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 즉 2020년 1월12일은
‘주님 세례 축일’ 이었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성자께서 강림하셨음을 세상에 알리고
세자 요한의 겸손한 고백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성부께서 성령을 통하여 확인해주셨음을
우리는 믿고 신앙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몇 일 전, 가톨릭 신문을 읽으며
세례에 관한 새롭고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문 기사를 중심으로
사진 등의 자료를 추가하여 포스팅 합니다.
함께 공부해 보겠습니다.
‘생명의 원천’인 물로 세례를 받고
하느님 자녀로 다시 태어나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때 그분께 하늘이 열렸다.”(마태 3,16)
물에서 올라온 예수님에게 하늘 문이 열리고,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신원이 밝혀졌습니다.
주님 세례 축일은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 받은 것을 기념하는 날이며,
세례 성사의 기원도 여기에 있습니다.
곧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성을 통해
하느님의 아들임이 계시됐고,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와 파견됐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세례는
죄로 물든 인간들과 맺은 유대 관계를 표명한 것이며,
물의 세례를 통해 죄를 사하는 힘을 부여했습니다.
이처럼 물은 하느님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세례의 본질적 요소입니다.
성경과 교회 전통 안에서
생명을 상징하는 물의 의미를 살펴보고,
세례가 이뤄져 온 공간들을 알아보겠습니다.
물–생명의 상징
물은 태초부터 생명과 풍요의 원천입니다.
교회는 노아의 방주 사건을
세례를 통한 구원의 표징으로 보았고,
홍해를 건너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은
‘세례 받은 새 백성’의 모습을 미리 보여 줍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요르단 강을 건넘으로써
약속된 땅을 선물로 받았는데,
이는 세례로써 영원한 생명을 상속 받은 것을 뜻합니다.
아울러 구약성경 안에는
물로 부정을 씻는 예식에 대한 전통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정화 예식은
바빌론 유배 이후부터 예수님 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속됐으며,
회당에서는 이를 위한 시설도 마련됐습니다.
구약의 모든 사건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되듯이,
물의 생명성도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절정에 이릅니다.
이때 나오는 세례를 뜻하는
그리스어 ‘밥토’(bapto), ‘밥티조’(baptizo)는
사전적으로 ‘물에 넣다’, ‘물속에 잠그다’
라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즉 기본적으로 세례는 ‘담그다’라는 말을 의미합니다.
또한 ‘씻는다’는 말도 의미하는데,
이는 죄의 얼룩을 제거하며,
생명의 원천인 물로 상징화된
그리스도의 새로운 생명을 나타냅니다.
물과 세례
물을 통해 받은 예수님의 세례는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오늘날 세례성사의 기원이 됩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1213항에서
세례성사에 대해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기초이며,
성령 안에 사는 삶으로 들어가는 문이고,
다른 성사들로 들어가는 길을 여는 문이다”라며
“세례는 물로써 말씀으로 다시 태어나는 성사”
라고 정의합니다.
이 외에도 사도 바오로는
“세례는 성령을 통해 이뤄지며,
죄인을 깨끗하고 거룩하게 하는 목욕”
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물은 세례성사가 유효할 수 있는
본질적 요소입니다.
교회법 849조에는
“성사들의 문이고 구원을 위하여
실제로나 적어도 원의로 받는 것이 필요한 세례는
합당한 말의 형식과 함께
물로 씻음으로써만 유효하게 수여된다”
고 명시합니다.
세례 형식
세례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세례성사가 유효할 수 있는 본질적 요소로서
물로 씻는 예식인 수세(水洗)와
세례성사는 아니지만 세례의 효과를 갖는
화세(火洗)와 혈세(血洗)가 있습니다.
언젠가 개신교에 열심인 친구가
“가톨릭은 화세(火洗)와 혈세(血洗)를
인정하지 않는다” 며
비난을 하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그때 사실 저는 화세나 혈세가 무엇인지 몰라
응대를 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 글을 정리하며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잠깐 설명해 드리고 세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혈세(血洗)
“자기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마태 10,39)”
즉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이들에게
내려지는 은혜가 바로 혈세입니다.
화세(火洗)
개신교에서는 불세례라고 하더군요.
“오늘 정녕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루카 23, 42-43)”
우도는 물로 세례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죄를 뉘우치면서
예수님의 자비와 용서를 빌었고
그때 예수님은 즉석에서 천국을 약속하셨습니다.
비록 물로 세례를 받지 못했더라도
자기가 범한 죄에 대하여 극도로 참회하며 뉘우치면
죄의 용서를 받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천주교에서는
“물로 세례를 받아도 몸만 있고
영혼의 거듭 남이 없다면
당연히 구원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이며
또 세례를 받지 않아도 극도로 뉘우치면
죄의 용서를 받고 거듭 나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화세와 혈세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개신교의 지적은 잘못된 것입니다.
다시 돌아가서 수세에 대해 계속 알아봅니다.
세례성사의 본질적 요소인 물을 통한 세례는
전통적으로 세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로 거행됐습니다.
