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SBS 기자 김수현입니다.
오랫동안 문화부에 근무하면서 관련 보도를 많이 했었는데, 혹시 기억하시나요?
한 때는 매주 SBS모닝와이드에 출연해
‘김수현의 커튼콜’이라는 타이틀로 공연 소식 전해드리기도 했고요.
지금은 중국에 와 있습니다.
남편의 중국 주재원 발령으로 몇 달간 이산가족으로 살다가
저도 중국을 경험하고 싶어서 휴직을 신청했어요.
저는 칭다오에 살면서 중국해양대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칭다오는 인천공항서 비행기로 1시간 20분 정도면 오는 곳이니
외국이지만 무척 가깝죠.
2년 예정으로 왔는데 이제 1년 좀 넘게 지나갔습니다.
중국어 까막눈으로 와서 ‘听不懂(팅부동. 못 알아들어요)’만 외치고 다니다가,
이제 간단한 의사 소통은 하고 여행도 다닐 수 있게 되었으니,
처음보다는 많이 나아진 셈입니다.
사실 중국 오기 전에는 중국 생활에 대한 글을 많이 써야겠다 생각했었지만,
막상 와보니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그냥 적응만 하는 데도 정신이 없었고 글 쓰기가 망설여졌거든요.
남들도 다 하는 얘기 아닌가 싶어서요.
요즘 중국이 이미 한국을 여러 분야에서 앞서 나간다는 얘기,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기초 과학 연구, 정보 기술, 벤처 창업 등 첨단 분야에서 중국의 발전이 눈부시다고요.
‘지금은 우리가 중국 사람들한테 발 마사지를 받지만,
다음 세대에는 한국인들이 중국인들에게 발 마사지 해 주며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관련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닌 한,
정작 중국에 살아도 이런 얘기들을 피부로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게다가 칭다오는 제법 큰 도시이긴 하지만,
중국에서 베이징이나 상하이, 광저우 같은 주요 도시라고 할 수는 없죠.
여기서 ‘세계를 선도하는 중국’을 느끼기는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일상 생활에서는 질서 안 지키고, 지저분하고, 일 처리 느리고,
이런 경험을 하게 되거든요.
그러고 보니 중국의 이미지는 감탄과 찬사(그러니 우리도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아니면 무시와 경멸(역시 중국은 아직 멀었어~),
이 양 극단으로 나뉘어지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중국에 살면 살수록 섣불리 중국이 이렇다,
중국인이 이렇다, 얘기하기 어려워져요.
중국을 여행하다 보면 중국이 얼마나 큰 나라인지,
중국인은 또 얼마나 많고 각양각색인지 어렴풋이 느끼게 됩니다.
제가 만난 중국인들은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그러니 제가 중국에 대해 무슨 말을 해도 사실 눈 감고 코끼리 만지는 격이죠.
하지만 이제 중국 생활에 좀 익숙해지니 글을 쓰고 싶어졌습니다.
아예 만져보지 않은 사람이나 코끼리 다른 부위를 만져본 사람들하고는
다른 얘기를 할 수 있을지 모르잖아요.
거창한 내용 아니라도 말이죠.
레드스타 잡지
저는 요즘 칭다오에 사는 외국인들을 주 독자로 하는
‘RED STAR’라는 영문잡지를 즐겨 보고 있는데요,
지난 달 이 잡지에 ‘Should I stay or Should I go-离开或留下, 我该何去何从
(떠날까 머무를까,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라는 기획기사가 실렸어요.
간단한 퀴즈를 풀면서 내가 중국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를 판별해 보라는 내용인데요.
정색하고 풀어야 하는 퀴즈라기보다는, 유머를 곁들인 가벼운 질문들입니다.
몇 개만 살펴볼게요.
- 당신이 laowai(라오와이)라는 이유로 중국인들이 사진을 찍자고 한다면?
(*laowai, 즉 老外는 외국인을 뜻하는 중국 속어)
a. 나는 동물원 원숭이가 아니라며 딱 잘라 거절한다
b. 농담 삼아 한 장에 10위앤이라고 말한다. (1위앤은 우리 돈으로 170원 정도다)
c. ‘Chiezi!를 외치며 활짝 웃으며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사진을 찍는다.
(*chiezi는 야채 ‘가지’를 뜻하는 중국어 단어 茄子의 발음을 나타낸 것.
병음 표시는 qiezi로 한다.
‘치에즈’ 발음으로 웃는 입 모양을 만들어준다. 한국에서 ‘김치!’ 하는 것과 비슷.)
- 당신의 VPN이 멈춘다면?
a. 패닉 상태가 된다. VPN회사 고객센터에 이 메일을 보내고,
친구들에게 되는 VPN을 빌려달라고 메시지를 보낸다.
b. 그냥 며칠 동안 Bing.com으로 인터넷 서핑하며 견딘다.
(*Bing.com은 중국에서 VPN이 없어도 사용 가능하다.
