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한 마음/웃어볼까?

어수룩한 촌사람

주님의 착한 종 2016. 10. 12. 09:14




어수룩한 촌사람



서울 종로에서 가장 큰 원앙포목점의 곽첨지는 악덕 상인이다.

촌사람이 오면 물건값을 속이고 바가지를 왕창 씌운다.
조강지처를 쫓아낸 후 첩을 둘이나 두고

화류계 출신 첫째 첩에겐 기생집을 차려줬고, 둘째 첩에겐 돈놀이를 시켰다.
어느 날 어수룩한 촌사람이 머슴을 데리고
포목점에 들어왔다.


곽첨지는 육감적으로 봉 하나가 걸려들었다고

쾌재를 부르며친절하게 손님을 맞았다.
촌사람은 맏딸 시집보낼 혼숫감 이라며

옷감과 이불감을 산더미처럼 골랐다.

곽첨지는 흘끔 촌사람을 보며 목록을 쓰고 주판알을 튕겨 나갔다.
“전부 430냥입니다요. 이문은 하나도 안 남겼습니다요.”


“끝다리는 떼버립시다.

 내후년에 둘째 치울 때는 에누리 한푼 안 하리다.”


“이렇게 팔면 밑지는 장산데….”

곽첨지는 짐짓 인상을 쓰면서 400냥에 합의를 봤다.
포목점 시동들이 보따리를 꾸리는데 촌사람 왈

“돈을 제법 가지고 나왔는데 패물 장만하느라 다 써버렸으니

  조금만 기다리시오.”

하고는 데리고 온 머슴에게


“만석아, 얼른 집에 가서 집사람에게 400냥만 받아 오너라.”

명했다.


그러자 총각 머슴은

“나으리, 그래도 한두자 적어 주시지오.”

라며 머리를 긁적였다.


촌사람은 혀를 찼다.


“네놈이 집사람에게 신용을 단단히 잃은 모양이구나.”

그 모양새에 눈치 빠른 곽첨지는


“확실하게 하는 게 좋지요.”라며 지필묵을 꺼내왔다.


촌사람이 소매를 걷자 오른 손에는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끓는 물에 손을 데서….”


그가 붕대 감은 손으로 붓을 잡으려 애쓰자

곽첨지가


“제가 받아 적을 테니 말씀만하시라”

며 얼른 붓을 받아들었다.


촌사람은 헛기침 후 문구를 불렀다.

“임자, 이 사람 편에 400냥만 얼른 보내시오.”

곽첨지가 쓴 편지를 받아든 머슴이 휑하니 포목점을 나갔다.

곽첨지는 자기가 점심을 사겠다며 촌사람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두사람은 포목점 뒤 순라 골목 주막에 가서

막걸리를 곁들여 푸짐하게 점심을 먹었다.

한데 화장실에 간 촌사람은 오지 않았고,

지겹게 기다리던 곽첨지가 화장실을 뒤져봐도 촌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포목점으로 돌아가 봐도 촌사람은 없고

돈 가지러 간 머슴도 오지 않았고

혼수 보따리만 덩그렇게 남아 있었다.

그때까지도 곽첨지는 안심했다.

“촌놈 여편네가 당장 400냥을 무슨 수로 구하겠어. 내일 오겠지.”

그날 저녁, 첫째 첩에게 간 곽첨지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는다.
“아니 영감, 점심 나절에 갑자기 400냥은 뭣에 쓰려고….”

깜짝 놀란 곽첨지는 대답도 안하고 돌아나와

돈놀이하는 둘째 첩에게 달려갔다.


“영감 필적으로 그 사람 편에 400냥을 보내라고 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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