초기 교회부터 시작해 교부 시대에는
온몸이나 머리를 물에 잠그는
침수세례가 일반적이었고,
물을 이마에 붓는 주수세례도 이뤄졌다고 합니다.
살수세례도 있는데,
이는 베드로 사도가 3000명의 군중에게 물을 뿌려
세례를 베풀었을 때 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형식인 것 같습니다.
이후에 교회가 여러 지역으로 확장되고
유아세례가 보편화됨에 따라
지금처럼 주로 주수세례가 거행됐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출간된 「세례 예식서」에는
물에 담그는 예식이나 물을 붓는 예식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세례 공간
오늘날은 이마에 물을 붓는 주수세례가 일반적이지만,
물을 본질적 요소로 갖는 세례성사의 특별함 때문에
초대교회부터 신자들은 세례를 위한 공간을 따로 마련하고
세례성사를 거행해 왔습니다.
세례를 위한 공간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 세례당(Baptistery)
‘세례당’은 ‘세례소’라고도 불리며,
세례성사 거행을 위한 곳으로 성당과 분리돼
단독으로 지어진 건물 또는 성당 건물의 부속 공간입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전례에서 세례성사는
매우 중요하고 장엄한 예식으로 여겨졌습니다.
또한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는 이방인이 급격히 증가하고
성찬례에 예비 신자들이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에
세례당이라는 독립적인 건축물이 등장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유아 세례의 등장과 발전에 따라
세례당의 필요성이 줄어들어 사라지는 추세를 보였고,
오늘날의 세례당은 매우 간소화된 형태로서
세례대로 대체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위쪽 사진은 산타 마리아 아순타 대성당입니다.
성모의 승천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대성당 옆의 단독 건물인
산 조반니 세례당 모습입니다.
▲ 세례반(Font)
세례당 정문을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서면
정면에 세례를 받는 세례반이 있습니다.
세례반 중심부에는 이태리의 세계적 현대 조각가
이탈로 그리셀리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세례자 요한의 동상이 서 있습니다.
세례반 내부는 목욕탕처럼 물을 채울 수 있어서
세례 받을 때 물 속에 들어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1~3세기에는 침수세례가 보편적이었습니다.
따라서 세례는 흐르는 물이 있는 강가나 샘,
바다 등지에서 거행됐습니다.
그러나 세례 장소가 건물 안으로 들어오면서
물을 보관하기 위한 시설이 필요해졌습니다.
세례반과 세례터는 물리적으로
물을 보관하거나 유지하기 위한 곳입니다.
보통 세례반은 죽음으로 내려가는 것을 상징해
땅 밑으로 낮췄다고 합니다.
소아시아 교회를 중심으로 발전한 세례반은
세례를 받는 이들에게 적합하도록 계획됐다고 해요.
그래서 성인용은 바닥보다 낮았으며,
유아용은 바닥보다 높게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예비신자가 세례반 가운데 들어가 무릎을 꿇고 앉으면
사제가 머리에 물을 부으며
세례 예식을 거행했다고 하는데.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제주 주교좌 중앙본당이
유일하게 이동식 세례반을 설치하고
침수세례를 거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꼭 구경가고 싶습니다.
▲ 세례대(Baptismal Font)
세례대는 세례수를 담아 보관해 두는
받침이 있는 큰 그릇을 일컫습니다.
‘성세대’라고도 하는 세례대는
유아 세례가 보편화되면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아기의 몸이 물에 잠길 정도의 깊이로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주례자가 세례 받는 이의 이마에 세례수를 부으면
세례대 안으로 흘러내리게 계획됐습니다.
또한 세례대와 세례반에는 별도의 배수관을 만들어
일반 물과 섞이지 않고 지면으로 스며들게 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서울 주교좌 명동대성당과
서울 혜화동성당, 대구 주교좌 범어대성당 등에
세례대가 설치돼 있다고 합니다.
춘천교구 스무숲 성당 세례대 모습입니다.
「가톨릭교회 세례 공간의 역사적 고찰」을 써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건축학 박사학위를 받은
김진태 신부(수원교구 국내연학)는 논문에서
“한국교회는 지난 30년간 교세가 급속도로 확장됐으나
세례 전례의 간소화로 인해
교회 내 세례의 중요성은 점차 소실됐다”
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열악한 환경에서도
세례 공간의 중요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던 것처럼
신학적 은유와 상징성을 담을 수 있는 공간으로서
세례 공간의 복원 및 계획에 힘써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가톨릭신문, 2020년 1월 12일,
박민규 기자의 기고 글을 참조하여
편집했습니다.
'하늘을 향한 마음 > 알고 싶어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전(聖傳), 교회의 살아있는 전통 (0) | 2020.01.23 |
---|---|
성직자의 의무 (0) | 2020.01.22 |
가톨릭 신부가 되기 위한 10년 과정 (0) | 2020.01.16 |
평화란 무엇인가? (0) | 2020.01.15 |
동방박사와 예물의 의미 (0) | 2020.0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