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Mary Magdalene(detail)-SIMONE MARTINI
1317.Fresco, 97 x 80 cm (size of detail).Cappella di San Martino,
Lower Church, San Francesco, Assisi
축일: 7월22일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Santa Maria Maddalena (di Magdala)
Sta. Maria Magdalena
갈릴래아.1세기경
Magdalene - DOLCI, Carlo
1660-70.Oil on canvas, 73 x 56 cm.Galleria Palatina (Palazzo Pitti), Florence
성모 마리아를 제외하고 성서 속에서
마리아 막달레나보다 더 영광을 입은 여인은 없다.
지금까지도 그녀는 비난받는 수호 성녀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부어 드린
무명의 죄많은 여인으로(루가7,38)
교회 안에서 끊임없이 전해 내려온 전설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성서 학자들은 마리아 막달레나,
즉 막달라의 마리아를 두 사람으로 혼동케 하는 성서적 논거는 없다고 지적한다.
마리아 막달레나, 즉 막달라의 마리아는
그리스도께서 일곱 마귀를 쫓아 내신 바로 그 사람이었다.
최악의 경우 지독한 마귀에 걸렸던 사람,
어쩌면 중병이 들었던 사람임을 암시한다.
도미니코회의 W.J.헤링톤 신부는 "새 가톨릭 주해서"에서
"일곱마귀들"이 마리아가 비도덕적인 생활을 했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라고 서술했다
그녀의 비도덕적인 생활을 언급하는 것은
루가 복음 7장 37절에 나타나는 무명의 여인과 동일하게 여기는
오류를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이다.
예수회의 에드워드 맬리 신부는 그녀에 대한 후기 서구의
낭만적인 전설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성서 주석"에서
그녀는 루가 복음 7장 37절에 나오는 죄 많은 여인과
동일 인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분수에 지나칠 정도로
예수와 그의 열두 제자들 도와 준 많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예수의 모친과 함께 십자가 옆에 서 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예수 부활을 최초로 알게 된, 선택받은
"공식적인"목격자 중의 한 사람이며 특권을 부여 받은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막달레나는 주님이 수난 당하실 때 함께 있었다.
주님께서 부활하시던 날 아침 그녀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최초로 뵙는 영광을 얻었다.(마르 16,9)
이 성녀에 대한 신심이 특히 12세기부터 서방 교회에 두루 퍼져나갔다.
루가 복음사가는 ’일곱 마귀가 들렸던 막달라 여자라고 하는 마리아’라고
묘사하였고,
요한 사도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에
그 밑에서 계신 부인들 중 한 분으로 지목했으며,
마르코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일요일 이른 아침에 제일 먼저
막달라 여자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을 제자들에게 제일 먼저 알렸던 분으로 묘사하였다.
복음서에는 ’용서받은 죄 많은 여자’ 마리아와
마르타의 동생인 베타니아의 마리아 그리고
글레오바의 아내 마리아가 등장하는데
앞서 말한 ’죄 많은 여자’가 마리아 막달레나인지 아닌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전승에 따르면
서방교회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용서받은 죄 많은 여자’로 보고,
통회와 관상의 이상적인 모델로 공경해 왔다.
성령강림 후, 마리아 막달레나는 성모 마리아와 성 요한 등과 함께
에페소로 가서 선교하다가 그곳에서 선종하여 묻혔다.
"죄가 많은 곳에는 은총도 풍성하게 내렸습니다."(로마서 5,20)
마리아 막달레나의 "그릇된 정체"는 19세기 동안 계속 묵인되었다.
지금은 그녀가 동일인이 아니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 모두는 우리 죄를 무시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하느님의 구원을 필요로 하는 죄인들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그녀와 마찬가지로
예수 부활의 증인들이라는 사실이다.
오늘날 복음서(요한20,1-2,11-18)는,
마리아가 예수께서 동산에 서 계신 것을 처음에는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을 때 비로소 알아보았다는 사실을 전해 주고 있다.
갑자기 주님께 대한 그녀의 사랑이 넘쳐흐른다.
(이 축일의 제1독서 아가 3,1-4에"나는 놓칠세라 임을 붙잡고"라고 되어있음)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붙잡지 말고
어서 내 형제들을 찾아가거라."라고 하셨다.
아마도 완전히 새로운 관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분이 살아 계실 때에 가능했던 관계보다
더욱더 깊은 신앙 속에 머무르게 하는 관계이다.
성 요한은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는 예수의 승천이
부활의 완성임을 강조할지도 모른다.
처음에 사도들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부활에 대한
그들의 증언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는 오랫동안 교회 전통 안에서
’창녀’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어야 했다.
예수께 향유를 부은 여인이 죄 많은 여자, 곧 창녀로 여겨졌고,
그가 바로 예수께서 일곱 마귀를 쫓아 주셨고
후에 부활을 증거한 마리아 막달레나와 동일 인물이라는 오해로 인해
마리아는 항상 그 꼬리표를 달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성서 연구는 수세기 동안 이어져 내려온
그러한 생각이 잘못 되었음을 보여 주었다.
마태와 마르코 복음에 의하면,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익명의 어떤 여자가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붓는다.
(마태 26,6 이하; 마르 14,3 이하).
이야기가 달라진 루가 복음에서는, 어떤 바리사이파 집에서
그 마을의 행실 나쁜 여자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는다(7,36 이하).
그런데 요한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발에 라자로의 동생 마리아가 향유를 붓는다(21,1 이하).
교회 전통에서는 이 모든 기사를 역사비평을 하지 않은 채 혼합시켜서,
예수께 향유를 부은 여자를 창녀라고 낙인하고,
그를 일곱 마귀 들렸던 마리아 막달레나와 동일 인물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마리아는 참 억울한 꼬리표를 달아야 했던 희생자였다.
우리도 "너는 항상 어떠 어떠하다."라는 식의 꼬리표를 달고 있을 수 있다.
이때 우리도 똑같은 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해 왔든지 간에
우리의 참된 모습이 어떤 것이지 찾아보아야 한다.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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