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의 기억과 발자취/중국과 친해지기

'보보경심' 4황자가 내게 해준 말 - SBS 김수현 기자

주님의 착한 종 2016. 11. 11. 09:35



안녕하세요. SBS 기자 김수현입니다.

오랫동안 문화부에 근무하면서 관련 보도를 많이 했었는데, 혹시 기억하시나요?

한 때는 매주 SBS모닝와이드에 출연해

‘김수현의 커튼콜’이라는 타이틀로 공연 소식 전해드리기도 했고요.


지금은 중국에 와 있습니다.

남편의 중국 주재원 발령으로 몇 달간 이산가족으로 살다가

저도 중국을 경험하고 싶어서 휴직을 신청했어요.

저는 칭다오에 살면서 중국해양대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칭다오는 인천공항서 비행기로 1시간 20분 정도면 오는 곳이니

외국이지만 무척 가깝죠.

2년 예정으로 왔는데 이제 1년 좀 넘게 지나갔습니다.

중국어 까막눈으로 와서 ‘听不懂(팅부동. 못 알아들어요)’만 외치고 다니다가,

이제 간단한 의사 소통은 하고 여행도 다닐 수 있게 되었으니,

처음보다는 많이 나아진 셈입니다.


사실 중국 오기 전에는 중국 생활에 대한 글을 많이 써야겠다 생각했었지만,

막상 와보니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그냥 적응만 하는 데도 정신이 없었고 글 쓰기가 망설여졌거든요.

남들도 다 하는 얘기 아닌가 싶어서요.

요즘 중국이 이미 한국을 여러 분야에서 앞서 나간다는 얘기,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기초 과학 연구, 정보 기술, 벤처 창업 등 첨단 분야에서 중국의 발전이 눈부시다고요.

‘지금은 우리가 중국 사람들한테 발 마사지를 받지만,

다음 세대에는 한국인들이 중국인들에게 발 마사지 해 주며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관련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닌 한,

정작 중국에 살아도 이런 얘기들을 피부로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게다가 칭다오는 제법 큰 도시이긴 하지만,

중국에서 베이징이나 상하이, 광저우 같은 주요 도시라고 할 수는 없죠.

여기서 ‘세계를 선도하는 중국’을 느끼기는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일상 생활에서는 질서 안 지키고, 지저분하고, 일 처리 느리고,

이런 경험을 하게 되거든요.

그러고 보니 중국의 이미지는 감탄과 찬사(그러니 우리도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아니면 무시와 경멸(역시 중국은 아직 멀었어~),

이 양 극단으로 나뉘어지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중국에 살면 살수록 섣불리 중국이 이렇다,

중국인이 이렇다, 얘기하기 어려워져요.

중국을 여행하다 보면 중국이 얼마나 큰 나라인지,

중국인은 또 얼마나 많고 각양각색인지 어렴풋이 느끼게 됩니다.

제가 만난 중국인들은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그러니 제가 중국에 대해 무슨 말을 해도 사실 눈 감고 코끼리 만지는 격이죠.

하지만 이제 중국 생활에 좀 익숙해지니 글을 쓰고 싶어졌습니다.

아예 만져보지 않은 사람이나 코끼리 다른 부위를 만져본 사람들하고는

다른 얘기를 할 수 있을지 모르잖아요.

거창한 내용 아니라도 말이죠.


레드스타 잡지


저는 요즘 칭다오에 사는 외국인들을 주 독자로 하는

RED STAR’라는 영문잡지를 즐겨 보고 있는데요,

지난 달 이 잡지에 ‘Should I stay or Should I go-离开或留下, 我该何去何从

(떠날까 머무를까,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라는 기획기사가 실렸어요.


간단한 퀴즈를 풀면서 내가 중국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를 판별해 보라는 내용인데요.

정색하고 풀어야 하는 퀴즈라기보다는, 유머를 곁들인 가벼운 질문들입니다.

몇 개만 살펴볼게요.

- 당신이 laowai(라오와이)라는 이유로 중국인들이 사진을 찍자고 한다면?

(*laowai, 즉 老外는 외국인을 뜻하는 중국 속어)

a. 나는 동물원 원숭이가 아니라며 딱 잘라 거절한다

b. 농담 삼아 한 장에 10위앤이라고 말한다. (1위앤은 우리 돈으로 170원 정도다)

c. ‘Chiezi!를 외치며 활짝 웃으며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사진을 찍는다.

  (*chiezi는 야채 ‘가지’를 뜻하는 중국어 단어 茄子의 발음을 나타낸 것.

    병음 표시는 qiezi로 한다.

    ‘치에즈’ 발음으로 웃는 입 모양을 만들어준다. 한국에서 ‘김치!’ 하는 것과 비슷.)

 

- 당신의 VPN이 멈춘다면?

a. 패닉 상태가 된다. VPN회사 고객센터에 이 메일을 보내고,

    친구들에게 되는 VPN을 빌려달라고 메시지를 보낸다. 

b. 그냥 며칠 동안 Bing.com으로 인터넷 서핑하며 견딘다.

