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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 첫째 미사
오늘 전례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은 죽은 모든 이, 특히 연옥 영혼들이 하루빨리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하는 날이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오늘 세 대의 위령 미사를 봉헌해 왔다. 이러한 특전은 15세기 스페인의 도미니코 수도회에서 시작되었다.
교회는 ‘모든 성인 대축일’인 11월 1일부터 8일까지 정성껏 묘지를 방문하여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입당송 1테살 4,14; 1코린 15,22 참조 본기도
주님, 성자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시어 저희의 믿음을 깊게 하셨으니 저희의 기도를 인자로이 들으시고 저희도 세상을 떠난 주님의 종들과 더불어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리라는
굳건한 희망을 지니게 하소서.
말씀의 초대 (제1독서). 욥은, 구원자께서 살아 계시고 그분께서 마침내 먼지 위에서 일어서시리라고 한다. (제2독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고 한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산으로 오르시어 여덟 가지 참된 행복을 가르치신다. 제1독서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 계심을.> 화답송 시편
27(26),1.4.7과 8ㄷ과 9ㄱ.13-14(◎ 1ㄱ 또는 13) 제2독서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게 된 우리는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5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복음환호송 마태 25,34
참조
복음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1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예물기도
주님, 성자께서
세우신 사랑의 큰 성사로 하나 되어 저희가 바치는 이 예물을 자비로이 굽어보시고 세상을 떠난 주님의 종들이 성자와 함께 천상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영성체송 요한
11,25-26 참조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세상을
떠난 주님의 종들을 위하여 파스카의 신비를 거행하고 비오니 그들을 빛과 평화의 나라로 이끌어 주소서. 오늘의 묵상 죽음은 모든 생명체가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생의 마지막 말입니다. 살아 있는 한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설령 죽음을 부정하며 잊고 살더라도 죽음의 시간은 언젠가 찾아옵니다.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죽음 너머의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간직하는 길뿐입니다. 욥이 누린 세상의 행복은 결코 영원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해 주고, 고통 속에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탄원한 욥의 마지막 기도는, “내가 기어이 뵙고자 하는 분, 내 눈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그분을 보리라.”는 희망의 외침이었습니다. 죽음을 당당하게 받아들이시고, 십자가의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으신 예수님 덕분에 우리는 구원자 그리스도를 얻게 되었고, 사탄의 힘인 죄와 죽음에서 해방되었다고 바오로 사도는 기쁨에 차 선포합니다. 그렇다고 세상에서 도피하고, 세상을 혐오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행복은 세상 속에서 씨앗처럼 자라나는 하느님의 능력과 지혜를 볼 줄 아는 사람에게 주어진 행복입니다. 그 행복은 우리가 맞이할 죽음의 두려움을 넘어서는 하느님의 선물이 됩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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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 둘째 미사
오늘 전례 입당송 4에즈 2,34-35 참조 본기도
믿는 이들의 영광이시며 의로운 이들의 생명이신
하느님, 성자의 죽음과 부활로 저희를 구원하셨으니 세상을 떠난 하느님의 종들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부활의
신비를 믿은 그들이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말씀의 초대 (제1독서). 지혜서의 저자는, 주님을 신뢰하는 이는 진리를 깨닫고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라고 한다. (제2독서). 바오로 사도는,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로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어 생명을 받는다고 한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멍에를 메고 당신께 배우면 안식을 얻을 것이라고 하신다. <하느님께서는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화답송 시편
116(114─115),5-6.10-11.15와 16ㄱㄴㄹ(◎ 9) 제2독서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
17 한 사람의 범죄로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죽음이 지배하게 되었지만, 은총과 의로움의 선물을 충만히 받은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통하여 생명을 누리며 지배할 것입니다. 복음환호송 마태 11,25
참조
복음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예물기도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 세상을 떠난 하느님의 종들을 몸소 세례의 물로 씻으시고 사랑과 자비로 끊임없이 보호해 주셨으니 이 제사를 받아들이시어
