로서 성모님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가 되십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오늘 복음의 내용입니다.
‘남편이 죽으면 산에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
자식을 먼저 보내는 것은
차마 못할 일이라 했습니다.
그러기에 자녀의 죽음은 불효로 여겨져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모르실 리 없습니다.
그러기에 제자에게 어머니를 부탁하십니다.
인간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시는 모습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가로막았던 또 하나의 유혹은
이렇듯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이 아니었을까요?.
성모님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어떤 표정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셨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하지만 짐작할 수는 있습니다.
차분한 슬픔으로 받아들이셨겠지요.
천사가 예수님의 잉태를 알려 주었을 때도
그분께서는 담담하셨습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때의 모습 그대로이셨을 것 같습니다.
이후 성모님께서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사셨습니다.
철저한 겸손으로 사신 것입니다.
주위에는 ‘사랑하는 이’를
먼저 보낸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따뜻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실 것입니다.
슬픔 역시 주님께서 주시는 감정임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아름답게 승화시킬 수 있는 ‘힘’을 청해야 합니다.
성모님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십니다.
어머니는 과묵한 아버지와 달리
어떤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때로는 우리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대변해주느라
아버지에게 함께 야단을 들은 적도 많았을 텐데
혹시 기억이 나십니까?
그러므로 우리의 어머니에게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청합시다.
먼저 가 버린 불쌍하고 야속한 남편이나 아내
아직도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아련하고 애틋한 자식,
평생 우리만을 위하여 굶주리며
땀 흘려 몸바친 죄로 일찍 떠난 부모님과
그리운 형제..
그들을 위하여 성모님께 청하오니
어머니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사족,
어제 저녁에 교구청에서
평협임원회의가 있었습니다.
회의 전에 늘 사무처장 신부님 집전으로
미사가 봉헌되는데
미사 시작 전에 카톡으로 전해진
제주에 계시는 존경하는 형님께서 보내주신
이행진 시인의 글..
글을 읽는 순간 가슴이 아파와서
한참 눈을 뜰 수가 없었습니다.
미사를 드리며,
낮에 실비아에게 화를 내며 큰소리 쳤던
기억에 너무도 미안했습니다.
미사 중 내내 아내에게 잘 하리라..
성모님께 말씀 드렸습니다.
함께 읽어 보시겠습니까?
아내와 나 사이 / 이생진
아내는 76이고
나는 80입니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
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
나는 창문을 열러 갔다가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누구 기억이 일찍 들어오나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
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
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도
올 것입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그것을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인생?
철학?
종교?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이생진 시인은
1929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습니다.
196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하셨고.
1996년 「먼 섬에 가고 싶다」로
윤동주문학상을,
2002년 「혼자 사는 어머니」로
상화시인상을 받았습니다.
시집 『그리운 바다 성산포』로
잘 알려져 있으며,
구순의 나이에도 작년에 38번째 시집
『무연고』를 냈을 만큼
왕성하게 시를 쓰고 계신 분이랍니다.
부부들이여, 서로 사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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