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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전례 입당송 시편
38(37),22-23 참조
<대영광송> 본기도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
말씀의 초대 (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고, 자기 것만 아니라 남의 것도 돌보아 주라고 한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잔치를 베풀 때에는 보답할 수 없는 가난한 이들을 초대하라고 하신다. <같은 생각을 이루어, 나의
기쁨을 완전하게 해 주십시오.> 화답송 시편
131(130),1.2.3 복음환호송 요한
8,31-32 참조
복음 <네 친구를 부르지 말고,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을 초대하여라.>
12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보편지향기도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바치는 이 제물을 거룩한 제사로 받아들이시어 저희에게 주님의 자비를 가득히 베풀어 주소서. 영성체송 시편
16(15),11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천상의
성사로 저희를 새롭게 하셨으니 저희에게 주님의 힘찬 능력을 드러내시어 주님께서 약속하신 은혜를 얻게 하소서. 오늘의 묵상 ‘유유상종’이란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내게 잘해 주는 사람에게 끌리고, 나하고 관심과 취미가 맞는 사람과 어울리기 마련입니다. 남녀가 서로의 차이를 매력으로 느껴 평생의 동지가
된 부부도 있겠지만, 그 서로의 다름이 쉽게 상처가 되고 다툼이 되기도 합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잘해 주는 이유는 그도 나에게 잘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는 것이고, 밥을 한 번 사고, 선물을 줄 수 있는 여유도 그와 관계를 이어 가면서 내가 얻게 될 보답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꼭 그것이 물질적인 보상이 아니더라도 정서적인
위로나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인간관계는 쉽게 끊어집니다. 잔치를 베풀 때에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고 하십니다.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진정한 이웃 사랑은 조건 없는 나눔과 베풂이고, 그 사랑의 행위 자체로 기쁨을 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이들은 결코 나의 호의를 같은
방식으로 갚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물질적 보답은 못해도 나를 위하여 기도해 주고, 사람들 앞에서 나를 칭찬하고,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진정한 사랑의
소통을 이룹니다. 오늘날 혼례와 장례 때 부조를 하는 일이 마음의 진정한 표현이 아닌, 채무 형태로 바뀌는 세태를 생각하면, 내 주변에서 정말 힘든 이웃과 애정과 동정을 나누는 일이 그리워집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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