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한 마음/오 하느님

오늘의 성인 - 8월2일 베르첼리의 성 에우세비오 주교

주님의 착한 종 2016. 8. 2. 07:50



Glory of St Eusebius - MENGS, Anton Raphael.

1757, Fresco.Chiesa di Sant’Eusebio, Rome

 

 

축일: 8월2일
베르첼리의 성 에우세비오 주교
Saint Eusebius of Vercelli
Sant' Eusebio di Vercelli Vescovo

(Sardegna, inizio IV secolo - Vercelli, 1 agosto 371/372 )
Born :283 at Sardinia
Died :1 August 371
Canonized :Pre-Congregation 
Eusebio = uomo pio, timorato di Dio, dal greco



사르디니아의 어느 순교자 집안에서(283년?) 태어난 에우세비오는 로마에서 교육받고 사제로 서품되었으며,

345년 사르데냐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피에몬테에 있는 베르첼리 초대 주교로 임명되었다.

 

교구 신자를 성화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동체 안에 살면서

엄격한 미덕을 쌓아가는 성직자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자기의 원칙에 따라 교구 성직자 공동체를 만들고,

성직자 생활과 수도자 생활의 일치를 시도했던 서방교회의 첫번째 주교로 꼽히는분이다.

그는 일단의 성직자들과 함께 최초로 공동체 생활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일 아리우스 이단이 없었더라면 많은 초기 성인들의 일생을 서술하기가

대단히 어려웠을 것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그는 설교를 통해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두루 전파하고, 자기 교구에 수도 생활의 기초를 놓았다.

에우세비오는 교회가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교회를 옹호한 사람이다.

신앙 때문에 콘스탄티누스 황제로부터 유배형을 받아 많은 고난을 겪었다.

리베리오 교황은 가톨릭과 아리우스 이단 사이의 분쟁을 해결하는 회의를 소집하고자,

황제를 설득하기 위해 그를 파견했다.

에우세비오는 비록 가톨릭 신자가 수적으로는 많지만

아리우스 이단이 우세한 것을 알면서도 마지못해 밀라노를 방문했다.

그는 아타나시오의 유죄 판결에 반대하고 니체아 신경 선포를 무기한 연기했으며,

어떤 일이 발생하기 전에 모든 이가 그것에 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제는 그에게 압력을 가했지만, 에우세비오는 여전히 아타나시오의 무죄를 주장했으며

정치 권력이 교회 결정에 영향을 끼쳐서는 안된다는 것을 황제에게 상기시켰다.

처음에 그를 죽이겠다고 위협하던 황제는 그를 팔레스티나로 추방했다.

그곳에서 아리우스 이단자들은 그를 거리로 끌고 다니다가 작은 방에 감금하고는 4일을 굶긴 후 놓아 주었다.

그러나 얼마 안가 다시 박해를 계속했고 그의 유배 생활은 소아시아와 이집트로 계속 이어졌다.

새로운 황제의 명령으로 마침내 베르첼리 주교좌로 되돌아오게된 그는

아리우스 이단을 거슬러 올바른 신앙의 회복을 위해 끊임없이 일했다.

아타나시오와 함께 알렉산드리아 회의에 참석했으며 마음이 흔들렸던 주교들에게도 관대하게 대했다.

그는 371년 92세에 자기 교구에서 평화로이 선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