    (*Bing.com은 중국에서 VPN이 없어도 사용 가능하다.

     구글, 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 등은 중국에서 접속이 안 된다.

     VPN은 사용자가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접속하고 있는 것처럼 만들어줘서

     이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c. VPN를 사용하지 않는다.

   (*중국 서비스만 이용해도 충분하다는 뜻.

     검색엔진 바이두, 중국인 대부분이 메신지로 사용하는 웨이신,

     동영상 공유사이트인 유쿠,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 등등)

 

- 당신은 얼마나 자주 중국을 떠나있어야 하는가?

a. 석 달에 한 번은 중국을 떠나있다 와야 한다. 

b. 1년에 한 두 번 고국에 있는 가족을 방문한다.

c. 2년 정도 쭉 중국에만 있었고 앞으로 특별히 외국에 갈 계획이 없다.

 

-얼마나 자주 서양식 레스토랑에 가는가?

a. 매일. 당신은 중국 음식을 조리할 때 쓰는 기름과 향신료, 쌀, 지방, 등등을 싫어한다.

b. 1주일에 두 번 정도 친구와 서양식 레스토랑에 가고, 보통은 중국식당에 가거나 해먹는다.

   중국식 볶음면을 8위앤에 사 먹을 수 있는데 뭐 하러 80위앤 넘게 주고 스파게티를 먹나?

c. 거의 안 간다. 오리고기와 훠궈(중국식 샤브샤브 요리)가 훨씬 맛있다.

 

-술 마시고 나서 귀가할 때는?

a. 택시 운전사에게 종이에 쓴 집 주소를 보여준다.

b. 집 주소와 근처 도로명을 중국어로 얘기한다.

c. ‘디디다처’로 택시를 부르고 지푸바오로 결제한다.

   (*디디다처는 한국의 카카오 택시와 유사한 콜택시 앱이다.

     지푸바오는 ‘알리페이’로 알려진 온라인결제수단이다.

     중국에선 지갑 대신 핸드폰만 들고 외출해도 무방하다 할 정도로 지푸바오 사용이 활성화돼 있다.) 

 

-길가에 아기 오줌을 누이는 엄마를 봤을 때는?

a. 중국이 얼마나 낙후됐는지, 왜 아기가 기저귀를 안 차고 있는지 불평한다.

b. 웃고 지나친다. 똥 누는 것도 아니고, 나한테 튀지만 않으면 오케이.

c.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식당 종업원이 미지근한 칭다오 맥주를 가져다 줬을 때는?

a. 짜증을 낸다.

b. 찬 맥주를 갖다 달라고 종업원에게 중국어로 이야기하고,

    찬 맥주가 없다고 하면 미지근한 맥주를 마신다.

c. 망설이지 않고 미지근한 맥주를 쭉 들이킨다.

   찬 맥주도 좋지만 중국에 오래 살다 보니 가끔은찬 음료가 속에 안 좋다는 느낌이 든다. 

 

짐작하시겠지만,

a가 많을수록 중국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a가 많은 사람들에게 이 글의 필자가 이런 충고를 날리네요.

“중국 생활의 장점보다 단점이 더 커 보일 때는

 바로 당신이 중국 생활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부정적인 태도로 끊임없이 불평하며 다른 사람들까지 물들일 바에는

 그냥 고국으로 돌아가세요!”


c가 많을수록 중국에 잘 적응했을 뿐 아니라 동화되고 있다는 뜻이랍니다.

b가 많다면 중국에 적응은 잘 하고 있으나 가끔은 지칠 때가 있으니

반 년에 한 번쯤 중국을 잠시 떠나주는 것이 좋을 거라고 합니다.

이 질문들은 대부분 외국인들이 중국에 와서 불편해 하거나

이상하게 여기는 경험들을 담고 있어요.


첫 번째 질문에 나오는 사진 찍기는 보통 서양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도 낯선 중국인한테 같이 사진을 찍자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학교 벤치에 앉아 외국인 친구와 함께 영어로 대화하고 있었는데,

한 중년 여성이 다가와서 자신을 선생님이라고 소개하더니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하더라고요. 얼떨결에 같이 사진을 찍었어요.

이 여성은 지나가던 다른 외국인 학생에게도 같이 사진 찍자고 하다가 거절당했어요.

제 친구는 ‘동물원 원숭이가 된 느낌’이라며, 그다지 유쾌해 하지는 않았어요.

저도 좀 황당했죠.

그런데 돌이켜보니 저도 아주 오래 전이지만,

학창 시절에 길에서 처음 만난 외국인과 사진을 찍은 적이 있어요.

서울 올림픽이 열렸을 때 친구들과 같이 경기를 보러 갔는데,

저는 그렇게 외국인이 많은 건 처음 봤거든요.

같이 갔던 친구들과 길 가던 외국인들에게 영어로 인사도 해보고,

인사를 잘 받아준 미국인 여성과 사진도 찍었어요.

프레스 명찰을 달고 있었으니까 아마 기자였겠죠?

그 기자는 저희를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김수현 기자(shkim@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