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한 마음/오 하느님

성인 - 10월24일 성 안토니오 마리아 클라렛 주교

주님의 착한 종 2016. 10. 24. 07:52


축일:10월24일

성 안토니오 마리아 클라렛 주교

Sant’ Antonio Maria Claret Vescovo

ST.ANTHONY MARY CLARET

St. Antonius Maria Claret, E

St.Antonio Maria Claret

23 December 1807 at Sallent, Catalonia, Spain -

24 October 1870 in a Cistercian monastery at Fontfroide, Narbonne, France

Canonized:1950 by Venerable Pope Pius XII

Antonio = nato prima, o che fa fronte ai suoi avversari, dal greco
(been born before, or that ago forehead to its adversaries, from the Greek)



안토니오는 직물공의 아들로 1807년 스페인의 살렌트에서 태어났다.

1835년에 사제가 된 후 여러 해 동안 카탈로니아 지방을 두루 다니며

백성들에게 설교하고 피정을 지도했다.

그 후 그는 보다 더 큰 일을 해보려고 1849년에 선교회를 세웠는데,

지금은 이 회를 클라렛회(Claretian Father)라고 부른다.

같은 해에 그는 이사벨라 2세 여왕의 요청으로 쿠바의 산티아고 대주교로 선임되었다.

주교가 되어,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열심히 일했으며 많은 수확을 거두었다.

 

1857년, 여왕은 그를 불러 자신의 전속 사제로 임명하고,

설교와 간행물을 통한 선교에 주력하도록 충분한 여유를 주었다.

또한 그는 에스코리 과학 연구소를 설립했는데,

이것은 자연 과학 박물관, 음악 및 언어 교육원 역할을 했고,

바르셀로나에는 수도자 도서관을 세우기도 했다.

스페인에 돌아와 교회를 위해 많은 시련을 겪었다.

1868년 혁명 때 그는 이사벨라 여왕과 함께 유배되어,

영영 스페인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1870년 프랑스의 나르본 근교 퐁프루아드에서 세상을 떠났다.



쿠바의 ’영적 아버지’인 그는

선교사,수도원 창설자,사회 개혁가,여왕의 지도 신부,저술가 겸 출판업자,주교이자 피난민이었다.

그는 스페인 사람이었지만 일 때문에 카나리아 군도,쿠바,마드리드, 파리

그리고 제1차 바티칸 공의회까지 여러 곳을 다녔다.

그는 바르셀로나의 섬유 공장에서 직조 기사와 디자이너로 일하는 여가 시간에

라틴어와 인쇄술을 공부하였으며,

그것은 그가 후에 사제이자 출판업자가 되기 위한 준비이기도 하였다.

 

28세에 서품을 받은 그는 건강이 좋지 않아

카르투시안회와 예수회에서 입회를 허락하지 않아 수도생활을 할 길이 막혔지만

스페인의 가장 대중적인 설교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