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와 가난한 자
오늘 3월21일 사순2주간 목요일의
복음 말씀 주제입니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루카 16, 19)
구약과 신약에서 가난과 부의 용어를 정의하는데
큰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설교는
“가난한 자의 행복”(마태 5,3)선언으로 시작하고 있지만,
구약, 곧 이스라엘의 역사는 반대로
하느님께서 당신 믿는 이들의 ‘일’에 축복을 주시고
풍요로움을 주시는 예를 많이 보입니다.
구약에서 부자들은
큰 재산을 소유하고 비옥한 땅과 종들,
곡식들을 많이 수확합니다,
아브라함은 가축, 금, 은을
많이 소유한 부자였고(창세13,2),
그의 아들 이사악도 수확을 백배나 올리는
부유함을 누렸으며(창세26, 12),
야곱도 양, 염소, 남종, 여종 등
풍요롭게 살았습니다.(창세 30, 43)
욥은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은 그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고
결국 욥도 최고의 부유함을 누리도록
주님께서 되돌려 주십니다.
그렇다면 과연 “부”에 대한
구약과 신약, 자본주의 그리고 우리 신앙인의 자세는
근본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사람이 재물을 모으게 되는 것은
노동을 통해서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불행히도
남을 속이거나 도둑질 또는 착취 같은 행위를 통해
부자가 되는 것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요?
그것은 모든 부유함의 원천은
무엇보다 하느님의 강복에 있다는 것이
성경의 고백이기 떄문입니다.
이 기초 위에 인간의 노력이 열매를
맺어야만 하는 것이지요.
부자의 위험
성경에 따르면 복지와 안녕을 누리는 것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부유함은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그 선물을 서로 교환하면서
상호 애정과 관심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살아가야만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에
먼저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럴 때 하느님께서 선물하신 목표를
이룰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현실에서는
반대로 나타나곤 합니다.
부자는 하느님의 선물인 축복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소유하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부유한 자의 재산은
그에게 견고한 성읍이 되고”(잠언 10,15) 라고 말하면서
부자의 재산을 견고한 성채로 표현하며,
이스라엘을 “내가 먹여주자 그들은 배가 불렀고
배가 부르자 마음이 우쭐해져 나를 잊어버렸다.”
(호세 13,6)라며 질책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부유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강복의 뿌리를 잊고,
이제는 그 강복에 감사하지 않고
오만함으로 의심 없는 죄를 짓게 됨으로 해서,
결국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부자 라자로의 신세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은 근본적으로
부유함을 반대하고 있을까요?
답은 간단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복지와 안녕, 풍요는 현실에서 살아가는 문제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기억하셔서 주신 선물을
나의 안녕, 복지, 부유함만을 위해 소유한다면
그것이 문제라고 하는 고발이
성경의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
가난한 자를 위해 부유함을 사용할 의무를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루카 16, 20)
부자, 곧 부유함이 만들어가는 위험은
매우 크고 영향력이 있음을
신약성경의 적지 않은 부분에서 고발하고
심지어 그것을 단죄하는 듯 하는 말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루카 6, 24)
부유함과 부자가 나쁜 것은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문제는 라자로 같은
자기 집 문 앞에 있는 거지에게
적어도 탁자에서 떨어진 빵 부수러기를 먹기 원하는
가난한 자에게 아무 것도 나누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부자는 가난한 자를 위해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주님의 메시지입니다.
가난 자체는 좋지 않은 악이 아닙니다.
가난한 자들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배려되고 치료될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다른 가난한 자를
어떤 형태로든지 책임을 질 때
엄청난 사랑의 사건이 발생할 것입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마음이 불편한 분들이 계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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