구글, 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 등은 중국에서 접속이 안 된다.
VPN은 사용자가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접속하고 있는 것처럼 만들어줘서
이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c. VPN를 사용하지 않는다.
(*중국 서비스만 이용해도 충분하다는 뜻.
검색엔진 바이두, 중국인 대부분이 메신지로 사용하는 웨이신,
동영상 공유사이트인 유쿠,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 등등)
- 당신은 얼마나 자주 중국을 떠나있어야 하는가?
a. 석 달에 한 번은 중국을 떠나있다 와야 한다.
b. 1년에 한 두 번 고국에 있는 가족을 방문한다.
c. 2년 정도 쭉 중국에만 있었고 앞으로 특별히 외국에 갈 계획이 없다.
-얼마나 자주 서양식 레스토랑에 가는가?
a. 매일. 당신은 중국 음식을 조리할 때 쓰는 기름과 향신료, 쌀, 지방, 등등을 싫어한다.
b. 1주일에 두 번 정도 친구와 서양식 레스토랑에 가고, 보통은 중국식당에 가거나 해먹는다.
중국식 볶음면을 8위앤에 사 먹을 수 있는데 뭐 하러 80위앤 넘게 주고 스파게티를 먹나?
c. 거의 안 간다. 오리고기와 훠궈(중국식 샤브샤브 요리)가 훨씬 맛있다.
-술 마시고 나서 귀가할 때는?
a. 택시 운전사에게 종이에 쓴 집 주소를 보여준다.
b. 집 주소와 근처 도로명을 중국어로 얘기한다.
c. ‘디디다처’로 택시를 부르고 지푸바오로 결제한다.
(*디디다처는 한국의 카카오 택시와 유사한 콜택시 앱이다.
지푸바오는 ‘알리페이’로 알려진 온라인결제수단이다.
중국에선 지갑 대신 핸드폰만 들고 외출해도 무방하다 할 정도로 지푸바오 사용이 활성화돼 있다.)
-길가에 아기 오줌을 누이는 엄마를 봤을 때는?
a. 중국이 얼마나 낙후됐는지, 왜 아기가 기저귀를 안 차고 있는지 불평한다.
b. 웃고 지나친다. 똥 누는 것도 아니고, 나한테 튀지만 않으면 오케이.
c.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식당 종업원이 미지근한 칭다오 맥주를 가져다 줬을 때는?
a. 짜증을 낸다.
b. 찬 맥주를 갖다 달라고 종업원에게 중국어로 이야기하고,
찬 맥주가 없다고 하면 미지근한 맥주를 마신다.
c. 망설이지 않고 미지근한 맥주를 쭉 들이킨다.
찬 맥주도 좋지만 중국에 오래 살다 보니 가끔은찬 음료가 속에 안 좋다는 느낌이 든다.
짐작하시겠지만,
a가 많을수록 중국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a가 많은 사람들에게 이 글의 필자가 이런 충고를 날리네요.
“중국 생활의 장점보다 단점이 더 커 보일 때는
바로 당신이 중국 생활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부정적인 태도로 끊임없이 불평하며 다른 사람들까지 물들일 바에는
그냥 고국으로 돌아가세요!”
c가 많을수록 중국에 잘 적응했을 뿐 아니라 동화되고 있다는 뜻이랍니다.
b가 많다면 중국에 적응은 잘 하고 있으나 가끔은 지칠 때가 있으니
반 년에 한 번쯤 중국을 잠시 떠나주는 것이 좋을 거라고 합니다.
이 질문들은 대부분 외국인들이 중국에 와서 불편해 하거나
이상하게 여기는 경험들을 담고 있어요.
첫 번째 질문에 나오는 사진 찍기는 보통 서양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도 낯선 중국인한테 같이 사진을 찍자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학교 벤치에 앉아 외국인 친구와 함께 영어로 대화하고 있었는데,
한 중년 여성이 다가와서 자신을 선생님이라고 소개하더니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하더라고요. 얼떨결에 같이 사진을 찍었어요.
이 여성은 지나가던 다른 외국인 학생에게도 같이 사진 찍자고 하다가 거절당했어요.
제 친구는 ‘동물원 원숭이가 된 느낌’이라며, 그다지 유쾌해 하지는 않았어요.
저도 좀 황당했죠.
그런데 돌이켜보니 저도 아주 오래 전이지만,
학창 시절에 길에서 처음 만난 외국인과 사진을 찍은 적이 있어요.
서울 올림픽이 열렸을 때 친구들과 같이 경기를 보러 갔는데,
저는 그렇게 외국인이 많은 건 처음 봤거든요.
같이 갔던 친구들과 길 가던 외국인들에게 영어로 인사도 해보고,
인사를 잘 받아준 미국인 여성과 사진도 찍었어요.
프레스 명찰을 달고 있었으니까 아마 기자였겠죠?
그 기자는 저희를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김수현 기자(shk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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