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06-03 예수 성심 대축일(사제 성화의 날)
독서:에제 34,11-16 독서2:로마 5,5ㄴ-11 복음: 루카 15,3-7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3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4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5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6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시작기도
성령님, 예수님과 함께 걷는 기쁨을 제가 그 어떤 것보다 더 소중히 여기게 하소서.
말씀 들여다보기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라는 표현을 말 그대로 ‘아무 대책 없이 내버려 둔 채’라고 이해할 필요는 없다. 목자들이 종종 동료들과 함께 다니는 걸 고려하면, 아마도 이 표현은 함께 양을 치는 동료에게 ‘아흔아홉 마리’를 잠시 맡겨두었다는 뜻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내버려 두다’라는 표현이 누군가에게 무엇을 ‘맡기다’라는 뜻으로 쓰일 때가 있다. 예를 들어 골리앗과 싸우던 중에 다윗의 형 엘리압이 양들을 ‘누구한테 맡겼느냐?’며 다윗을 꾸짖을 때, ‘맡겼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의 원래 의미는 ‘내버려 두다’이다.(1사무 17,28)
그럼에도 잃어버린 양 한 마리에게 쏟아지는 관심은 나머지 아흔아홉 마리와 비교할 수 없이 큰 게 사실이다. 이런 면에서 엉겁결에 다른 목자의 손에 맡겨진 아흔아홉 마리는 불만을 느낄 수 있다. 나쁜 행동이나 어리석은 행동이 ‘관심’이라는 그릇된 보상으로 이어지는 걸 보고 부당하다 생각할 수도 있다. 착하고 바르게 사는 게 상대적 냉대의 이유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의인 아흔아홉’이 품었을 법한 이런 생각에 예수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신다. 다만 늘 정의로우신 예수님을 생각한다면, 의인 아흔아홉은 잠시 동안의 관심보다 훨씬 더 큰 보상을 이미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실에서 의롭게 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생각하면 무슨 보상이 있었겠느냐 싶지만, 의로운 삶을 통한 하느님과의 일치는 인간에게 허락된 가장 값진 선물이다.
말씀 따라 걷기
*예수님과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걷고 있다고 느끼는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매 순간 받고 있는 은총을 떠올리고 하느님께 감사드리자.
마침기도
예수님, 세상에서 가장 큰 보상이 당신 곁에서 당신과 함께 걷는 기쁨이니, 제가 그것을 잃지 않도록 한결같은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 윤성희(구약성서학 박사) -