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한 마음/오 하느님

가나안 여자의 믿음

주님의 착한 종 2016. 10. 12. 08:07



여인은 외롭고 두려운 길을 떠났다.
어럽게 어렵게 수염 무성한 사내들이 어울려 살고 있는 그 분의 집을 찾았다.
그러나 여인은 이방인 출신이라는 이유 때문에 문간에서 부터 밀려나고 말았다.

"소문을 듣고 왔습니다.
 저는 꼭 그 분을 만나야 합니다. 제발 그 분을 만나게 해 주십시오."

아무리 사정을 해도 막무가내였다.

힘 센 사내들은 무자비하게 발길을 가로막았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왔다가 어찌 대문 밖에서 그낭 돌아설 수 있으랴.
여인은 죽음을 각오하고 대문 안쪽을 향해 미친 듯 소리치기 시작하였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나를 좀 보세요!

 불쌍한 여편네올시다!
 죄도 없는 어린 것이 죽어가고 있답니다.
 제발 나를 좀 만나 주세요!"


온 동네가 다 들을 수 있도록 목이 쉬어라 떠들어 댔다.
몸뚱이 속에 들어있는 힘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그분의 이름을 부르다가 기진맥진하여 쓰러진다 하여도

그냥은 물러설 수 없었다.


내가 죽든지, 그 분이 내 앞에 나타나든지

어느 쪽이든 결판이 나야 했다.


"다윗의 아들 예수여! 다윗의 아들 예수여!
 이 불쌍한 년을 좀 살펴주셔요."


하늘인들 어찌 이 부르짖음을 막을 수 있으랴!
마침내 굳게 닫혔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묵직한 목소리가 귀청을 울렸다.


"무슨 일이요?

 당신은 누구인데 이처럼 시끄럽게 구는 것이요?"


여인은 설레는 가슴을 두 손으로 진정시키며 그 분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선생님! 페니키아의 과부입니다.

 불쌍한 년입니다.
 제 어린 딸이 마귀가 들려 죽어가고 있습니다.
 선생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여인은 몸을 던져 그 분의 발을 움켜 잡았다.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려 그분의 발등을 적셨다.
그 분의 음성이 여인의 등골을 때렸다.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니 어서 돌아가시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선생님!
 이 불쌍한 년은 이대로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그냥 갈 수 없어요.
 제발 딸 아이를 살려주세요!"


여인은 북바쳐 오르는 설움을 참다 못해 목 놓아 울기 시작하였다.
그 분의 발을 움켜 잡은 채 벼랑에 매달린 짐승처럼 그렇게 울었다.
그 분의 음성이 다시 들렸다.


"나는 길 잃은 이스라엘 사람을 위해 온 사람이오.
 나는 먼저 이스라엘 백성을 돌봐야 하오.
 당신은 이방인이니 그냥 가시오.
 떼를 쓴다고 해서 다 되는 건 아니잖소."


"안됩니다. 선생님!
 이대로는 갈 수가 없어요.

 제발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허허, 참 딱한 여자로군.
 이것 봐요. 자기 자식에에 줄 빵을 개한테 주는 사람이 어디 있소?"


여인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습니다. 선생님, 이 년은 개입니다.
 개 보다도 천하게 살아 왔어요.
 그렇지만 개도 주인 집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주워 먹고 살지 않던가요?"


부스러기라도 좋았다.
어떻게 이대로 물러가란 말인가?
하늘이 무너져도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이 손을 놔 버리면 끝장이다.


개가 되면 어떠랴. 승냥이, 늑대, 바퀴벌레가 된들 어떠랴.
죄도 없는 어린 자식이 이리처럼 신음하는데
멀쩡한 두 눈을 뜨고 지켜볼 수는 없는 일이다.


"네, 개가 되어도 좋습니다.
 그래요. 저는 한 마리의 슬픈 개랍니다.
 그러나 배가 고파요.
 당신 상 머리에 떨어진 한 조각이면 족합니다.
 제발 이대로는 쫓아내지 마셔요."


마침내 그 분의 억센 손이 여인의 어깨를 움켜 잡았다.
온 몸을 태워버릴 듯한 불길이 여인의 몸을 사로잡았다.
여인은 뜨거운 손을 붙들고 눈물로 뒤범벅이 된 얼굴을 들어
그분을 바라보았다.


"누이여, 장하오!
 당신의 믿음이 마침내 하늘을 움직였소.
 어서 집에 가 보시오.

 아이는 이미 깨끗하게 되었소."


이게 무슨 말인가?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되었다는 것인가?
여인의 귀에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구했소.
 당신 아이는 깨끗해졌습니다.
 평안한 마음으로 돌아가시오."


여인은 벌떡 일어났다.

어떻게 마음이 평안할 수 있겠는가?
정신없이 집으로 달려갔다.
단숨에 달려가 문을 박차고 들어섰을 때,
컴컴한 방에서는 귀여운 딸이, 그렇게도 사납던 딸이,
천사와 같은 모습으로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아! 정말 백합처럼 깨끗한 얼굴로
허겁지겁 뛰어 들어오는 엄마를 반겨 주었다.


"오! 나의 주님! 감사합니다!"


여인은 두 팔을 벌려 아이를 얼싸안았다.
다시는 놓지 않으려는 듯, 얼굴을 마구 부벼대었다.
어린 것은 아무 것도 모르는 채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흐느껴 우는 엄마의 품에 안겼다.


"그래, 아가야. 모든 것을 모르고 있거라.
 지난 날의 네 상처는 알 필요도 없다.
 그냥 지금 그대로 새로 시작되는 날들을 맞이하거라."


여인은 아이의 마른 뺨을 자꾸자꾸 쓰다듬었다.
온 몸으로 그 분의 이름을 불러본 사람은

이 여인의 감격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