그들의 죄를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이 씻어 주소서. 영성체송 4에즈 2,35.34 참조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를 위하여 희생되시고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외아드님의 성체를 받아 모시고 간절히 청하오니 세상을 떠난 주님의 종들이 파스카의 신비로 깨끗해지고 훗날 부활하여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오늘의 묵상 오늘의 묵상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복음서에서 가장 위로가 되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성당에 다니는 개인적인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신앙생활은, 삶에 지치고, 상처받으며 고통을 겪는 내가 조금이라도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는 것입니다. 비록 열심히 기도 생활은 못해도 주일 미사만큼은
빠지지 않으려 하고, 묵주를 주머니에 넣어 다니며, 판공성사의
의무라도 지키려는 데에는, 신자로 사는 것이 그래도 위로와 행복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계시다고 믿어도 그분이 느껴지지 않고, 교회의 가르침이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이념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신앙생활은 역동적인 현대인의 삶에 역행하는 것처럼
보이고, 교회 생활은 동료 신자와의 관계와 인맥이 끊기면 냉담의 길로 들어서는 사회생활의 일부로 느껴집니다. 현대는 교묘한 방법으로 하느님을 부정하고, 신앙을 개인적인 취향으로 둔갑시키며, 교회를 제도와 규율로 사람들을
통제하려는 조직으로 끌어갑니다. 현대의 악은 인간의 영혼을 죄와 불순종의 종으로 만들고, 하느님 없는 삶을 꿈꾸게 합니다. 세상의 무거운 짐과 멍에를 벗는 지혜를 당신의 십자가의 길에서 배우는 철부지들이 참된 지혜를 얻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는 예수님의 역설은 오직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만이 얻게 될 선물임에 틀림없습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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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 셋째 미사
오늘 전례 입당송 로마 8,11 참조 본기도
하느님, 외아드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하늘 나라로 건너가게 하셨으니 세상을 떠난 하느님의 종들도 이 세상의 죽음을 이기고 창조주요 구원자이신 하느님을 뵈오며 영원히
기뻐하게 하소서.
말씀의 초대 (제1독서). 지혜서의 저자는, 예지가 곧 백발이고 티 없는 삶이 곧 원숙한 노년이라고 한다. (제2독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분과 함께 살리라고 믿는다고 한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를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유하신다. <티 없는 삶이 곧 원숙한 노년이다.> 화답송 시편
23(22),1-3.4.5.6(◎ 1 또는 4ㄱㄴㄷ) 제2독서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복음환호송 필리 3,20 참조
복음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바치는 이 제물을 인자로이 받으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고이 잠든 주님의 종들이 이 특별한 제사로 죽음의 사슬에서 풀려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영성체송 필리
3,20-21 참조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가
바친 이 제사를 받으시고 세상을 떠난 주님의 종들에게 풍성한 자비를 베푸시어 일찍이 세례의 은총을 받은 그들이 영원한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하소서. 오늘의 묵상 열 처녀의 비유는 우리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할지를 일깨워 주는 복음입니다. 우리가 맞이할 신랑은 이 세상을 마치고 만나 뵙게 될 주님이십니다. 그러나 그 시간과 그 때를 알지 못하기에 우리는 늘 깨어 죽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신랑 때문에 기름을 준비하지
못해 당황하는 어리석은 처녀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오래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지혜서는 “의인은 때 이르게 죽더라도 안식을 얻는다.”고 말하고, “영예로운 나이는 장수로 결정되지 않고 살아온 햇수로 셈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래 살면서 추하게 늙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악에 타협하고 살아 이성이 변질되면 “좋은 것들을 무색하게 만들고, 솟구치는 욕망은 순수한 정신을 훼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난하다고 불행한 것은 아니며, 병들고 외로운 사람이 실패한 인생이 되라는 법은 없습니다. 심리학자들은 행복이란 내가 기대하지 않았던 일상의 작은 기쁨이 누적되어 찾아오는 만족감이라고 말합니다. 한마디의 위로,
작은 물질적 나눔, 환한 미소와 따뜻한 손길, 희망의
복음이 세상 너머의 희망의 표지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죽음은 인생의 마지막 말이 될 수 없습니다. 시편 저자의 노래처럼, 주님께서 나의 목자이시기에, 세상살이가 각박해도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 이제 그 행복을 찾아 나갑시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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