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한 마음/오 하느님

성인 - 3월15일 성 클레멘스 마리아 흡바우어

주님의 착한 종 2019. 3. 15. 07:20



축일:315

성 클레멘스 마리아 흡바우어

St. Clemens Hofbauer, C

St. CLEMENT MARY HOFBAUER

San Clemente Maria Hofbauer

26 December 1751 at Tasswitz, Moravia as John Dvorak
- 15 March 1820 at Vienna, Austria of natural causes
Beatified:29 January 1888 by Pope Leo XIII
Canonized:1909 by Pope Pius X
Patronage:Vienna Austria (named by Pope Pius X in 1914)
Clemente =indulgente, generous

 


모라비아의 타쓰비츠 태생인 체코 사람으로 그의 본명은 얀 드르략인데

독일 이름인 흡바우어로 개명하였다.

그는 푸주간의 아홉째 아들인데, 어려서 부터 빵굽는 기술을 배웠고,

어려운 생활을 하였으나, 항상 은수자가 되려는 꿈을 갖고 있었으며,

얼마동안은 로마와 비엔나 사이를 오가는 방랑생활을 하다가,

브룩크에서 프레콩트레 수도원의 빵굽는 데서 일하였으며,

마침내 은수자가 되었다.

그러나 요셉 2세 황제가 은수소들을 폐쇄하였을 때,

그는 비엔나로 돌아와서 빵굽는 사람이 되었으나,

친구인 베드로 쿤즈만과 함께 티볼리의 주교 키아라몬띠의 승락을 받고

재차 은수자가 되었다.

 

그는 그 후 비엔나와 로마 대학교에서 공부하였고, 속죄회에 입회하여,

1785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비엔나로 파견되었으나 황제가 많은 수도회를 축출하였기 때문에

속죄회 수도원 건립이 불가능하게 되어,

돌아오는 길에 옛 친구인 쿤즈만을 만나 평수사로 입회시켰다.

그러나 교황 대사의 요청에 따라, 그들은 바르사바로 갔으며,

그곳에서 20여 년 간 선교활동을 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클레멘스는 늘 가난한 이들과 더불어 일했으며, 고아원과 학교를 세웠고,

독일과 스위스로 선교사들을 파견하였다.

 

나폴레옹이 수도회를 탄압할 때, 그와 그의 동료 속죄회원들은 체포되어

투옥되었다가 각기 본국으로 강제 송환되었다.

그는 끝내 비엔나에 정착하기로 결정하고, 그곳의 이탈리아 구역에서 일하였으며,

울술라회의 지도신부로도 활약하면서 부터는, 그의 설교와 성덕,

그리고 지혜와 고해신부로서의 이해심 등이 높은 명성을 얻게 하였다.

 

그는 비엔나에 가톨릭 대학을 설립하였고,

독일 지역의 수도생활 재생을 위하여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클레멘스는 요셉주의자들의 그릇된 사상과 대치하여 힘찬 싸움을 하였다.

그는 1909년에 시성되었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