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한 마음/오 하느님

2020년08월19일 수요일 : 미사 -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주님의 착한 종 2020. 8. 18. 22:06

2020 8월19일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오늘 전례 


입당송

시편 84(83),10-11 참조
보소서저희 방패이신 하느님그리스도의 얼굴을 굽어보소서당신 뜨락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천 날보다 더 좋사옵니다.


기도

하느님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보이지 않는 보화를 마련하셨으니 저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키시어 언제나 어디서나 하느님을 오롯이 사랑하여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참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말씀의 초대 

(1독서). 

주님께서는 에제키엘 예언자에게양 떼를 자기들의 먹이로 삼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을 거슬러 예언하게 하신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는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는 마음씨 후한 밭 임자와 같다는 비유를 드신다.


제1독서       

<나는 내 양 떼를 그들의 입에서 구해 내어 다시는 그들의 먹이가 되지 않게 하겠다.>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4,1-11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2 “사람의 아들아이스라엘의 목자들을 거슬러 예언하여라예언하여라그 목자들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불행하여라자기들만 먹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양 떼를 먹이는 것이 목자가 아니냐?
그런데 너희는 젖을 짜 먹고 양털로 옷을 해 입으며 살진 놈을 잡아먹으면서양 떼는 먹이지 않는다.
너희는 약한 양들에게 원기를 북돋아 주지 않고 아픈 양을 고쳐 주지 않았으며부러진 양을 싸매 주지 않고 흩어진 양을 도로 데려오지도잃어버린 양을 찾아오지도 않았다오히려 그들을 폭력과 강압으로 다스렸다.
그들은 목자가 없어서 흩어져야 했다흩어진 채 온갖 들짐승의 먹이가 되었다.
산마다높은 언덕마다 내 양 떼가 길을 잃고 헤매었다내 양 떼가 온 세상에 흩어졌는데찾아보는 자도 없고 찾아오는 자도 없다.
그러므로 목자들아주님의 말을 들어라.
내 생명을 걸고 말한다주 하느님의 말이다나의 양 떼는 목자가 없어서 약탈당하고나의 양 떼는 온갖 들짐승의 먹이가 되었는데나의 목자들은 내 양 떼를 찾아보지도 않았다목자들은 내 양 떼를 먹이지 않고 자기들만 먹은 것이다.
그러니 목자들아주님의 말을 들어라.
10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나 이제 그 목자들을 대적하겠다그들에게 내 양 떼를 내놓으라 요구하고더 이상 내 양 떼를 먹이지 못하게 하리니다시는 그 목자들이 양 떼를 자기들의 먹이로 삼지 못할 것이다나는 내 양 떼를 그들의 입에서 구해 내어,
다시는 그들의 먹이가 되지 않게 하겠다.
11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나 이제 내 양 떼를 찾아서 보살펴 주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23(22),1-3.3ㄴㄷ-4.5.6(◎ 1)
◎ 주님은 나의 목자아쉬울 것 없어라.
○ 주님은 나의 목자아쉬울 것 없어라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내 영혼에 생기 돋우어 주시네. ◎
○ 당신 이름 위하여나를 바른길로 이끌어 주시네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당신 함께 계시오니두려울 것 없나이다당신의 막대와 지팡이저에게 위안이 되나이다. ◎
○ 원수들 보는 앞에서 제게 상을 차려 주시고머리에 향유를 발라 주시니제 술잔 넘치도록 가득하옵니다. ◎
○ 제 한평생 모든 날에은총과 자애만이 따르리니저는 오래오래 주님 집에 사오리다. ◎


복음환호송 

히브 4,12 참조
◎ 알렐루야.
○ 하느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낸다.
◎ 알렐루야.


복음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1-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1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
그는 일꾼들과 하루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밭으로 보냈다.
그가 또 아홉 시쯤에 나가 보니 다른 이들이 하는 일 없이 장터에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정당한 삯을 주겠소.’ 하고 말하자,

그들이 갔다그는 다시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에도 나가서 그와 같이 하였다.
그리고 오후 다섯 시쯤에도 나가 보니 또 다른 이들이 서 있었다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은 왜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 서 있소?’ 하고 물으니,
그들이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그러자 그는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하고 말하였다.
저녁때가 되자 포도밭 주인은 자기 관리인에게 말하였다.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이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이들에게까지 품삯을 내주시오.’
그리하여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한 이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10 그래서 맨 먼저 온 이들은 차례가 되자 자기들은 더 받으려니 생각하였는데그들도 한 데나리온씩만 받았다.
11 그것을 받아 들고 그들은 밭 임자에게 투덜거리면서,
12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하고 말하였다.
13 그러자 그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친구여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14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15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아니면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16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주님저희가 바치는 이 예물을 받으시고 놀라운 교환의 신비를 이루시어 주님께 받은 것을 바치는 저희가 주님을 합당히 모시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영성체송 

시편 130(129),7
주님께는 자애가 있고 풍요로운 구원이 있네.
<
또는>
요한 6,51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인자하신 주님성체성사로 저희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을 주시니 저희가 세상에서 그분의 모습으로 변화되어 하늘에서 그분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오늘의 묵상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는 마태오 복음에만 실려 있습니다.

이 비유의 첫째 부분은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의 고용과 이에 해당하는 품삯에 대한 주인의 지시가둘째 부분은 온종일 일한 일꾼들의 품삯의 지급에 대한 불평 그리고 이에 대한 주인의 응답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불평의 주된 이유는 주인이 일이 끝날 무렵에 온 일꾼들과 온종일 일한 사람들을 똑같이 대우한 것입니다.

사실 인간적인 생각에서특히 오늘날과 같은 사회 분위기에서 주인의 행동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습니다.

일꾼이 자신의 품삯을 마음대로 정할 수도 없고일한 만큼 보상이 주어지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수님 당시의 체제는 철저한 신분 사회였고 가부장적인 사회였습니다.

게다가 권력과 부는 소수의 지배자들과 부유한 자들의 차지였습니다.

이같은 상황에서 포도밭 주인의 처사에 대하여 그 누구도 뭐라 할 상황은 아닌 듯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 비유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사회 정의가 아니라 하늘 나라의 정의를 담고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자면 비유 속 주인은 원래의 계약대로 품삯을 계산하였기에 결코 불의하지 않았습니다.

친구여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 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오히려 이 정의를 깨뜨린 것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일어난 먼저 온 일꾼의 질투입니다.

주인의 정의곧 하늘 나라의 정의에는 하느님의 의로움이 드러나는 ‘자비로움이 담겨 있습니다.

노동의 대가만이 아니라 구직을 걱정하며 장터에서 온종일 서 있던 이들의 정신적 고통의 대가도 고려하시는 자비입니다.

마지막 사람에게도 고용의 기회를 주어 생계를 보장하여 가진 것 없는 이들을 배려하시는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따라서 이 비유는 구원받은 첫째가 된 우리 그리스도인이 스스로 꼴찌가 되어 사회적경제적 약자들을 돌보도록 이끌어 줍니다.
(
박기석 사도 요한 신부)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